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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외무부한국전관련문서요약>1.전쟁발발과 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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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부가 20일 발표한 러시아 외무부의 한국전쟁관련 문서요약은북한 金日成이 6.25 전쟁을 계획한 경위에서부터 蘇聯과 中國의 전쟁지원및 중공군 개입과정등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이번에 공개된 내용은 대부분 그동안 학계나 러시아 전직 관리들의 증언등을 통해 알려진 것들이다.그러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줄 만한분명한 사료가 없어 학계에서는 한국전의 발발동기등을 놓고 이견이 여전히 남아있었다.이번 문서공개로「6.25 남침」이 정부간문서로 뒷받침 됐으며 논란도 종 식되게 됐다.中央日報는 정부가공개한 전쟁문서 요약을 실은데 이어 3회에 걸쳐 세부내용을 게재하는등 모두 4회 연재한다.
[편집자註] 북한의 남침준비가 본격화된 것은 49년 3월 5일.모스크바를 방문한 金日成은 스탈린과의 회담에서 남한에 대한무력침공과 무력에 의한 조선통일에 관한 소련 지도부의 의견을 문의했다.이 자리에서 스탈린은 북한군이 남한군에 대해 절대적 인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는 한 공격을 시작해서는 안된다는 점을강조했다.
그에앞서 金日成은 그해 1월부터 북한주재 소련대사 슈티코프를통해 모스크바를 공식방문하는 것을 협의하기 시작한다.
이 협의에서 북한은 회담의제중 북한군이 무기를 구입하는데 필요한 3천만달러 상당의 차관을 요청할 것임을 밝혀 이미 전쟁을도발할 생각이 있음을 내비치고 있었다.
스탈린과 회담한지 한달 보름여만인 4월28일 金日成은 스탈린에게 서한을 보내 북한군의 무력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서한에서 金日成은 북한군의 기계화와 단순기술 이전은 5월까지,항공기술은 9월까지 완전히 이행해줄 것을 요청한다.남침에대비한 일정을 세워두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 당시 金日成은 스탈린과 협의하는 한편으로 中國과도 남침계획을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었다.5월14일 그는 북한군 정치국장인 金日이 중국을 방문한 결과를 슈티코프 대사에게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金日成은 金日이 毛澤東.周恩來.周德.高崗등과 만나 만주지역에 거주하는 韓人들로 구성된 중공인민해방군 4개사단을 북한군에 이관하는 문제를 협의했으며 毛澤東이 3개 韓人사단을 즉시 또는 한달 이내에 북한군에 이관하기로 동 의했음을 전했다. 그러나 毛澤東은 중공군이 蔣介石軍과 전투중이어서 북한을도울 수 없으며 국제정세가 유리하지 않음을 들어 북한이 가까운시일안에 남침하는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소련정부는 6월4일 金日成이 요청한 무기와 군사기술을 제공키로 결정했음을 통보했으며 북한은 소련의 지원에 대한 대가로 정미된 쌀 3만t을 제공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8월 슈티코프 대사는 북한 지도자들과 면담한 결과보고에서 남한이 통일민주조국전선에 의한 동시선거를 거부하고 있으므로 북한은 대남공격을 준비할 수밖에 없으며 이 경우 남한에서는 李承晩정권에 대한 대규모 민중봉기가 일어날 것으로 보 고 있다고 밝혔다. 그 직후 슈티코프 대사를 매개로한 북한의 남침계획에 대한 논의는 잠시 냉각된다.金日成은 부분적이나마 남한 일부를 점령하는 공격을 즉각 감행해야 한다면서 그계획을 밝혔으나 슈티코프의 반응은 냉담했다.슈티코프는 남침준비를 더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8월 14일 金日成은 슈티코프 대사에게 남침의 당위성을 재차강조하면서 소련의 추가적인 기술과 무기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하고甕津을 점령해 38도선으로 이루어진 경계선을 1백20㎞로 줄임으로써 최소한의 병력으로 경계선 방어를 가능하 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슈티코프 대사는 다시한번 상황을 평가해 보도록 권고했다.
슈티코프 대사는 金日成의 이같은 계획에 대해 타당성을 의심하는 보고를 소련정부에 보냈으나 金日成은 슈티코프의 하급자인 툰킨 공사와 접촉해 甕津점령계획을 타진했다.
그러자 소련정부는 툰킨 공사에게 金日成의 계획을 자세히 평가해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툰킨 공사는 9월 11일 金日成과 朴憲永을 면담,金日成이 38도선 지역에서의 충돌경험을 토대로 남한군의 전투수행능력이 매우 취약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남한군 예하부대 거의 전부에북한 요원들이 침투돼 있음을 ■혔다고 보고했다.
金日成의 잠정적인 공격계획은 甕津을 우선 점령하되 상황을 보아가며 남침을 계속하든지,아니면 남북한 경계선을 3분의 1로 축소해 경계를 강화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툰킨공사는 金日成의 제한적인 남침계획이 전면적인 내전을 유발할 위험성이 매우 높으며 당시의 대내외적 상황으로 보아이런 위험성을 갖는 남침을 시작할 시기가 아니라는 자신의 의견도 함께 보고했다.
