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0년 조선왕조의 역사…종묘 봉안된 어보·어책·교명 보물된다
조선왕조 어보·어책·교명. 사진 문화재청 500년 조선 왕조의 역사이자 왕가의 정통성과 권위를 상징하는 의례용 도장과 문서가 보물로 지정된다. 3일 문화재청은 종묘 신실에
-
대가의 경지란 이런 것, 한국 서예 1세대를 만나다
한국 서예 거장 23인의 대표작 115점이 한자리에 나왔다. 20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근대서예명가전’ 얘기다. 예술의전당(사장 유인택)과 한국서
-
서예인들이 놀라고 감격한 전시, "대가의 경지란 이런 것"
소전이 쓴 '사해인민송태평'. 전세계가 고통을 겪는 시대에 더욱 울림있게 다가오는 글이다. [한국서총][ 지금까지 이런 서예전은 없었다. 한국 1세대 거장 23인 대표작 115점
-
울진 성류굴서 1200년전 동굴 벽글씨 확인…국내 첫 사례
경북 울진군 성류굴에서 발견된 '이복연 무술' 글씨. [사진 문화재청] 경북 울진군 근남면 성류굴(천연기념물 제155호)에서 국내에서 처음으로 ‘동굴 내 각석(刻石
-
1만명이 쓴 ‘일자서’ 붓으로 통일 꿈꾸다
높이 8m, 너비 17m 짜리 실험전시실 바람벽에는 통일에의 기원을 담아 써보낸 ‘일자서’ 2600여 장으로 만든 박기원 작가의 작품 ‘원경’이 설치돼 있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
[서예박물관 27년 만에 탈바꿈] 한·중·일 공용한자 808자, 한획 한획 아시아 평화를 담다
한·중·일 공용한자 808자’로 장식된 서예박물관 로비. 한국 대표 서예가 808명이 한 자씩 쓴 한자 서예를 설치미술가 최정화씨가 세계로 퍼져나가는 한자의 힘을 담은 ‘파문’이라
-
[중앙SUNDAY-아산정책연구원 공동기획] 디지털에 밀려난 묵향 문화, 힐링 바람에 다시 주목
원광대 서예문화예술학과 여태명 교수(가운데)가 전공과정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서예 강의를 하고 있다. 1989년 설립된 한국 최초의 원광대 서예과는 2년 연속 정원 미달로 폐과
-
안평대군·한석봉·김정희 … 조선 명필 한자리서 만난다
추사 김정희가 백파대사를 기리며 쓴 `백파대율사비` 글씨 탁본. [사진 한신대학교박물관]조선시대 서예는 한 시대를 대변하는 가장 중요한 문화예술 분야였다. ‘시서화금(詩書畵琴)’이
-
[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255) 경복궁 옆 서촌
경복궁 서쪽 마을을 일컫는 서촌(西村). 고관대작부터 중인, 아전까지 서로 다른 신분층이 모여 살던 인왕산 자락 동네입니다. 사대부 중심의 북촌, 중인 중심의 남촌과는 다른 독특
-
‘이삼만, 뱀을 잡을 신통력 서린 글씨’라고 미당은 진작 그를 알아봤다
이삼만의 ‘유수체(流水體)’를 잘 보여주는 ‘산광수색(山光水色글씨 오른쪽부터)’. 산의 빛과 물의 색이란 뜻으로 경치가 좋음을 말하는데 글씨 자체가 그 광경을 담고 있는 듯하다
-
유수체 완성 조선 후기 3대 명필 … 서울 예술의전당 ‘창암 이삼만전’
창암이 행초서로 흘려 쓴 ‘山光水色(산광수색, 산의 빛과 물의 색이라는 뜻). [조인숙 창암문화진흥회 이사장] 조선 후기 3대 명필 중 하나로 꼽히는 창암(蒼巖) 이삼만(1770
-
1136명 친필 그대로 … 600년 서예사 집대성 『근묵』출간
한국사 600년에 걸친 문인·학자 1136명의 친필 서예작품이 실물 그대로 영인, 번역돼 나왔다. 서예사의 집대성이라고 일컫는 『근묵(槿墨)』이 처음으로 완역된 것이다. 『근묵』은
-
이황 “글씨는 마음의 표현” 이광사 글씨엔 ‘실학’ 담겨
