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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전문가좌담
中央日報 현대사연구소가 최근 러시아에서 발굴한『스티코프비망록』1부연재가 끝났다.비망록을 통해 해방정국의 감추어진 역사적 진실이 새로 밝혀지자 학계는 『현대사를 다시 쓰는 계기가 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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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蘇.中비밀방문,병력배치
1950년1월29일부터 8월29일,金日成은 스탈린과 毛澤東의지원약속을 끌어내는데 성공해 마침내 3백여만명이 사망.실종하는동족상잔의 사상 최대 비극인 6.25남침을 감행한다. ◇스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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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전쟁발발과 휴전
정부가 20일 발표한 러시아 외무부의 한국전쟁관련 문서요약은북한 金日成이 6.25 전쟁을 계획한 경위에서부터 蘇聯과 中國의 전쟁지원및 중공군 개입과정등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이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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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유례없는 49년 권좌/김일성 출생에서 사망까지
◎한국민엔 용서받지 못할 전범 낙인/6·25실패후 반대파 숙청 재기성공 북한의 김일성주석이 사망했다. 김일성처럼 극단적인 평가속에 살다간 인물도 드물 것이다.그는 북한주민에게「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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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7)|제89화 내가 치른 북한 숙청 (19)|남로당파 제거 (14)|전 내무성부상-강상호
모스크바에서 평양으로 소환돼온 주영하는 내무성 보안 요원들에 의해 공항에서 곧바로 중앙당 간부학교 (교장 박태화·소련파) 합숙소로 연행됐다. 그는 이곳에서 연금 생활을 하며 내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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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개혁:하(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50)
◎지주들 거센저항도 역부족/우익몰락 가속화/반공청년들 공산당 사무소등 습격·방화/「인민위」선 노동자선전대 조직/빈농에 “겁내지 말고 투쟁하라”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의 기습등장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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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욱목사집 폭탄투척사건(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46)
◎증언자 최의호씨/한밤에 수류탄… 아들·딸만 폭사/임정정치공작대 주도 「4인조」 침투/치스차코프집에도 의문의 폭탄/불길속 창문뛰쳐나와 “구사일생” 「3·1절 기념행사장에서의 김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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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암살 미수사건:상(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43)
◎46년 평양역광장/3·1절행사때 날아든 수류탄/김 연설 끝나자 군중속에서 청년이 투척/소 경비장교가 주워던지려는 순간 “꽝”/증언자 김세일씨 신탁통치 찬·반폭풍으로 벌집 쑤셔놓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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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김」은 소극동군 작품(비록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39)
◎김일성선택과 소군부 역할:상/스탈린 총애받은 스티코프가 주도/김 입북 한달전 부하보내 정지작업 소련군정이 33세의 청년 소련군 대위 김일성을 북한의 최고지도자로 선택한 과정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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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위세력손잡고 사회주의로통일”(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38)
◎박헌영의 정치노선:하/소의 「찬탁」지지에 겉으로만 따르는 척/남쪽 정세 불리하자 김일성 지지 선회 해방후 서울주재 소련영사관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박헌영은 남북의 「당중앙」위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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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투쟁자제 합당전력 다짐(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35)
◎박헌영김일성 6차회동:3/“극좌노선은 미군정에 빌미 제공”/박,월북으로 2인자 전락/북,김일성시대 본격 개막 박헌영의 최종월북은 해방과 더불어 시작된 민족주의자 대공산주의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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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박헌영-김일성 4차 회동(3)
46년7월, 남과 북에는 제2의 「좌익세력개편」이 전격 시작됐다. 김일성을 실세로 부상시킨 분국의 등장이 첫 개편이라면 북조선공산당의 조선신민당(신민당)과의 합당, 조선공산당과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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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좌파 끌어들여라(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24)
◎박헌영김일성 비밀회동:2/박김 밀담 열흘쯤 지나 여운형 평양에/소 영사관 통해 정보입수/홍명희등과도 접촉키로 박헌영의 3차 평양방문 분위기는 확실히 1,2차때와는 사뭇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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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김일성 오른쪽 앉혀 낙점암시/45년만에 밝혀진 북한 비사
◎평양에 군용기 보내 김·박헌영 불러/“박은 지명도 낮다” 판단 탈락/“차기후보” 주위 위로에 박 불만없이 소에 수긍/면접뒤 연안파 합당등 김 체제 확립 【모스크바=김국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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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평양 다녀온 박헌영 돌연 "찬탁"|신탁통치 소용돌이(1)
해방의 해도 거의 저무는 45년 12월28일 밤 박헌영은 38선을 비밀리에 넘고 있었다. 일행은 모두 5명이었다. 어둠 속에서 몇 사람들이 나타나 이들을 맞았다. 일행은 소련군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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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파 입북(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19)
◎김일성 집권 터 닦은 「정치일꾼」/소 지시로 5차례 2백여명 평양 도착/50년대초까지 당·행정기관 요직 장악 해방초기 소련군정을 지원하고 김일성 빨치산파와 함께 북쪽을 통치해나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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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승리로 끝난 「분국회의」(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18)
◎2차 집행위/자기의중대로 「통일전선」채택 성공/신진공산주의자들도 대거 가세 국내파 눌러 김일성은 입북 3개월만인 45년 12월18일 마침내 북한 공산당조직을 장악했다. 박헌영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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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 비운의 혁명가:상(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13)
◎팔로군서 활동하며 「조선해방」준비/대장정 참여해 포병장교로 용맹떨쳐/45년말 조선의용군 간부들과 평양에 해방 북조선에는 두명의 장군에 관한 전설이 풍미했다. 그 한사람이 항일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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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노선 걷는 북조선분국(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11)
◎「분국」아닌 「중앙국」으로 둔갑/모른척한 박헌영 스스로 권리를 포기/국내파 반발속 김일성 기반 착착 강화 서북 5도 당책임자 및 열성자대회 이틀째인 45년 10월11일. 크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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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분국 창설(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10)
◎국내파에 견제당하는 김일성 대회기간 내내 박헌영측과 심한 갈등/소서 추천한 김용범이 책임비서 맡아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의 등장은 북한의 정치적 전환점이었다. 이전까지 김일성의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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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영김일성 연쇄비밀회담(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9)
◎공산당 골격짜기/박,체포령이전 1년걸쳐 여섯차례나/김의 북조선분국 설치안 격론끝 양보 1945년 10월8일 저녁. 개성근처 소련군 38경비사령부 회의장에서는 비밀회의가 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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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당 창당(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8)
◎김일성 고당에 「허수아비 정당」간청/「결사의 자유」선전하려 정략적 이용/공산당 책임비서로 내정되자 “발뺌” 해방후 북한의 두 지도자 조만식과 김일성은 상당기간은 외형상으로나마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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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환영대회(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6)
◎소 훈장달고 소서 준 원고 낭독/「전설의 노장」기대한 군중들 “웅성웅성”/“가짜다” 소동 일자 소련군이 총 쏘기도/증언자 박길용씨 박재창씨 해방 두달이 지난 45년 10월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