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56. 스모 해설
일본 스모대회에서 NHK 방송 해설을 하고 있는 필자.1995년에는 일본에 갈 일이 두 차례 있었다. 한 번은 후쿠오카에서 열린 제18회 유니버시아드였고, 또 하나는 일본 스모 경
-
[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50. 대한체육회장
1993년 2월 나는 대한체육회장 겸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 선거에 출마했다.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 IOC TV위원장, 세계경기연맹연합회(GAISF)
-
[팝콘정치] 정치인이 체육단체장 맡는 까닭은
한나라당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배구를 즐긴다. 대학 시절 종종 네트를 가운데 두고 김부겸(민주당) 의원과 맞선 기억이 있다. 재정경제부 시절에도 배구 코트에 서곤 했다. 그는 주로
-
3연타석 홈런 … 9이닝 20탈삼진 … 신화는 계속된다
대통령배의 전설을 쓴 주역들은 대개 투수였다. 원년대회에서 경북고를 우승으로 이끈 임신근(왼쪽)은 절묘한 커브로 한 시대를 수놓았다. 김시진(가운데)은 우승은 차지하지못했지만 생
-
42세 주부 '근육 몸짱' 도전
지난해 1월 별세한 소강(小崗) 민관식 전 대한체육회장의 손자며느리가 '여성 최고 몸짱'에 도전한다. 소강 선생의 손자 민준기씨의 아내인 오미경(42.사진)씨가 주인공이다. 오씨
-
[스포츠카페] 동부-KCC 3대3 맞트레이드 外
*** 동부-KCC 3대3 맞트레이드 프로농구 동부와 KCC가 3 대 3 맞트레이드를 했다. 동부의 정훈(28.1m96㎝).김영만(35.1m93㎝).배길태(32.1m82㎝)는 KC
-
2006년 이름 남기고 역사에 묻힌 사람들
세월이 흐르면 역사가 남는다. 올 한해도 우리 사회를 움직였던 수많은 인물들이 영욕의 세월을 마감하고 역사 속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들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족적 만은 너무나 선명
-
주니어 테니스 스타 산실 '장호배' 50돌
장호배 전국주니어테니스대회가 올해로 50회를 맞았다. 이 대회는 1999년 세상을 떠난 고(故) 홍종문 전 대한테니스협회장이 자신의 아호를 따 57년 창설한 대회다. 한국 테니스
-
'영원한 테니스인 소강'… 중·고 대항 대회
1월 16일 88세를 일기로 영면한 민관식 전 대한체육회장은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에도 지인들과 테니스를 쳤다. 서울 한남동 유엔빌리지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는 멋진 백핸드 스트로크
-
고 민관식씨 영결식
16일 타계한 민관식 전 대한체육회장의 영결식이 20일 오전 10시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거행됐다. 체육회장으로 치러진 이날 영결식은 김동건 전 KBS 아나운서가 고인의
-
박찬호 선수, 민관식씨 추모 "늘 용기를 주셨는데 …"
박찬호 선수가 이달 초 출국에 앞서 서울 시내 한 식당에서 고 민관식 전 대한체육회장과 만나 식사를 한 뒤 기념 촬영을 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 리그에서 뛰고 있는 박찬호(33
-
타계 민관식 전 체육회장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키로
정부는 17일 이해찬 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16일 타계한 민관식 전 대한체육회장을 국립묘지에 안장하기로 결정했다.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은 "국무회의에서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
-
민관식 전 국회부의장 별세
민관식(사진) 전 대한체육회장이 16일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88세. 민관식 전 체육회장은 1918년 개성에서 태어나 경기제일고보(현 경기고)와 수원농대(현
-
[삶과추억] 우리나라 스포츠 근대화의 아버지
그는 생전에 다시 20대 청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권투 선수가 되어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겠다고 했다. 만약 30대라면 탁구나 테니스 코치를 하고 있을 거라고
-
"20대로 돌아가면 권투 금메달 딸거야"
민관식(88) 대한체육회 명예회장은 26일 오전에 인터뷰를 하면서도 "빨리 빨리"를 연발했다. "왜 그렇게 서두르시느냐"고 하자 "운동하러 갈 시간인데 늦었다"며 연방 시계에 눈
-
[남기고] 으랏차차 '88세 청년' 49. 스포츠 사랑
필자가 문교부 장관 시절 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1971년 6월 3일 나는 대한체육회를 떠났다. 7년반 동안이나 지고 다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이다. 체육회에서의
-
[남기고] 으랏차차 '88세 청년' 48. 첫 세계 제패
레슬링으로 세계를 제패한 장창선 선수의 어머니 김복순씨(왼쪽). 그녀는 콩나물 장사를 해 3대 독자인 장 선수를 키웠다. 오른쪽은 필자. 각별한 애정을 담아 그의 이름을 불러 본다
-
[남기고] 으랏차차 '88세 청년' 47. 여자농구 쾌거
세계여자농구선수권 준우승의 주역인 박신자 선수(오른쪽)와 필자가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환영식 후 기념촬영을 했다. 1967년 5월 7일은 주말이었다. 서울 거리는 축제 전야 같은
-
[남기고] 으랏차차 '88세 청년' 46. 멕시코올림픽(상)
멕시코올림픽 권투 48급 결승에서 베네수엘라의 프란치스코 로드리게스와 격돌한 지용주左 선수가 선전하고 있다. 태양의 도시 멕시코시티가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된 것은 1964년 1월
-
[남기고] 으랏차차 '88세 청년' 45. 남자농구 선전
1970년 아시안게임을 대비해 태릉선수촌에서 훈련 중이던 한국선수단의 총감독을 맡았던 김성집씨(오른쪽)와 필자. 나는 1971년 7월 대한체육회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체육회장 재임
-
[남기고] 으랏차차 '88세 청년' 43. ‘아시아 물개’ 조오련
청와대에 초청돼 박정희 대통령(왼쪽)으로부터 훈장을 받는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선수. 제6회 아시안게임. 우리가 반납한 개최권을 태국이 인수해 1966년에 이어 다시 한번 방콕
-
[남기고] 으랏차차 '88세 청년' 42. 아시안게임 유치
김종필(오른쪽) 공화당 의장이 태릉선수촌을 방문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은 필자. 1967년 6월. '대외비'라는 도장이 찍힌 대통령의 특별지시서가 대한올림픽위원회(KOC)
-
[남기고] 으랏차차 '88세 청년' 42. 아시안게임 유치
아시안게임 서울 유치에 주도적 역할을 한 이상백 박사. 지난 회에 썼던 대로 대한민국은 1970년에 열리는 제6회 아시안게임을 유치했다. 65년 한국은행이 발표한 한국의 국민총생산
-
[남기고] 으랏차차 '88세 청년' 41. 손기정씨 삭발
삭발한 채 방콕에서 돌아와 귀국 보고를 하는 손기정 아시안게임 선수단장. 우리나라가 아시안게임에서 종합 2위에 오른 것은 제5회 대회(방콕)가 처음이다. 광복 후 참가한 국제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