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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공천반대 인사 명단 선정사유
▶ 김종하 (한나라, 경남 창원 갑, 4선 10·11·14·15대>) ▣ 주요 검토 사유 ○골프외유-한통 - 국회 통신과학기술위원회 소속 김종하·박성범(이상 신한국당),조홍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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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정국기상도]재.보선 후유증…여야대치 격랑일듯
3.30 재.보선 후유증과 서상목 의원 처리 문제 등이 정국 기상을 좌우할 전망이다. 야당이 장외집회까지 운운하면서 빚어진 꽃샘추위는 총재회담으로 모처럼 찾아온 정국의 봄기운을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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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식 메모 'YS는 치유불능, DJ는 무서운 사람'
26일 경제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가 지난해초 일기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을 '형편없는 사람' '치유불능' 등으로 극단적인 표현을 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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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동·연희동 세배객 북적
올해 정치 지도자.중진들의 1일 신년하례 장면은 활기가 넘쳤다. 특히 전직 대통령의 집이 붐볐다. ◇ 김영삼 (金泳三) 전대통령 = 金전대통령은 새해 '호연지기 (浩然之氣)' 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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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섭씨, 다그치면 억울하다며 반격도 - 청문회 이모저모
청문회 이모저모 김기섭(金己燮)전안기부 운영차장은 23일 청문회에서“전혀 그런 일 없다”라는 말로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그는 의원들의 공세가 거세어지면 종종 얼굴근육을 씰룩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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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중씨는 김현철의 장세동' 위원들 푸념 - 청문회 이모저모
한보 청문회는 이틀 연속 증인들에게 당했다.박경식(朴慶植)씨의 안하무인.좌충우돌식 발언에 말려들었던 특위위원들은 22일엔 박태중(朴泰重)씨에게도 완패했다.朴씨는 철저히 준비를 해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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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길씨 제2의 장세동 결심했나 - 수감중 일본소설 '大望'읽고 영향받은듯
“홍인길의원은'김영삼대통령의 장세동(張世東)'이 되기로 한 것같다.” 12일 청문회를 지켜본 민주계의 소위 가신(家臣)이라는 상도동 비서출신 정치인들은 이같이 소감을 토로했다.洪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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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무책임한 관료들
한보철강 부도 나흘뒤인 지난 1월27일.경제정책의 총 책임자인 한승수(韓昇洙)부총리겸 재경원장관이 한보사태후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96년 정태수(鄭泰守)한보그룹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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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5.18사건 결심공판 15人의 최후진술
다음은 14일 저녁까지 진행된 결심공판에서의 피고인 최후진술내용이다. ◇전두환=본인이 부덕한 소치로 국민의 자긍심을 훼손한데 대해국민 여러분께 죄송하게 생각합니다.재판과정중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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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共때 막강 권세 군림 장세동.이원조씨 상반된 운명 화제
5공시절 막강한 실력자로 군림한 뒤 그동안 여러차례 수사기관의 표적이 됐던 장세동(張世東)전 안기부장과 이원조(李源祚)전은행감독원장의 상반된 운명이 화제다. 張씨의 경우 26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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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5.18재판 11차공판 지상중계
12.12및 5.18사건 11차공판이 3일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金榮一부장판사) 심리로 열려 장세동(張世東)씨등12.12관련 피고인 6명에 대한 반대신문과 전두환(全斗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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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5.18사건 관련 전두환前대통령 변호인 3인
전상석(全尙錫.66).이양우(李亮雨.63).석진강(石鎭康.56)변호사.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두 전직 대통령이 동시에 법정에 서는 세기적 심판이 열리면서 이들의 「방패」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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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수사 이모저모
…특별수사본부는 29일 오후1시50분쯤 장세동(張世東)씨를 재소환,전두환(全斗煥)씨 비자금의 조성과 관리등을 조사. 12일 1차 소환에서 『진실은 가혹하지만 영원한 것입니다』는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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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씨측 超特急구속 당혹-全씨 성명발표서 영장발부까지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이 3일오전 합천에서 강제연행돼 구속수감이 임박하자 全씨측 측근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속에 사후대책을강구하기에 분주.국민정서와 현정권에 정면도전하는 성명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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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씨 정면 반발-對국민성명 발표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은 2일 대국민성명을 발표,이날 예정됐던 검찰의 소환은 물론 향후 12.12,5.18 조사에 일절 응하지 않기로 하는등 검찰 재조사에 대해 전면거부 입장을 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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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씨 비자금 파문-불발로 그칠까 盧씨 대선자금 폭탄발언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 진영은 과연 초기의 「엄포」대로 여야에 대한 대선지원 자금을 모두 공개할 수 있을 것인가.사건이 터지자 세인은 「발언의 폭탄」이 터질지 매우 궁금해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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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끝.정권親衛서 거듭나기
81년초 5共 출범과 함께 정보부는 去하고 국가안전기획부의 시대가 전개됐다. 유학성(兪學聖).노신영(盧信永)부장을 거쳐 85년 2.12총선후 등장한 장세동(張世東)3대 부장은 전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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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반세기의 변화-시대를 비추는 말말말
광복 50년.제 나라를 되찾은 광복의 기쁨도 잠시,곧바로 이어진 동족상잔의 전쟁과 분단 반세기가 남북 모두에게 깊은 상처로 각인됐다.분단의 진앙(震央)을 둘러싼 정치.경제.사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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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백담사行 청산아닌 새갈등의 시작
백담사 유배생활은 5共청산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갈등의 시작이었다.백담사는 전두환(全斗煥)前대통령 일행에게 처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백담사라는 행선지를 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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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百潭寺行 절충 안팎
5,6共 핵심간의 실무협상이 본격화된 것은 88년11월18일.TV로 생중계되는 광주청문회 첫 회의부터 김대중(金大中)평민당총재가 직접『발포명령의 책임자가 전두환(全斗煥)씨라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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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이원조씨 全씨 낙향 내가 마무리
마지막 순간 5,6共간의 막힌 채널을 뚫는 밀사역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은 역시 전통적인 그림자 밀사 이원조(李源祚)의원이었다.그는 全.盧 두 사람 모두의 오랜 친구였을뿐 아니라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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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안기부CIA 蜜月
5共때 韓美관계는 朴正熙시대와는 판이한 밀월을 구가했다. 이는 全斗煥대통령이 朴正熙대통령의 독자적 군사외교노선을 일찌감치 포기,정통성의 결함을 對美밀착외교로 보완하려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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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제싸고 權府게임 全씨.盧씨 同床異夢
우리 憲政史에서 헌법개정은 통치권자와 후계자간의 미묘한 권력게임 측면이 있었다. 권력인계.인수문제를 놓고 두사람간의 정치적 이해가 다르면 개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대개의 경우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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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자 증언장소싸고 공방(국정조사 현장)
◎여 “사흘엔 반대” 권 국방 하루만 증언키로/“해외체류 증인들 귀국조치하라”야 공세 14대국회 첫 국정조사가 우여곡절 끝에 31일 건설위의 4개 정부부처 방문,문서검증을 시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