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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1128일의 기억] 중공군과의 대회전 (276) 총성이 멎다
휴전이 코앞에 닥친 1953년 4월 백선엽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휴전 회담장인 판문점을 방문해 아군 측 막사를 시찰하고 있다. 휴전회담은 2년여 동안 지루하게 벌어져 그해 7월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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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독하면 신촌으로 권력의 ‘건강 경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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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동지들 전적비나 세웠으면…|군번없는 「화무결사대」12명 6·25격전지 「큰골」찾아
『바로 이 자리였지…』노병들은 눈시울을 적셨다. 25일 낮 강원도춘성군북산면오항리 큰골-. 인적없는 산기슭에 선노병 12명은 39년전 이일대를 근거지로 용맹을 떨친 화무결사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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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흥모(성균관대 교수)|김창순씨(북한 연구소 이사장)"우리국민의 자신감 나타낸 것"|한적의「불적제의 수락」의 의미
김=북적 제의에 대한 한적의 수락은 남북관계에서 본다면 7·4공동 성명이래 가장 충격적입니다. 우리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빅뉴스인게 틀림없습니다. 이번 한적의 조치는 크게 환영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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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미국무성 극비문서 30년 만에 공개|에버레디 작전계획
미 합참은 52년6월25일 9개항의 이 박사 제거계획지침을 「클라크」 장군에게 시달했다. 이에 대해「클라크」장군은 7월5일자의 보고서를 통해 「작전계획수립 완료」를 보고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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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반 이승만 쿠데타 음모
【워싱턴=장두성 특파원】한국전쟁을 종식시키겠다는 선거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미국의 「아이젠하워」행정부는 53년 초 휴전협상이 성공하지 못할 경우 전술원자무기를 사용하겠다는 경고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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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자유당과 내각(19)
부산정치 파동 때 미군정 실시가 검토되었던 것 같다. 에버레디라는 암호명이 붙은 미국무성의 비밀문서는 53년에 미국이 군정실시를 계획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대통령의 휴전반대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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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그 입지의 현장을 가다|반공포로출신 재인 실업인 지기철씨(5)
【뉴델리=김동수 특파원】이런 고생 속에서 남미 정착을 꿈꾸고 수용소 급식으로 참아 가며「유엔」서 지급하는 50「루피」를 아껴 모으는 동료도 있었다. 곁에서 그 악착스러움을 느끼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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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인도군의 포로관리(10)|설득설전(6)
설득 전쟁을 끝마친 2만 여명의 반공 포로들은 인도 군 관리아래 들어간지 1백 20일만인 54년 1월 20일 상오 10시 42분 태극기를 높이 들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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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6)|중립지대 안의 수용소(1)|인도군의 포로관리(1)
휴전조인이 끝난지도 월서가 지난 53년9월초 인천 앞바다의 미 해군항공모함 갑판 위에는 30여대의 「헬리콥터」가 요란한 폭음을 내면서 북녘을 향해 부산하게 이항했다. 흰 「더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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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8)|휴전회담(후반부)(23)|한미관계의 긴장(3)
「아이젠하워」대통령은 6·18반공포로석방직후 이 대통령에게 전문「메시지」로 항의하는 한편 직접 특사를 서울로 파견하기로 하였다. 원래 「아이크」행정부는 6·18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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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6)휴전회담(후반부)(18)
반공포로 석방(10) 미군포로 관리당국은 우익포로들이 대한반공청년단을 조직, 적색포로들과 대결하며 석방투쟁을 벌이는 것을 처음에는 단순한 감투싸움으로만 보았을 뿐 생사를 건 사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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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휴전회담(후반부)(16)
이승만 대통령이 6·18 반공포로 석방 영단을 내리는데 있어서는 혈서탄원, 송환반대「데모」, 밀사파견 등 반공포로 자신들의 열렬한 투쟁이 크게 작용했다. 석방의 첫 동기는 이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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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유격전(20)|민간유격대
6.25전쟁 중 적지가 된 여러 지방에서는 애향심과 적개심에 불타는 지방유지들과 청년들이 공산군이나 그 기관을 기습하는 등 산발적인「게릴라」전을 벌였다. 이들은「유엔」군과 경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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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파월 6주년|한국 이미지 심어놓고 조용한 철군채비
【사이공=신상갑 특파원】국군이 파월 된지 6년. 9월25일은 주월 한국군사령부가 창설되지 6주년을 맞는 날이다. 65년에 들어서면서 악화일로에 놓인 인도반도의 불길을 잡기 위해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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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거제도폭동(3)|남과 북의 포로수용소(17)
미군도 「도드」준장의 피랍사건을 계기로 비로소 공산포로의 정체를 깨닫고 단호한 태도로 다루기 시작했다. 특히 신임 「유엔」군 사령관 「마크·클라크」대장은 수용소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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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적 치하의 3개월(26)|요인 납북(1)|「6·25」20주…3천 여의 증인회견·내외 자료로 엮은「다큐멘터리」한국전쟁 3년
북괴는 적치 3개월의「피날레」에서 남한 인사들을 대거 납북해 감으로써 그 잔학성을 가중시켰다. 그들은 남한을 적화하려고 남침했기 때문에 후퇴하는 마당에 한국 안에 반공 투사나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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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각의 경계 한일관계|김철수
금년은 경술국치 60주년이요 광복25주년에 해당한다. 8월 15일이 해방일이고 8월 29일이 국치일이기 때문에 여러 잡지는 다투어 한일관계에 관한 논문을 싣고 있다. 「신동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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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20년 세사
◇미군정청내에 국방사령부설치(45·11·13) ▲남조선국방경비대창설(46·1·15) ▲조선해안경비대창설(46·6·15) ◇국군창설=해방후 미군정하에서 발족한 남조선국방경비대와 해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