“글씨 똑바로 써라.” 이 말은 연필을 잡기 시작한 때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다. 물론 마음이 발라야 글씨 조형도 바름을 암시하는 우리의 뿌리 깊은 심성론적 글씨관을 대변하는
-
이황 “글씨는 마음의 표현”이광사 글씨엔 ‘실학’ 담겨
“글씨 똑바로 써라.” 이 말은 연필을 잡기 시작한 때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다. 물론 마음이 발라야 글씨 조형도 바름을 암시하는 우리의 뿌리 깊은 심성론적 글씨관을 대변하는 말
-
고려 탄연 글씨 비 복원했다
신품사현(神品四賢)의 한 명으로 고려시대 명필가 탄연이 글씨를 쓴 비(碑)가 복원됐다. 춘천 청평사의 ‘진락공 중수 청평산 문수원기(眞樂公 重修 淸平山 文殊院記)’다. 청평사 문
-
[문화in] 2006 가을 秋史 바람…시서화·문사철 한 줄에 꿴 인문학의 대가
지금 인문학 위기를 알리는 비명이 하늘을 찌른다. 대학의 상업화가 이유라고 하지만 인문학 위기의 주범은 인문학 내부에 있다고 본다. 이미 100년 전 한자(漢字)가 버리면서 시작
-
고려의 여자 '목소리'가 컸네
‘염경애 묘지명’(1148년).70×33×3㎝. 16㎏. 겉보기에는 흔한 돌덩어리다. 국보도, 보물도 아니다. 다른 돌과 다르다면 표면에 글자가 새겨져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파고들
-
한획 한획…선승의 자유 서렸구나
▶ 조선 후기의 승려인 아암 혜장이 남긴 ‘일한사탑(一閒四榻) 무진여화(無塵如畵)’. ‘방 한 칸에 의자 네 개, 티없이 맑기가 그림같다’로 풀이되는 이 글씨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
"목판 수집·분류에 밤을 잊었죠"
“목판(木版) 한장 한장이 소중한 문화 유산입니다.수만장의 목판이 장차 만들어낼 부가가치는 이루 헤아리기 어려워요.없어지기 전에 수집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경북 안동 한국국학진흥
-
삼국∼고려시대 金石文 한눈에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의 금석문(金石文)을 총망라한 『한국금석문집성』 40권이 발간된다. 1919년 조선총독부에서 『조선금석총람』상·하권을 펴낸 이래 전국에 흩어져있는 금석문을
-
서예 사랑의 '큰 획'
'통문관(通文館)'은 고려 때 중국에 보내는 문서 등을 살피는 사대(査對) 외교를 맡아보던 관청이다. 1934년부터 서울 인사동에서 고서점을 열어온 산기(山氣) 이겸로(李謙魯·9
-
과거 장원급제 답안 첫 발견
조선시대 과거시험 문과 장원급제자의 합격증과 답안지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이 고문서의 주인공은 조선 후기 홍문관 제학(弘文館 提學)을 지낸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1629~17
-
[북한문화유산답사기]제2부 5.삼일포와 양사언
금강산려관에 닷새를 묵는 동안 우리 일행의 하루 일과는 잠에서 깨자마자 베란다로 나와 한껏 목을 빼고 금강산 쪽을 내다보는 것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무심한 금강산은 우리의 간절한
-
한석봉 (1)
한석봉(韓石峯)은 깜깜한 밤중에 떡써는 어머니와 마주앉아 글씨를 쓴 적이 없다.한석봉에 대해 조선시대 정사를 뒤적이면 적어도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그렇지만 어머니의 훈도가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