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외무부한국전관련문서요약>3.蘇.中비밀방문,병력배치

중앙일보

입력 1994.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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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950년1월29일부터 8월29일,金日成은 스탈린과 毛澤東의지원약속을 끌어내는데 성공해 마침내 3백여만명이 사망.실종하는동족상잔의 사상 최대 비극인 6.25남침을 감행한다.
◇스탈린 開戰 동의 ▲1950년1월29일=슈티코프 북한주재소련대사는 첩보로 수집된 남한정부의 1월6일자 비공개회의 내용을보고. 동 회의에서 결정된 주요 결론은 다음과 같다.
1.분쟁발생시 미국이 한국을 도와줄 희망은 별로 없음.
2.미국은 臺灣방어를 위해 蔣介石을 도와주지 않을 것임.
3.영국의 중국승인(50년1월6일)은 서방의 북한승인이나 마찬가지임.
▲1월30일=스탈린이 서명한 전보가 평양으로 타전됨.전문에는金日成의 불만은 이해가 되나 북한의 지도자는 남한에 대하여 하려고 하는 「큰일」에 관해 치밀한 준비를 해야 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지나친 모험을 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언급. 스탈린은 金을 접견,이 문제를 논의할 준비가 되어있으며그를 지원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1월30일=슈티코프는 상기 스탈린의 전문을 金日成에게 전달.金은 이 전문에 대단히 만족스러워 했으며 스탈린이 이 문제에관해 도울 준비가 돼있다는 말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2월4일=슈티코프가 金日成을 면담.
金은 전체 인민군 편제를 10개사단으로 증강하기 위해 3개 보병사단을 추가로 창설할 수 있는지 문의.
또 51년에 제공키로 되어 있는 소련의 차관을 3개사단 창설을 위한 무기구입을 위해 50년 내에 사용할 수 있는지 여부도문의. ▲2월9일=모스크바로부터 3개 보병사단의 추가창설과 51년분 차관을 50년중 사용하는데 기본적으로 동의한다는 통보가전달됨. ▲3월9일=평양주재 소련대사관은 1억2천만~1억3천만루블 상당의 무기구입을 원한다는 金日成의 공한을 모스크바로 송부. 대금은 총 1억3천8백5만5백루블에 상당하는 금 9t.은40t및 1만5천t의 모나츠석으로 지불.
▲3월14일=金日成은 51년도분 차관에서 7천10만루블을 3개 보병사단용 무기구입을 위해 50년중에 집행코자 한다는 공한을 송부.이 공한에는 구입무기에 관한 상세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3월17일=스탈린은 무기구입에 관한 金日成의 3월9일자 요청에 동의한다고 회신.
◇金日成,스탈린.毛澤東과 연쇄회담 ▲3월20일=슈티코프는 金日成과 朴憲永에게 3월17일자 스탈린의 메시지를 전달.면담중 金은 4월초에 朴憲永과 함께 스탈린을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스탈린에게 전해줄 것을 요청.金은 이번 방문을 46년도 방문처럼비공식(비밀)방문으로 할 것을 제의.
▲3월23일=스탈린은 金日成및 朴憲永과의 회담에 동의한다는 전문을 타전.
▲4월=金-스탈린 모스크바서 회담.스탈린은 국제환경이 유리하게 변하고 있음을 언급하고 북한이 통일과업을 개시하는데 동의.
▲4월25일=金日成과 朴憲永은 소련에서 平壤으로 귀환.
▲5월12일=슈티코프,金日成.朴憲永과 면담.金이 소련에서 귀임한후 이주연대사로부터 毛澤東과의 면담결과를 보고받았다고 통보. 金은 毛가 한국통일은 무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미국이 남한같은 작은 나라 때문에 3차대전을 시작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미국의 개입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金日成은 우선 毛澤東에게 북한으로 이양되는 중국군 소속의 조선인사단을 위해 중국이 노획한 일본및 미국무기를 제공해줄 것을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모든 필수불가결한 원조는 이미 모스크바에서 제공받았기 때문에 毛澤東에게 그외에 부탁 할 일은 없다고 언급.
