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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0화 한일회 (181)|다울링 대사와의 우의

    북송관계를 끝맺으면서 여록을 덧붙인다. 이미 모두 고인이 된 이승만대통령, 조정환 외무장관, 「다울링」 주한 미 대사와 나 사이에 얽혔던 사연이다. 내가 차관직을 사임하던 9윌12

    중앙일보

    1984.04.03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3981》|제80화 한일회담(180)|끝내 북송

    59년 12월14일-. 북송 제1진9백75명을 나누어 태운 소련 선박 크리리온호와 토보르스크호는 니이가따항을 떠나 북한의 청진을 향했다. 캘커타 협정에 의한 북송 사업이 끝난 67

    중앙일보

    1984.04.02 00:00

  • (3980) - 제80화 한일회담 (179)

    북송 제1진이 떠나기 사흘전인 59년12월11일 유태하주일대사는 일본외무성으로 「후지야마」외상을 찾아가 우리정부의 최종 경고각서를 수교하고 다시 한번 즉각 중단을 촉구했다. 이 장

    중앙일보

    1984.03.31 00:00

  • (3978)제80화 한일회담(177)|미, 북송지지

    일본과 북한이 북송절차를 놓고 공방전을 벌이던 40여일간 중단됐던 북송 등록업무는 일본측의 굴복으로 곧 재개될 단계였다. 정부는 미국과 국적에 대해 일본측의 부당한 처사를 맹렬히

    중앙일보

    1984.03.29 00:00

  • (3976)-제80화 한일회담(175) 김동조|불가능한 집단귀국

    내가 모든 재일교포의 집단귀국을 추진하라는 이대통령의 지시에 이의를 감히 제기했던 이유는 세가지가 있다. 첫째 당시 재일교포 60만명의 성분을 분석하면 그것을 도저히 실현할수 없다

    중앙일보

    1984.03.27 00:00

  • (3975)-제80화 한일회담(174) 김동조|이대통령의 호출

    나는 59년9윌4일 경무대로 올라오라는 전갈을 받고 경무대현관으로 들어섰다. 현관에 막 들어서자 조정환외무장관과 홍진기법무장관이 나오고있었다. 조장관의 굳은 얼굴표정을 본순간 나는

    중앙일보

    1984.03.26 00:00

  • (3972)-제80화 한일회법(171)교포문제 해결방안

    캘커타협정은 조인한 날로부터 3개월 후, 즉 10월 1일부터 북송을 실시토록 규정했던 일본은 한국과 한일회담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태도였고 국적은 북송준비를 돕기 위해 대표단의 참여

    중앙일보

    1984.03.21 00:00

  • (3971)제80화 한일회담(170)|한일회담 재개

    허정 수석대표 등 한일회담 대표단은 8월 11일 넉넉한 활동비를 갖고 동경에 도착했다. 허 수석대표는 도일 전 국내 기자들과의 회견을 통해 북송 저지 계획 및 대일 통상방향 등에

    중앙일보

    1984.03.20 00:00

  • (3970)한일회담 한국대표단-제80화 한일회담(169)

    외무부는 이미 제어하기 힘든 상황으로 돌입한 북송 문제를 어떻게 하든 돌려보기 위해 한일회담 조기 재개 방안을 모색했다. 그러자니 연초 수석 대표직을 사임하고 유엔으로 귀임한 임병

    중앙일보

    1984.03.19 00:00

  • (3969)제80화 한일회담(168)-국적, 친일로 선회

    북송 문제에 대해 중립적 입장에 있던 국적이 친일적 자세로 전환한 것은 우리에게 치명적이었다. 유태하 주일 대사가 8월 5일 및 6일에 「야마다」 차관과 「맥아더」 주일 대사를 각

    중앙일보

    1984.03.17 00:00

  • (3968) 제80화 한일회담(167)

    나는 미국측의 친일적 자세 선회에 실망했다. 더 이상 미국측의 중재를 추구하는 것이 무익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29일 이대통령에게 더 질질 끌 시간적 여유가 없고 미국측의 중

    중앙일보

    1984.03.16 00:00

  • (3967) 제80화 한일회담(166)

    나는 「다울링」 주한 미대사의 중재안을 검토한 결과 미국측만 믿고있다가는 이것도 저것도 다 놓쳐버릴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미국측은 일본측의 위신을 지나치게 고려해 자꾸만 우리