그 결과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9월24일 평양 주재 대사에게 남한에 대한 공격은 시기적으로 적절치 못하다는 지침을 내려보냈다.
그러나 이 지침은 북한이 남한내 빨치산활동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에 대해선 승인했다.
그로부터 약 3개월이 경과한 12월29일 슈티코프는 金日成의메시지를 다시 모스크바에 전달했다.50년중 약 1억1천2백만 루블에 상당하는 무기를 원조해줄 것을 요청하면서 그 대가로 비철금속을 소련에 제공하겠다는 내용이었다.
***非鐵금속 蘇에 제공 金日成의 남침계획에 대한 소련정부의반대 입장은 해가 바뀌면서 차츰 긍정적인 것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50년 1월17일 슈티코프는 한 파티에서 만난 북한 지도부와의 대화내용을 소련에 보고했다.보고내용은 金日成이 이제는중국이 통일됐으므로 남한을 해방시킬 차례라고 언급했음을 밝히는것. 金日成은 또 49년3월 스탈린이 남한의 북침에 대한 반격만을 승인했으나 남한이 공격을 늦추고 있어 반격할 기회가 없음을 지적하고 스탈린과 다시 면담하겠다는 희망을 말했다.
그는 스탈린과 면담이 불가능할 경우 毛澤東과 면담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毛가 49년 5월 중국통일후 북한을 돕겠다고 한 사실을 상기시켰다.
金日成은 이와함께 甕津반도 점령계획을 다시 설명하고 스탈린이왜 이 계획을 허락하지 않는지를 직접 만나 들어보고 싶다고도 했다. 1월30일 스탈린이 직접 서명한 전보가 평양으로 타전됐다. 金日成의 불만은 이해하지만 지나친 모험을 해서는 안된다는내용과 함께 金日成을 만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2월4일 金日成은 3개 보병사단을 추가로 창설할 계획을 승인해줄 것과 51년분 차관을 50년에 당겨서 사용하는데 동의해줄것을 요청했으며 10일 소련은 이 요청을 승인한다고 통보했다.
한달보름께 뒤인 3월20일 슈티코프 대사는 스탈린의 메시지를金日成에게 전달하는 자리에서 金日成으로부터 자신과 朴憲永이 4월초에 모스크바를 비밀방문,스탈린을 만나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렇게 이루어진 스탈린과 金日成의 면담에서 스탈린은 국제환경이 유리하게 변하고 있다면서 북한이 통일과업을 개시하는데 동의했다.그러나 스탈린은 최종적인 결정은 중국의 동의아래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했으며 두 사람은 중국이 부정적인 반 응을보이면 결정을 연기키로 합의했다.
4월25일 平壤으로 귀환한 金日成과 朴憲永은 5월13일 北京을 방문,毛澤東과 만나 스탈린 회담결과를 설명했다.
毛澤東은 즉각 모스크바에 조회했고 모스크바로부터 회담결과를 확인한뒤 金日成.朴憲永등과 구체적으로 전쟁계획을 토의했다.
이자리에서 金日成은 3단계 남침계획을 설명했다.1단계에서는 군사력을 증강하며 2단계에서는 평화적 통일에 관한 對南제안을 하고 3단계로 남한이 평화통일 제의를 거부한 직후 전투를 개시하는 내용이었다.
毛는 이 계획을 지지하는 한편 몇가지 작전상 충고를 했다.毛는 또 중국이 臺灣을 점령한 후에 북한이 작전을 시작하면 중국이 충분히 도와줄 수 있을 것이지만 북한이 현 시점에서 작전 개시를 결정했으므로(가능한 범위에서만)필요한 협력 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5월29일 金日成은 슈티코프 대사에게 소련에 요청한 무기와 군사기술이 대부분 북한에 도착했음을 통보했다.
이와 함께 북한 지도부는 소련군 장군 이바실리에프와 북한군 참모장이 수립한 남침계획을 승인했다.이 계획은 군 조직문제를 6월1일까지 완료토록 하고 6월안에 모든 전투준비를 마친다는 내용. 金日成은 슈티코프에게 6월말에 남침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그는 시기선택의 근거로 6월이 지나면 북한군의 전투준비에 관한 정보가 남한에 전해질 가능성이 있으며 7월에는장마가 시작된다는 점을 꼽았다.
남한은 6월11일 북한의 통일민주조국전선이 제의한 평화통일 방안을 거부했고 북한은 12일부터 38도선 이북 10~15㎞ 지역으로 군을 재배치하기 시작했다.
***3단계 남침계획 소련대사는 16일 북한군 총참모부가 작성한 침공작전 계획을 모스크바에 보고했다.
소련정부는 6월22일 북한주재 소련대사관에 암호전문을 해독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므로 이를 중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이로부터 50년말까지 소련외무부와 平壤 사이의 전보 교신은 일체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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