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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절」을 말해주는 낯익으면서도 낯선 풍경|본사 이광표 특파원, 27년만에 본 북의 산하

    【평양=대한민국 신문·통신 공동취재단】29일 하오 2시25분 단절 27년만에 평양 땅을 밟았다. 판문점에서 평양까지 2백21km. 자동차로 3시간55분이 걸리는 지척-. 4반세기동

    중앙일보

    1972.08.30 00:00

  • 백20일만의 재 회합

    【판문점=임시 취재반】16일 상오 11시 판문점에서 열린 제20차 예비 회담은 2월17일 이후 1백20일만에 열린 탓으로 어느 때보다 많은 남·북 기자들이 참석, 회담장 주변에서

    중앙일보

    1972.06.16 00:00

  • (302)휴전회담의 개막(16)|군사분계선 논쟁(4)|「6·25」21주…3천여의 증인 회견·내외 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

    1951년 8월 23일부터 10월 24일까지 휴전회담은 열리지 않았는데 공산 측은 8월 22일의 개성 폭격사건을 조작했을 때 휴회가 이렇게 오랫동안 계속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중앙일보

    1972.03.15 00:00

  • 이 한국대표 첫 참석

    【판문점=최규장기자】제3백27차 본회의가 열린 판문점회의장 주변에는 10㎝ 가량의 눈이 쌓였다. 이날 취임 후 처음으로 판문점에 나온 한국군 대표 이범준 소장은 종전의 대표들이 「

    중앙일보

    1972.01.26 00:00

  • 역사적 첫 회담…반갑습니다|「가족 찾기」 예비회담이 열리던 날

    【판문점=임시취재반】남·북 이산가족 찾기를 위한 역사적인 예비회담이 개막된 20일, 판문점에는 세계의 눈과 귀가 쏠렸다. 이날 남북 적십자예비회담은 예정대로 5명씩의 대표가 각각

    중앙일보

    1971.09.20 00:00

  • 관심 전방 사무소에

    이날 상오 10시40분쯤 판문점 「자유의 집」서쪽에 있는 우리측이 새로 지은 「콘서트」건물에 북괴경비병 10여명이 사진을 찍으려다가 「유엔」군측 경비병에 의해 저지, 실랑이가 벌어

    중앙일보

    1971.09.16 00:00

  • 남북예비회담에 가벼운 흥분

    【판문점=임시취재반】대한적십자사의 8·12제안에서 비롯된 남북 이산가족 찾기 운동이 한 걸음 진전, 남북대화의 실마리가 풀렸다. 3일 낮12시 네 번째로 만나는 대한적십자사의 이창

    중앙일보

    1971.09.03 00:00

  • "안녕하십니까" 26년만의 남-북 악수

    온 국민의 눈과 귀가 판문점에 쏠렸다. 20일 정오, 남북한이산가족 찾기 운동을 열기 위해 만난 남-북 적십자사 파견 원들은 판문점중립국감시위원단 회의실에서 탁상을 사이에 두고 마

    중앙일보

    1971.08.20 00:00

  • 북괴, 경비병 배가 정전위, 설전만

    【판문점=이창성 기자】군사 정전위 제3백14차 본회의가 1일 상오 11시 판문점에서 북괴 측 요청으로 열렸다. 북괴 한형옥은 지난 24일과 25일 사이에 「유엔」 군이 한강 하류와

    중앙일보

    1971.04.01 00:00

  • 판문점 기자제한 조처 철회

    주한「유엔」군 사령부는 19일 판문점 출입기자 제한조치를 철회한다고 문화공보부에 통고했다. 군사정전위「유엔」측 수석대표「필릭스·M·로저즈」소장은 판문점 회의장 주변에서 기자들이 떠

    중앙일보

    1971.03.19 00:00

  • "방송선 조속 송환토록"

    【판문점=이창성기자】「유엔」군 측 요청으로 23일에 열린 군사정전위원회 제3백 7차 본회의에서 유엔군 측 대표「필릭스·M·로저즈」소장은 지난여름 북괴가 연평도 근해서 끌고 간 우리

    중앙일보

    1970.10.24 00:00

  • 납북자「구정 전 송환」논의

    KAL기 승무원과 탑승자를 구정 전에 송환 받기 위한 교섭이 2일 판문점에서 열린 군사정전위 비서장 회의에서 구체화됨으로써 그 전망이 밝아졌다. 이날 상오 11시 북괴측 요청으로

    중앙일보

    1970.02.02 00:00

  • 탄우 속에 차단기 돌파 구명의 20초|「자유」 택한 이 수근 씨의 탈출 전후

    『괴뢰 중앙통신 이수근 부사장의 탈출 순간을 눈으로 보고 나는 눈물이 글썽했다』 이상한 예감 때문에 판문점에 홀로 남았다가 이 모습을 본 유일한 기자인 동양 「라디오」 김 집 기자

    중앙일보

    1967.03.23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