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114)

    114. 선림고경총서 성철 스님이 스스로의 법문집 11권과 함께 각별한 관심을 보인 책이 『선림고경총서』라는 37권짜리 방대한 선어록(선승 등의 어록)이다. 『선림고경총서』(이하

    중앙일보

    2001.11.12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113)

    113. 저서들 성철 스님 스스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기 위한 법문의 출판사업에는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매일 새벽 한시간씩 구술한 정성도 그렇고, 간혹 스승의 구술을 자장

    중앙일보

    2001.11.09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107)

    107. 언론에 알려진 첫 법문 성철 스님이 종정으로 추대되자 세속의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절간에서야 이미 유명한 큰스님이지만 세속에선 잘 알려지지 않았던 터라 기자들이 한꺼

    중앙일보

    2001.11.01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98)

    98. 師叔 자운스님 성철 스님의 도반(道伴)을 말하자면 같은 해인사에 머물렀던 자운(慈雲)스님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성철 스님은 해인사 부속 암자 중 가장 외진 곳인 백련암

    중앙일보

    2001.10.19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97)

    97. 평생의 벗 향곡스님 성철 스님이 1981년 조계종 종정에 추대되었을 때 처음으로 한 말이 있다. "향곡이 살아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아했겠노…." 향곡(香谷)스님은 그렇게 성철

    중앙일보

    2001.10.18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96)

    96. 道伴 청담스님 성철 스님은 괄괄한 성정 탓인지 가까운 도반(道伴.구도행의 동반자)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대신 몇몇 도반들과는 무척 허물없이 지냈고, 그 중에서도 청담

    중앙일보

    2001.10.17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95)

    95. 대불련과의 인연 성철 스님이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대불련)와 인연을 맺은 것은 한국불교의 미래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성철 스님은 당시를 얘기할 때면 언제

    중앙일보

    2001.10.16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94)

    94. 최초의 사자후 성철 스님이 대구 팔공산 파계사 부속 성전암에서 10년간 동구불출(洞口不出.일주문 밖을 나가지 않는 생활)을 마친 것이 1965년이다. 그 해 여름 스님은 경

    중앙일보

    2001.10.15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93)

    93. 뜨거운 학구열 성철 스님이 대구 파계사 부속 성전암에 머물던 10년간 스님을 줄곧 모셨던 첫 상좌 천제 스님은 그 시절을 '외부와의 철저한 단절', 그리고 '뜨거운 학구열'

    중앙일보

    2001.10.12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90)

    90. 봉암사 탈출 한국불교사에 한 획을 긋는 봉암사 결사는 6.25를 앞둔 불안한 상황에서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전쟁 발발 직전 빨치산들이 백두대간을 타고 남북을 오가며 게릴라

    중앙일보

    2001.10.09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89)

    89. 공주규약(共住規約) 성철 스님과 도반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산다' 는 취지에 맞춰 개혁불교의 틀을 갖추어가던 봉암사 결사. 그 정신을 오늘까지 생생하게 전해주는 문서

    중앙일보

    2001.10.08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87)

    87. 모든 걸 다바꿔 경북 문경 봉암사에 모인 성철 스님 일행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모든 것을 새로 만들었다. 성철 스님의 기억. "제일 먼저 비단으로 붉게 만든 가사들을

    중앙일보

    2001.10.04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86)

    86. 봉암사의 혁신 성철 스님은 1947년 한국불교의 정초를 잡기 위한 결사의 장소를 물색하다 경북 문경 봉암사로 결정했다. 당시 봉암사는 초라한 절이었지만 거대한 바위산인 희양

    중앙일보

    2001.09.28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72)

    72. 스승을 닮은 제자 성철스님의 은사인 동산스님이 상좌로 절집 생활을 시작한 성철스님에게 한 말이 있다. "잘 하려고 하면 탈나니 대강대강 사는 것이 대중살이다. " 깨달음을

    중앙일보

    2001.09.10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산 물은물(57)

    57. 성철스님의 아버지 성철스님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그러나 한 인물을 얘기하면서 그 부모에 대한 얘기를 생략할 수는 없다. 성철스님과 가까운 분들에게

    중앙일보

    2001.08.20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52)

    52. 큰스님은 '부잣집 맏아들' 성철스님이 태어난 생가터에 기념관을 짓고, 옆에 다시 겁외사(劫外寺)라는 이름으로 절을 창건한 것이 지난 봄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찾아

    중앙일보

    2001.08.13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48)

    48. 큰스님의 제일 관심사 "화두는 잘 되나?" 성철스님이 수시로 물어보는 말이다. 큰스님이 내게 내린 화두 삼서근(麻三斤)을 염두에 두고 얼마나 참선을 잘 하고 있느냐는 점검이

    중앙일보

    2001.08.07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46)

    46. 이웃마을 보시 성철스님의 나들이는 주로 가야산을 오르내리는 것이었는데, 어느날엔가 특별한 행차를 한 적이 있다. 행선지는 백련암에서 바로 보이는 마을이다. 마장(馬場)이라는

    중앙일보

    2001.08.03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41)

    41. '가야산 호랑이' 별칭 성철스님의 성격이 급하고 격하단 사실은 스님들 사이에선 잘 알려져 있다. 예컨대 큰스님이 찾는다하면 숟가락을 입에 넣었더라도 그 밥을 다시 뱉어 놓고

    중앙일보

    2001.07.27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40)

    40. 행자 상식 테스트 출가해 스님 되는 일에 어떤 일정한 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잘 모르기는 하지만 기독교 성직자의 경우 신학대학이나 대학원 같은 교육기관을 졸업하고 다시 일

    중앙일보

    2001.07.26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36)

    36. 나의 환손문제 해결 공양주 행자 시절의 일이다. 아침 공양시간이 됐는데도 반찬을 준비해야 하는 채공 행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원주스님께 "채공행자가 보이지 않는다" 고 알렸

    중앙일보

    2001.07.20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31)

    (31)몸에 밴 근검절약 시찬 시절 수시로 큰스님 방을 드나들곤 했는데, 어느날 물을 갖다드리려고 방문을 열어 보니 큰스님이 평소 안쓰는 안경을 끼고 뭔가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중앙일보

    2001.07.13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28)

    (28) 소금기없는 식사 큰절에 이어 어지간한 암자까지 다니며 '계를 받았다' 고 인사를 하고 백련암으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성철스님께 인사했다. "오냐" 하며 절을 받는 큰스님의

    중앙일보

    2001.07.10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26)

    26. 영어 실력 백련암은 '시주물을 화살인 듯 피하라' 는 성철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가능한 한 자급자족하는 살림을 지향했다. 그러다보니 울력(공동작업)이 많아 힘도 들었지만, 한

    중앙일보

    2001.07.06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