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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서베이 ‘대한민국의 상징은?’] 대표 정치인 = 박정희·이승만, 대표 경제인 = 정주
건국 60돌을 맞는다.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한 후 두 세대가 흘렀다. 사람으로 치면 환갑이다. 올해 창간 40주년을 맞는 이 오피니언리더 100명에게 물어 건국 후 한국사회를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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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례 총선 고배 끝 구청장 당선된 김도현씨 간고등어 22마리에 당선 무효
김도현(사진) 서울 강서구청장이 26일 구청장 직을 잃었다. 대법원 2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이날 지난해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구 주민들에게 간고등어를 제공한 혐의(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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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 `천연석으로 그린 그림`전10월 30일까지 `오뜨클라쎄` 갤러리문의: 02-511-6688천연석을 화폭 삼고 금속을 붓 삼아 생활 속에 살아 숨쉬는 공예품을 만드는 김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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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헌익 부국장 영결식
고 이헌익 중앙일보 부국장의 유족들이 고인이 근무했던 사옥을 돌아보고 있다. 후배인 문화부문 강승민 기자가 영정을 들고 앞에 서있다. [강정현 기자] 17일 순직한 고 이헌익(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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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머니… 민중미술가가 불러낸 그리운 그 얼굴
통일문제연구소 안방에서 신학철 화백(左)과 백기완 소장이 그림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성룡 기자 서울 혜화동 통일문제연구소 안방이 '반짝 미술관'이 됐다. 신학철(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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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주먹·광원·디자이너·CEO … 몸으로 쓴 이력서
방동규(맨 오른쪽)씨의 자서전 '배추가 돌아왔다'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인사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용태 민예총 회장, 이부영 전 국회의원, 백기완 통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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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없는 영혼' 작가 공지영
펴냈다 하면 베스트셀러! 공지영 신드롬! 가히 2006년 출판계의 키워드다. 다른 소설가의 작품이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시기에, 실용서가 아니면 팔리지 않는 척박한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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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은 다시는 한국영화를 볼 수 없다"
스크린쿼터 축소 시행일에 맞춰 '스크린쿼터 원상회복 및 한미 FTA 저지를 위한 결의대회'(이하 결의대회)가 영화인과 시민 등 5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대학로에서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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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낭만주먹 낭만인생 50. 연재를 끝내며
방동규씨가 팔 근육을 자랑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요즘 이래저래 살이 조금 빠졌어. 그래서 좋아요. 몸도 가볍고…. 지방이 빠져나간 지금이 벌크(근육덩이) 만들기 딱 좋을 때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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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낭만주먹 낭만인생 48. 조선의 3대 구라
1998년 친구들과 자리를 함께 한 필자(맨 왼쪽). "기왕에 '구라'얘기가 나왔으니 이른바 '조선의 3대 구라'라는 말이 나오게 된 연유도 밝혀야겠다. 대개는 문단 후배들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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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은 영혼결혼식 위해 만들어진 노래
5.18 광주 민주화운동 26주년 기념식을 앞둔 17일 저녁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5.18 26주기 전야제에서 80년 5월 당시의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광주=연합뉴스) 국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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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낭만주먹 낭만인생 46. 자장면집 주인
1990년대 초반 방수포 제조회사에 대표로 취임했을 때의 필자. 1980년대 중반 50대에 접어든 나는 취직은 포기하다시피 했다. 사실 가진 것 없고 특별한 기술도 없는 보통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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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낭만주먹 낭만인생 43. 형무소 생활
간첩죄로 수감되기 직전 어머니와 함께 한 필자. 간첩죄로 기관원에게 끌려간 뒤 무혐의로 풀려나기까지 나는 꼬박 6개월 동안 형무소 신세를 졌다. 잡범도 못되는 내가 사상범으로 둔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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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낭만주먹 낭만인생 42. 간첩죄 구속
1974년 간첩죄로 구속된 필자의 감방 동료들은 이른바 '문인·지식인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소설가 이호철·임헌영씨 등이었다. 사진은 당시 사건을 다룬 중앙일보 지면. "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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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낭만주먹 낭만인생 41. 노나메기농장 일
1974년 나이 마흔에 장가를 갔다. 사진은 농장 일을 하느라 검게 탄 얼굴로 치른 결혼식 피로연. "친구여, 어리석음이 더욱 커지기 전에 그대를 묶어놓고 있는 것들로부터 멀어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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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낭만주먹 낭만인생 40. 노나메기농장 일
농장 개간 이듬해에 태어난 첫 딸 방그레를 안고 있는 필자. 오른쪽은 아내다. "위 부동산은 증여자 최재돈의 소유인 바, 금반(이번) 방동규에 증여할 것을 확약하고, 수증여자(받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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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낭만주먹 낭만인생 39. 독지가 최재돈
농장 기증자 최재돈씨와 주고받은 문서. 10만 평 땅을 무상으로 증여한다는 점 등을 명시했다. 강원도 철원의 땅을 무상으로 희사했던 최재돈이란 분을 만난 것은 1972년 말 첫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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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낭만주먹 낭만인생 38. 땅 10만 평
1973년 여름 노나메기농장 안 움막에서 필자의 일가 친척들이 작업 도중 짬을 내 한담을 나누고 있다. "일제 시절 울분이 치밀 때면 찾아간 곳이 평안도 용강군이었어요. 홍경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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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낭만주먹 낭만인생 37. 구룡포 머슴 생활
구룡포 머슴 생활 1년 뒤 정착했던 철원 노나메기농장에서의 필자.(맨 오른쪽) 지금도 내 마음에는 심훈의'상록수'가 어른댄다. 19세기 덴마크 황무지를 개척했던 지도자 그룬드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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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낭만주먹 낭만인생 36. 살롱 드 방
문인·화가 친구들과 함께 한 필자(왼쪽에서 둘째). 필자 오른쪽으로 소설가 천승세씨, 화가 주재환씨가 보인다. 1971년에 차렸던 고급 맞춤옷집 '살롱 드 방'은 잠깐 사이에 국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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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낭만주먹 낭만인생 35. 살롱 드 방
고급 맞춤옷집 ‘살롱 드 방’ 입구에 선 필자. 선글래스에다 양복의 행커치프까지 잔뜩 멋을 냈다. 서독과 프랑스 생활 6년을 거쳐 서울에 도착한 때가 1970년 9월이었다. 파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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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낭만주먹 낭만인생 26. 범어사 승려 노릇
지난해 말 평소 친하게 지내는 시인 신경림(左)과 자리를 함께 한 필자. [안성식 기자] 나의 도깨비 기질은 20대 시절 승려생활에서 재확인된다. 직업은 대부분 거쳐봤다지만, 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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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낭만주먹 낭만인생 24. 풋사랑 여인
1970년 1월 중동 근무 시절의 필자. 아랍인 복장이 이채롭다. 부산 피란지에서 거금을 모을 때 내가 취급하지 않았던 품목은 거의 없었다. 전라도 농가에서 돼지털을 대량으로 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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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낭만주먹 낭만인생 18. 은인 선우휘
선우휘씨가 쓴 조선일보 1973년 5월 15일자 칼럼. 필자의 농장실험을 소개 했다. 선우휘를 처음 만난 것은 어제 말했듯이 술값을 얻어내려 그가 근무하는 조선일보 주필실을 들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