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주시경 선생 60주기

    27일은 한힌샘 주시경 선생이 3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지 60돌이 되는 날. 우리말과 글의 과학적 연구의 개척자며 청년교육 한글운동의 선구자인 선생의 60주기를 맞아 민

    중앙일보

    1974.07.29 00:00

  • (931)제34화 조선변호사회(6)|정구영

    구한말의 변호사 초기에 이름은「변호사」라고 했지만 깊은 법률지식은 물론 자신들조차도 생소한 신식 재판제도의 실시로 그 직책이 명확히 어떤 것인지를 잘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했던

    중앙일보

    1973.12.21 00:00

  • (929)(제자 정구영)제34화 조선변호사회(4)

    검사로 임관되어 대구와 경성지방법원에 근무하던 3년 남짓 기간동안의 이야기는 뒤로 미루기로 하고 이 나라에 처음으로 변호사제도가 생겨나던 당시를 더듬어 보기로 하자. 내가 변호사

    중앙일보

    1973.12.19 00:00

  • 한국선 받아 침몰시킨 후 선원들 구조 않고 뺑소니

    【동경=박동순 특파원】일본 문사해상보안부는 2일 하오 한국선과 충돌, 침몰시키고 선원들을 구조치 않은 채 도주한 일본 대형 어선 대성환 선장 김자씨(55)와 갑판장 중촌씨(35)를

    중앙일보

    1973.11.03 00:00

  • 채소 등 8개 품목 외국차 운행 허용

    재무부는 활선어·야채 등의 농·수산물의 신속한 수출을 위해 채소 등 8개 품목에 대해서는 외국 운반차량의 국내수송을 허용키로 했다. 26일 재무부에 의하면 이들 품목을 수송하기 위

    중앙일보

    1973.02.26 00:00

  • 내생각

    친구들이 우리집에 놀러 오면 엄마 아빤 나 보다도 그 애들을 더 예뻐해요. 나도 이집에 살면서 남의집 꼬마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전체학생 천명중, 성적 7등. 순한것 같으면서 고집

    중앙일보

    1973.02.17 00:00

  • (640) |조선어학회 사건 (25)|정인승

    참으로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옥살이였다. 함흥 구치소 2층 맨 첫 방이나, 다음이 이희승 최현배 이극노의 순서로 독방을 차지하고 들어 앉아 있었다. 옆방과의 사이 벽에 천장 아래

    중앙일보

    1972.12.20 00:00

  • (639)|조선오학회 사건(24)

    조선어학회사건의 발단인물이 되는 정태진이 홍원 경찰서의 소환장을 받고 떠나간 후 그의 얼굴을 내가 다시 본 것은 1944년 9월 중순 예심이 종결을 지을 무렵이었다. 그러니까 꼭

    중앙일보

    1972.12.19 00:00

  • (635) |조선어학회 사건|정인승

    한글의 맞춤법 통일안·표준어·외래어 표기법 등 사전 편찬의 기초 작업은 모두 완성되었으나 실제의 사전 편찬 업무는 참으로 험난한 길이었다. 1929년10월31일 서울 수표동 「조

    중앙일보

    1972.12.14 00:00

  • (634) |조선어학회 사건 (19)|정인승

    「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제정으로 우리말의 올바른 표기법은 결정되었다. 그러나 우리 나라 사람들의 공통어가 될 표준말의 확립이 무엇보다도 필요함을 느낀 조선어학회는 1935년1월

    중앙일보

    1972.12.13 00:00

  • (633)제29화 조선어 학회 사건(18)

    홍원경찰이 조선어학회 동지 33인에 대한 조서를 꾸미면서 무엇보다도 중요시한 것은 역시 조선어 사전을 편찬하고 있는 일이었다. 경찰은 사전을 편찬하게 된 동기서부터 사전 편찬회를

    중앙일보

    1972.12.12 00:00

  • (632)조선어학회 사건(17)|정인승(제자 정인승)

    「가갸날」은 1931년까지 음력으로 지켜오다가 1932년에 학회는 우리의 문학생활이 모두 양력으로 표준하는 현대에 있어 「가갸날」을 음력으로 지킨다는 것은 시대사조에 어긋나는 일

