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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 “청 황실 우대 회복시킬 것”…푸이 “못 믿을 사람”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734〉 9·18사변 2개월 후인 1931년 11월 중순, 국민정부 수도 난징(南京)에서 대책을 숙의하기 위해 만난 국민당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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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몽은 일본 생명선” 일 관동군, 중 동북 3성 침략 획책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731〉 만주의 친일세력과 기념사진을 남긴 관동군 고급참모 이타가키 세이시로(앞줄 왼쪽 둘째). 1931년 9월 20일 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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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 국·공합작 항일전 승리 후 일등공신 룽윈 제거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70〉 항일전쟁 시절, 쿤밍의 야외행사 개막식장에 입장하는 룽윈(중앙). [사진 김명호] 1928년 윈난(雲南)을 통일한 룽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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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보짠 “펑위샹 억울한 죽음에 침묵하는 세태 한심”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66〉 베이징대학 역사학과 교수들과 젠보짠(앞줄 왼쪽 넷째). [사진 김명호] 국·공내전 시절, 홍색선전기관 신화사(新華社)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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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역사가 젠보짠 “펑위샹 장군은 중국 진보의 상징”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65〉 1968년 문혁 발발 2년 후, 비판대에 끌려 나온 젠보짠. [사진 김명호] 펑위샹(馮玉祥·풍옥상)은 사후에 총명한 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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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위샹 심복 위신칭 “공산비적과 내통한 원조는 쑨원”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64〉 육군검열사 시절의 펑위샹(가운데). [사진 김명호] 1966년 문혁 초기, 신중국 국가의전의 창시자 위신칭(余心淸·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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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으로 떠난 펑위샹 “장제스는 제2의 히틀러”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63〉 1935년 12월 2일, 항일을 결심한 장제스(앞줄 오른쪽 넷째와 다섯째 중간)와 펑위샹(앞줄 오른쪽 여섯째 뒤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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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펑위샹은 세계서 사병 가장 많은 기독장군”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62〉 민중항일동맹군을 조직하기 위해 하산한 펑위샹. 1931년 11월, 장자커우. [사진 김명호] 타임지 설립자 헨리 루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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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위샹 “애들은 애완견 아니다, 능력 갖추게 엄히 키워야”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61〉 펑위샹과 리더촨은 1남 3녀를 뒀다. 뒷줄이 장녀 펑리다. 1940년, 충칭. [사진 김명호] 한동안 펑위샹(馮玉祥·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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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변 성공한 펑위샹 “황제놀음 푸이, 20분 내에 내쫓아라”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60〉 덩샤오핑은 펑위샹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펑이 북벌을 결의한 우위안에 거대한 기념광장을 조성했다. [사진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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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중앙정권 장악한 펑위샹 “정변 아닌 혁명”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59〉 1912년 1월 1일 밤에 열린 쑨원의 임시 대총통 취임식은 야간 촬영시설 미비로 영상자료를 남기지 못했다. 서화에 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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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출동 명령 받은 펑위샹, 군사 돌려 수도 베이징 점령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58〉 임시집정에 취임한 북양정부 원로 돤치루이. 1924년 11월 24일, 베이징. [사진 김명호] 군벌(軍閥)이라는 명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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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쭤린, 군벌 부패에 불만 품은 즈파 지휘관 펑위샹 회유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57〉 완(晥)파 영수 돤치루이(오른쪽 둘째)는 북양군벌 시조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직계였다. 독일에서 포병 교육받는 돤치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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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원 “도적 두목부터 잡듯 군벌 타도는 즈파 제거로 시작”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56〉 2차 즈펑전쟁 막바지 톈진에 모인 펑파와 완파 지휘관. 왼쪽 둘째부터 펑위샹, 장쭤린, 돤치루이, 루융샹, 장쭤린의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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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 “잔심부름 하기 아까워” 29세 우궈쩐에게 우한 맡겨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1941년 1월, 전시 수도 충칭을 방문한 국부 쑨원(孫文)의 부인 쑹칭링(宋慶齡·왼쪽 셋째)을 영접 나온 우궈쩐(중절모 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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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데뷔 앞두고 프로 대회 우승한 전 볼링 국가대표
문준오. [사진 한국프로볼링협회] 볼링 국가대표 출신 문준오(32)가 원주컵 국제오픈 초청볼링대회 정상에 올랐다. 문준오는 6일 강원도 원주의 나이스볼링센터에서 열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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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전쟁 준비하던 광복군이 문화 잡지 펴낸 까닭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광복군의 흔적을 찾기란 무척 어려웠습니다. 소중 6기 학생기자들은 광복군에 대한 더 많은 사실을 알아보려 인터넷으로 자료를 검색했지만 생각보다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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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커푸 “삼촌은 방향만 제시해라, 장애물은 내가 제거할 것”
1 천커푸(가운데)와 천리푸(오른쪽)형제. 흔히들 왼쪽 인물을 쉬언쩡이라 말하지만 확실치 않다.2 천리푸(왼쪽 셋째)는 산에 오르기를 좋아했다. 1930년 12월 9일, 뤼산(廬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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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커푸 “삼촌은 방향만 제시해라, 장애물은 내가 제거할 것”
1 천커푸(가운데)와 천리푸(오른쪽)형제. 흔히들 왼쪽 인물을 쉬언쩡이라 말하지만 확실치 않다. 1924년 국·공합작이 성사되면서 국민당은 공산당의 놀이터로 변했다. 천커푸(陳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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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썬 “끝까지 저항”… 장제스에게 비장한 유훈
항일전쟁 시절 국민당과 민주세력, 공산당 대표가 한자리에 모인 국민참정회 회의장에 도착한 국민정부 주석 린썬(가운데). 1941년 11월 17일 전시 수도 충칭. [사진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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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썬 "끝까지 저항"…장제스에게 비장한 유훈
린썬의 훈시를 경청하는 중앙군사위원회 수뇌들. 오른쪽 세 번째가 위원장 장제스. 네 번째는 부위원장 펑위샹(馮玉祥). 1937년 12월, 우한. [사진출처=김명호]193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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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달인 구웨이쥔 ‘여성 외교’ 실력도 발군
1947년 10월 펑위샹(馮玉祥)의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모인 콜럼비아대학의 중국 유학생들. 구웨이쥔은 1910년 탕샤오이의 방문 때와 비슷했다는 회고를 남겼다. [사진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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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웨이진, 방미길 오른 탕샤오이와 운명적 조우
1947년 10월 펑위샹(馮玉祥)의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모인 콜럼비아대학의 중국 유학생들. 구웨이쥔은 1910년 탕샤오이의 방문 때와 비슷했다는 회고를 남겼다. [사진 김명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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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 쫓겨난 마지막 황제, 일본 환대에 “천황 만세”
일본 육군대학 시절의 푸제(앞줄 왼쪽 두번째)와 룬치(왼쪽 첫번째). 앞날을 예측이라도 한듯, 표정이 심란해 보인다. 1943년 4월 23일 도쿄. [사진 김명호] 푸이(溥儀·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