    중앙일보

    1984.03.15 00:00

  • (3966) 제80화 한일회담(165)-제네바 대표부 설치

    유럽을 순방 중이던 「크리스천·허터」 미 국무장관은 7윌21일 제네바에서 「보아시에」 국적위원장과 오찬을 하면서 북송을 논의한것으로 보도됐다. 요담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외신은

    중앙일보

    1984.03.14 00:00

  • (3965)제80화 한일회담(164)-한일회담 재개건의

    나는 「다울링」 주한미대사와 유태하 주일대사, 그리고 국적으로부터 각기 들어온 정보와 정세를 분석한 결과 북송문제에 관한 정부의 단안이 빠르면 빠를수록 유리하고 질질 끌 경우에는

    중앙일보

    1984.03.13 00:00

  • (3964)제80화 한일회담(163)유공사 - 후지아먀 대좌

    유태하 주일대사와 「후지야마」외상은 13일 밤 3시간 동안 회담했다. 그들은 각각 「기시」 수상의 강력한 종용을 받고 3윌 이후 4개월만에 처음 만났다고 한다. 그들은 각각 북송을

    중앙일보

    1984.03.12 00:00

  • (3962)제80화 한일회담(161)미, 일에 영향력 행사|김동조

    7월7일 제네바의 국적사무실에서 일적과 북적대표단은 북송협정조인을 전제로 만났다. 일본측은 원래 이날 협정에 조인키로 비밀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워싱턴과 동경에서 미국관리들이 일본

    중앙일보

    1984.03.09 00:00

  • (3961)미국, 복안제시-제80화 한일회담(160)

    이대통령은 6월24일 『북송을 저지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수단을 동원하라. 다만 우리는 무력행사가 필요치 않기를 희망한다』고 천명해 북송선에 대한 무력행사도 불사하겠다는 강

    중앙일보

    1984.03.08 00:00

  • (396) -제80화 한일회담(159)구룬서 미적총재 방한

    「다울링」주한 미대사는 『한국정부는 일적과 북적간의 협정속에 규정된 국적의 역할은 일본의 북송실행을 합리화시켜주는 도장이나 찍어주는 행위밖에 안된다는 사실을 국적당국자들에게 일깨워

    중앙일보

    1984.03.07 00:00

  • 제80화 한일회담(158)미국에 중재요청

    정부는 북송계획을 막는 최후의 보루는 미국뿐이라는 결론을내렸다. 이대통령도 한일간의 중재를 미국에 요청할 경우 야기될 이해득실을 종합한 나의 건의에 재가를 내렸다. 당시 우리가 취

    중앙일보

    1984.03.06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3958)|제80화 한일회담(157)북송저지대책 부심

    일적과 북적간의 북송교섭타결은 우리 정국에 일대 회오리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여야는 한편으로는 북송저지 운동에, 또 한편으로는 외교진용의 쇄신요구에 초당적으로 뭉쳤다. 일본이 2월1

    중앙일보

    1984.03.05 00:00

  • (3957)제80화 한일회담(156)

    일본언론들은 5월하순 제네바의 일적대표단 소환문제를 일본정부가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태하주일대사에게 좀 기다려달라고 요청했던「사와다」수석대표의 간청이 우리측을 기만하기위한

    중앙일보

    1984.03.03 00:00

  • (3954)제80화 한일회담(153)북송업무에 국적결부 동의하면|"희망자 개별심사 포기" 밝혀

    외신들은 일적·북적간의 교섭을 「판문제네바회담」이라고 불렀다. 한국이 반대하고 불참한 가운데 판문점에서 휴전회담이 열렸듯이 이번 직접교설도 한국의 강력한 반대하에 직접교섭이 이루어

    중앙일보

    1984.02.29 00:00

  • (3953)제80화 한일회담

    일적과 북적은 4월13일 국적사무실에서 첫교섭을 시작했다. 일적의 노회한 「이노우에」외사부장은 이교섭이 국적의 주도하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동시에 그들의 국적협조획득실패

    중앙일보

    1984.02.28 00:00

  • 《3952》제80화 한일회담(151)|일적-북적 회담개시

    북송저지사명을 띠고 제네바에 파견됐던 장택상·최규남·유광우씨등 민간대표 3명은 4월8일 한달만에 귀국했다. 이들은 김포공항에서 조외무·최인규내무·홍진기법무장관등 각부장관과 이재학국

    중앙일보

    1984.02.27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