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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이승만 대통령|프란체스카 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
대통령 일행은 하오4시 경산역을 떠나 임시관저로 돌아왔다. 우리 내외는 대통령 호주머니 속에 있던 얼마 안되는 잣을 씹으며 조금은 시장기를 면할 수 있었다. 지사관저에는 양지사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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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4일. 저녁에 「무초」대사와 「노블」이 와서「맥아더」 장군의 두번째 전문을 전해주었다. 29일 서울에 입성하면 수복지역의 모든 권한을 한국정부에 돌려주는 의식을 갖겠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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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앞서 아침9시에 대통령은 한국군 사령부에 가서 17연대의 안모소령이 한국군고문 「패럴」 장군으로부터 훈장을 받는걸 참관했다 (「패럴」장군은 「로버츠」장군의 후임자다). 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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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7일. 밤사이에 폭우가 쏟아져 땅이 온통 진수렁이 됐다. 우리는 초조했다. 병사들은 무릎까지 물이 차오른 참호속에서 싸웠을것 아닌가. 설상가상으로 날씨까지 차가와진다. 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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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카여사에 격려금
○…중앙일보애독자 조순제씨(서울방배본동768의5)가 3일 중앙일보3면에·연재중인 『6.25와 이승만대통령』의 비망록 집필자「프란체스카」여사에게 유용하게 써달라며 격려금 5만원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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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피난민들 빈 들판으로 돌아가게 할순없다|대통령, 미군측에 추수기전 실지회복재측
9월10일. 김홍일장군이 아침에 찾아왔다. 국회의원 이종현씨도 왔다. 미군정시절 그의별명은「더티·코트·리」 였다. 이의원은 조내무장관에게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지 그를 해임하지 않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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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항전투에서 아군의 피해는 막대한 것이었다. 우리 17사단은 장교80명중 겨우 6명만 살아남았다. 전투경험이 없는 신병들이 많은 탓이다. 미군은 1백80명의 자국군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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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신국방장관이 대구에서 비행기로 왔다. 대통령에게 자신과 함께 대구에 좀 가서 시민들을 격려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8군단은 이미 대구에서 완전히 철수했으며, 국방부도빨리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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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들을 인도적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제네바협정에 비추어본다면 우리 장교의 행동은 그릇된 것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상당한 우리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적군포로들에겐 1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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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란이 벌어지자 김석원장군은 곧6사단장에 임명됐다. 그의 지휘아래 6사단은 적지않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한번은 너무 앞서 북진해버리는 바람에 미군들은 그를 제위치에 붙잡아두느라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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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프란체스카 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
8월 27일, 일요일. 일단의 유엔군 대표들이 진해로 왔다. 상오 11시쯤 왔던 이들은 회의를 한후 하오 1시에 마산으로 떠났다. 우리는 점심을 싸들고 부두로 나가서 바닷가에서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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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어제 저녁부터 오늘 낮까지는 아군측이 장거리포를 쏘아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나는 어젯밤에 다시금 악몽에 시달렸다. 총격전 소리가 몇분 간격으로 계속 울리는 바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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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프란체스카 여사 비망록 33년 만에 공개
대통령은 무엇보다도 대구를 포기하게 되면 국민들의 사기가 현저히 떨어질 것이며 부산도 지키기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을 걱정하고 있었다. 대통령이 부산항에 내려 육지로 올라간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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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8일. 대통령은 공군의 김정렬 장군을 불러, 대구로 떠날 비행기를 대기시키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은 상오 10시45분 진해를 출발, 전투기 2대의 호위를 받으며 30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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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카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
한국전은 엄연한 전쟁이면서도 어떻게 보면 전쟁이 아닌것 같은 이상한 양상을 띠고 있다. 그것은 전쟁을 피하기를 바라는 면이다. 어떤 방법으로 전쟁을 피한다는 것일까? 소련이 이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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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이승만 대통령(15)
대통령과 나는 온몸에 땀띠를 뒤집어썼다. 대통령의 잔등은 모기에 물린 곳까지 겹쳐 보기에 딱할 정도였다. 워낙 물이 부족하여 밤이면 물 한 대야를 떠다가 수건에 적셔 대통령의 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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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카여사비망록 후속자료 새로발견
33년만에 처음 공개돼 중앙일보에 연재중인 「프란체스카」여사의 한국동난 비망록『6·25와 이승만대통령』은 최근 후속자료가 새로 발견됨으로써 독자 여러분에게 한국전쟁의 전비사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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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이승만대통령
미군은 계속 더 많은 병력과 장비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만 있었다. 반면에 적은 방어선 도처에서 준동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은 자신의 생각을 편지로 썼다. 나는 이 편지들을 장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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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이승만대통령
8월3일. 어젯밤에는 미군기들이 밤새도록 상공을 선회했다. 소련은 46대의 비행기를 지원, 곧 공습이 있을거라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미폭격기들은 북한내의 모든 비행장을 폭격하고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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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이승만대통령(12)
우리의 17연대가 합천을 탈환했다. 적은 이곳에서 30마일 떨어진 곳에 있다. 게릴라들은 구두닦이 소년들같이 살금살금 시내로 잠입해들어왔다. 어제 하루에만 4명의 게릴라를 체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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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이승만대통령
밀려드는 피난민들의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나고 쌀값은 아침 저녁이 다르게 뛰어올랐다. 대통령은 점심을 밥대신 삶은감자나 밀가루음식으로 바꾸도록했다. 사실 대용식으로 바꾸고나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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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이승만대통령
7월27일 새벽, 야크기의 공습이었었다. 적기의 대구공습이 잦아지게되자 나는 대통령에게 야간민정시찰을 중단하는게 좋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요즘 저녁식사후엔 대구거리와 골목·시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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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이승만 대통령|프란체스카 여사, 비망록 33년만에 처음 공개하다|적의 부산 압박소식에 낙담
적은 목포와 대구를 향해 점점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도 미군들은 적의 전진루트에 비행기를 출격시켜보면 적군이고 탱크고 하나도 보이는게 없다고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아직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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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이승만 대통령|프란체스카 여사, 비망록 33년만에 처음 공개하다.|「딘」소장 생존여부 몰라 걱정
피난생왈도 어느덧 한달이 다가온다. 이곳 대구에서 누구보다 고생을 하는 사람은 조 지사부인이다. 대통령부부를 비롯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부인의 신세를 지고있다. 대통령 임시관저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