그는 또한 50년6월께로 예정하고 있는 남침계획을 구체적으로수립하라는 지시를 북한군 총참모장에게 시달했다고 밝혔다.
▲5월13일=金日成과 朴憲永은 北京에 도착,저녁 늦게 毛澤東과 면담.북한지도자들은 필리포프동무(스탈린)가 모스크바 회담시현 국제환경은 과거와는 다르므로 북한이 행동을 개시할 수 있으나 최종결정은 毛澤東과의 협의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언급한점을 설명.毛澤東은 소련정부에 대해 스탈린 자신으로부터 설명을듣고싶다고 요청.
***침략위한 명분 축적 ▲5월14일=필리포프가 毛澤東에게 보낸 특별전문.「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통일에 착수하자는 조선사람들의 제청에 동의한다.그러나 이 문제는 중국과 조선이 공동으로 결정해야 할 문제이고 중국동지들이 동의하지 않는 경우에는다시 검토할 때까지 연기되어야 한다」.
▲5월15일=모스크바의 메시지를 받은후 毛澤東은 金日成.朴憲永과 구체적으로 의견을 교환.金日成은 북한이 3단계 계획을 수립했다고 제시.제1단계는 군사력을 준비하고 이를 증강함.제2단계에서는 평화통일에 관한 對南제의를 하고 제3단계 로 남한측의평화통일제의 거부후 전투행위를 개시한다.毛澤東은 이 계획에 찬성을 표명.
▲5월16일=모스크바로부터 필리포프동무가 서명한 암호전문이 도착.이 전문은 통일후에 중국과 북한간에 우호동맹및 상호원조조약을 체결한다는 계획에 동의.
이날 金日成.朴憲永 北京에서 平壤으로 귀환.
▲5월29일=金日成은 슈티코프대사에게 4월 모스크바회담시 합의된 무기와 기술이 이미 대부분 북한에 도착했음을 통보.
金日成의 지시에 의해 북한군 참모장이 바실리예프장군과 함께 남침공격 계획을 수립한바 북한지도부는 이를 승인.북한군은 6월까지 완전한 전투준비 태세를 갖추게 됨.金日成은 6월말에 전투행위를 개시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함.그 이후는 시기적으로 적절치 못하다고 진단.그 이유로 첫째 북한군의 전투준비에 관한 정보가 남쪽에 입수될 수 있으며 둘째 7월에는 장마가 시작된다는 점을 꼽는다.이와 관련,6월8~10일께 집결지역으로의 병력이동을 시작할 것임.
***침공작전 蘇에 보고 ▲6월11일=남한 통일민주조국전선측이 제의한 평화통일안을 거부.
▲6월12일=북한군이 38선 이북 10~15㎞지역으로 재배치되기 시작.
▲6월16일=소련대사는 북한군총참모부가 작성한 침공작전 계획을 모스크바에 보고.동 계획은 1개월기간으로 3단계로 구성됨.
▲6월16일=북한 최고인민회의는 남한 국회에 평화통일 방안을제의. ▲6월20일=소련대사는 모스크바에 북한군의 수륙양용 작전용 선박공급을 요청.그는 또한 소련군수병을 함께 제공할 수 있는지 여부를 문의.
▲6월20일=모스크바시간으로 오후 10시 슈티코프는 모스크바로 전화를 걸어 모스크바 시간으로 오후 11시쯤 남한정부가 북한에 대해 공격을 시작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첩보가 북한측에 오후 8시쯤 입수되었다고 보고.
▲6월21일=슈티코프는 스탈린에게 金日成의 메시지를 전달.이메시지에는 북한측이 입수한 각종 첩보에 의하면 북한군 침공에 관한 정보가 남한측에 알려졌으며 이와 관련,남한이 전투준비태세를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내용이 있음.
이와 관련,金日成은 전에 구상했던 옹진반도에서의 전초전을 수행치 않고 6월25일 全전선에 걸쳐 전투를 시작하는 것이 목적에 부합한다고 언급.
▲6월21일(밤)=북한군은 2차에 걸쳐 북한에 대한 전투행위를 개시하라는 남한육군의 명령을 라디오를 통해 포착.