    중앙일보

    1972.12.11 00:00

  • (631)제29화 조선어학회 사건(16)

    일제경찰은 조선어학회의 기관지 「한글」의 발행도 물고 늘어졌다. 조선어학회 연구기관지 「한글」은 학회이름이 조선어연구회였던 1927년2월10일에 동인지로서 창간되었다. 매월 한차

    중앙일보

    1972.12.09 00:00

  • (630)제29화 조선어학회 사건(15)

    일제경찰은 또 조선어학회의 자매기관인 조선기념도서출판관과 양사원의 설립에 대해서도꼬투리를 잡았다. 조선기념도서출판관이란 1935년 조선어학회가 부설로 설치한 기관으로 돈 많은 유

    중앙일보

    1972.12.08 00:00

  • (629)제29화 조선어학회 사건(14)

    조선어학회는 실제로 1921년12월3일 휘문의숙(현 휘문 중·고등학교)에서 「조선어연구회」란 이름으로 처음 탄생했다. 그 당시 사립학교 조선어선생을 지내던 임경재(휘문학교 교장)

    중앙일보

    1972.12.07 00:00

  • (628)제29화 조선어학회 사건(13)

    조선어학회와 상해임시정부사이의 연관이란 사실 터무니없는 올가미였다. 조선어학회 간부들의 행동을 과거에서부터 하나하나 조사하던 경찰은 1927년8월 이윤재가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

    중앙일보

    1972.12.06 00:00

  • (620)조선어학회 사건(5)정인승

    열흘이 지나자 이극노의 그 호령과 비명도 잠잠해졌다. 저녁나절 끌려들어오는 이극노의 모습은 초저녁 어스름에 짙게 물들어 큰 키가 더욱 초라해 보였다. 그 호걸스럽던 풍모가 어디로

    중앙일보

    1972.11.27 00:00

  • (619)조선어학회 사건(4)|정인승

    정태진은 나와 연희문과 동창생이다. 미국에 유학을 하고 돌아와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조선어 사전편찬 일을 하자고 내가 제의하여 교편생활을 그만 두고 나와 더

    중앙일보

    1972.11.25 00:00

  • (618)조선어학회사건(3)|정인승

    북풍 찬바람에 몸이 오싹해지는 새벽에 기차는 함흥정거장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을 끌고 가는 형사들이 두런두런 귀엣말을 주고받더니 이극노 권승욱 그리고 나 셋만을 내리라고 했다.

    중앙일보

    1972.11.24 00:00

  • (617)조선어 학회사건(2)|정인승

    『주인이시오?』 앉아있던 양복장이중 한사람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렇소.』 나는 어떨결에 대꾸하는 수밖에 없었다. 『종로서에서 왔소. 주인 없는 집에 들어와 미안하오.』 그 사

    중앙일보

    1972.11.23 00:00

  • (616)조선어학회 사건(1)|정인승

    1942년10월1일. 옷깃을 쌀쌀한 바람이 파고들기 시작하는 희뿌연 한 첫 새벽길이었다. 나는 밤을 새워 사전편찬 일을 한 피로를 싸늘한 새벽바람에 씻어가며 혜화동 성벽 밑 막바

    중앙일보

    1972.11.22 00:00

  • 활선어 수출선 침몰 일본 대마도 근해서

    【부산】12일 상오2시40분쯤 부산 원양물산소속 대일 활·선어 수출선 제53동명호(57t·선장 손성실)가 일본 대마도 삼도등대 동쪽 45「마일」해점에서 심한 침수로 침몰, 선장 손

    중앙일보

    1972.11.13 00:00

  • 어느 유원지

    지난 주말을 남도의 K촌에서 보냈다. 단아한 해수욕장으로 이름나 있는 곳이다. 툭 트인 「아스팔트」길을 버리고, 40리 길을 더가야 했다. 좌우의 풍광은 그지없이 아름다웠다. 침엽

    중앙일보

    1972.07.29 00:00

  • 연행 밀수 선주 도망

    【충무】대일 활선어 수출선 제3남진호 (25t)의 억대 밀수 사건을 수사 중인 마산 세관 충무 출장소가 남진호 선주이며 밀수 조직 책임자인 한지은씨 (32·충무시 미수동 337)를

    중앙일보

    1972.05.16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