▲6월22일=북한주재 소련대사관에 암호전문의 해독은 바람직하지 못하니 향후 일체의 암호전문을 해독하지 말라는 모스크바의 지시가 시달됨.이후 1950년말까지 平壤과 외무부간에는 전보 교신이 중단된다.
▲7월1일=핀시(스탈린)가 평양주재 소련대사에게 보낸 암호전문.북한군의 공세가 계속될 필요가 있음.
▲7월2일=로신 중국주재대사는 周恩來의 요청에 따라 방문.周恩來는 소련과 중국의 불참하에 결정된 한반도문제에 관한 유엔안보리 결의는 효력이 없다는 점을 공식 발표할 용의가 있다고 언급. 북한군은 釜山.木浦.馬山등 항구들을 점령할 수 있도록 남으로 신속히 진군해야 하며 毛澤東은 서울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미군이 상륙할 가능성이 있는 仁川지역에 강력한 방어진지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음.
▲7월4일=슈티코프대사가 핀시에게 유선으로 보낸 암호전문.7월3일 슈티코프대사는 金日成.朴憲永과 만났는데 그때 金은 소련에 조언과 원조를 요청했음.미군 상륙작전이 예상되므로 이에 대비하기 위하여 무기.탄약보급을 증가할 필요가 있고 인민군 지도부를 개편 강화하고 있음.
▲7월5일=필리포프가 北京주재 소련대사에게 유선으로 보낸 암호전문.스탈린은 周恩來에게 적군이 38선을 넘을때 의용군이 북한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중-조국경에 중국군 9개사단을 즉시 집결시키는 대책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하고 소 련은 이를 항공대로서 엄호할 것임을 언급.
***中共軍 개입 요청 ▲7월6일=핀시가 북한주재 슈티코프대사에게 보낸 암호전문.무기.탄약을 북한에 수송하는 루트를 정하고 바실리예프 수석군사고문은 평양에 있는 것이 보다 유익하겠음. ▲8월16일=모스크바는 유엔 안보리에서의 소련 입장에 관한회람전보를 타전.
1.유엔에서의 한국문제 논의를 위해서는 중국의 초청과 조선인민대표의 참가 필요성을 고려해야 한다.
2.한국에서의 전쟁행위를 중지하고 동시에 외국군대를 철수시켜야 함. ▲8월17일=周恩來는 8월16일 소련 정부의 제안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로신에게 언급.그는 즉각 毛澤東에게 동 내용을 보고하여 승인을 받아 유엔 안보리와 사무총장에게 소련의 제안내용을 타전할 것임을 확인.
▲8월19일=毛澤東은 유진을 초청하여 약 3시간 이상동안 면담,한국사태를 언급하면서 동 사태 전개에 관련 두가지 가능성에관한 견해를 피력.
1.만일 미국이 이제까지의 전력수준으로 계속해서 전쟁을 수행할 경우 가까운 시일내에 한반도에서 패퇴하여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될 것이며 이것이 상황전개에 제일 바람직한 경우임.
2.미국이 조선에서 승리를 거두려는 의지를 가지고 총력전을 펼치기 위해서는 30~40개의 사단이 필요함.
이러한 경우 북한 자체의 힘으로 이를 물리칠 수 없으며 직접적인 중국의 도움이 필요하다.북한과 중국의 합동전력은 미국의 30 ~40개사단을 궤멸시킬 수 있을 것임.
이런 상황이 실현되는 경우 소련과 중국에 유리하게 제3차 세계대전을 발발시킬 수 있는 기회가 조성될 것이다.
▲8월28일=학자 유진은 毛澤東 자택의 오찬에 참석.毛澤東은한국전에 관해 언급하면서 최근 정보로 미루어 미국은 조선에서 군사력을 강화시키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이와 관련,가능한 한국전의 전개양상중 두번째 경우가 실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고 언급.
즉 전쟁은 장기화되고 미국은 점점 더 많은 군대를 조선으로 파견할 것이라고 평가.
▲1950년8월29일=소련은 중국정부가 기제출한 요청에 따라1년의 기간동안 38명의 방공및 공군고문관을 중국 인민군에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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