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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고령 박씨
박씨는 김·이에 이은 우리 나라 3번째 태생. 남한에만 약4백만명, 전체인구의 10%를 웃도는 숫자다. 그러나 그중 고령 박씨는 불과 3만여명으로 「대성속의 희성」인 셈. 신라왕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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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3372)|제76화 화맥인맥 월전 장우성(91)|추사 김정희
추사(김정희)는 1786년6월3일 충남예산군 신엄면 룡궁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순조 때 이조판서를 지낸 김노경이고 어머니는 유씨다. 어머니 유씨가 추사를 잉태, 24개월만에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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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영양천씨
「가정을 잊고 나라일을 걱정함은 충이요, 적을 이겨 난리를 극복함은 장이며, 부모를 정성껏 모시는 것은 효이니라」(우구망가왈충, 승적극난왈장, 위친지성왈효). 4백년전 임진왜란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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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초계·밀양 변씨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양귀비 꽃 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아리땁던 그 아미 높게 흔들리우여/그 석류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 맞추었네.』 왜장을 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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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현씨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소월의 명시 「진달래꽃」으로 널리 알려진 평안북도 영변의 옛 이름은 연주. 연주 현씨는 바로 이곳 영변에서 8백여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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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양조씨 집성촌-경북 상주군 낙동면 승곡리
경북 상주군 낙동면 승곡리131-. 마을 40여 호 중 30여 가구가 조씨 일문인 호군공 사충의 후손들로 18대를 이어 살아가는 한성받이 마을이다. 이 마을이 풍양조씨 호군공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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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옛 모습 그대로 재현
29일하오 성균관대 건학 5백83주년 기념으로 열린 제3회 모의과거장에서는 옛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명륜당 참배를 끝낸 임금이 과장에 임하자 문무백관·응시자가 4배례를 올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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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군 축내리 삼정부락|만5천 가락 4색 왕골로 청·황용이 춤추는 용문석를 엮는다
완초피를 l만5천 개가 돗틀로 이어지면 청용·황용이 하늘로 오르고 쌍학이 너울너울 살아 춤춘다. 지열이 이글거리고 불볕이 쏟아 부어지는 한여름. 삼베고쟁이에 대청마루에 발을 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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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4)제71화 경기 80년(12)하정 여규형 선생
하정 여규형 선생(1849∼1922). 경성고등보통학교의한국인 교사 중 당대의 석학을 꼽으라면 단연 그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일본인 교사의 민족적 차별 속에서도 한학의 독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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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충사 성역화…호남의 새 명소로
임진왜란때의 의병장 고경명장군의 위업을 기릴 포충사가 5윌초 완공을 목표로 마지막 단장을 서두르고 있다. 전남 광산군 대촌면 제봉산기슭 1만3천명에 자리잡은 포충사는 78년9월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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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초 이육선생의 『청파집』 목판본 발견
이조초기의 문신으로 알려진 청파 이육선생이 지은 청파집의 목판본(사진)이 후손들에 의해 보존돼 온것으로 밝혀져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경남진양군금산면갈전리 청곡사부근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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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도 현대화…「한글판」유행
최근 들어 「뿌리찾기」의식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한글판 현대식 족보간행이 부쩍 활발하다. 대개의 족보가 일제때 만들어졌거나 해방직후 간행돼 시대의 변천에 따른 개편이 불가피해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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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량수 급제 교지」
【대구】울진군 울진면 읍내리 75의 5 울진 장씨 종중인 장진덕씨 소유 장량수 급제 교지가 23일 문공부에 의해 국보 제 1백81호로 지정됐다. 장량수 급제 교지는 고려 21대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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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주선생
야사를 보면 신숙주선생은 별로 호감을 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나이 어린 단종에 대한 숙부 수양대군의 처사는 왕실의 일대 비극이었다. 신숙주선생은 바로 그 정변에서 지모를 발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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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충공 신숙주 선생 5백주기 추념식 양주 묘정서
25일은 문충공 보한재 신숙주 선생의 5백 주기. 신 문충공 보한재 선생 유적보존위원회는 신숙주 선생의 5백 주기를 맞아 이날 상오 11시 양주군 별내면 고산리 묘정에서 추념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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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 최고 여대공문서 발견
현존하는 공문서 중 가장 오래된 고려 때의 교지가 경북 울진군 울진면 가원리 월계서원에 간수되었음이 밝혀졌다. 1205년 고려 희종 원년에 장양수에게 내린 이 급제 패지는 국보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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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제9화 고균 김옥균의 유랑 행적기(끝)
1884년 12월, 구주 「나가사끼」에 망명의 첫발을 디딘 후 거의 2년 간격으로 「도오꾜」주변, 소립원·북해도 등을 유랑해 온 김옥균은 북해도 유배에서 풀려 다시「도오꾜」로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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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의 명화 한국회화 근5백년 전에서(9)-석창 홍세섭 작 야압도
뛰어난 그림을 그렸으면서도 그 이름이 묻혀버렸거나 옳게 평가되지 못한 고가들이 적지 않다. 즉 이조시대의 사대부·문인 등 지식인 사회에는 뛰어난 재질을 발휘한 여기화가들이 적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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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시대의 과거급제자 명단『국조방목』출판-국회 도서관
이조시대의 과거급제자의 명단인 『국조방목』이 국회 도서관에 의해 영인 출판되었다. 규장각에 보존되어 있는 『국조방목내지문과방목』이란 3종의 책을 보완함으로써 『여말과거사적』과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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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우정 80년 (3)|강직순
우리 나라 우정 제도의 창시자 홍영식 선생은 남양 출신. 철종 6년 (1855) 영의정 홍순목의 2남으로 태어났다. 자는 중육, 호는 금석, 약관 16세 때 문과에 급제한 수재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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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미달 믿어주는 법원
7년동안 3대와 4대에걸쳐 사법부를 이끌어온 조진만대법원장(65)이 19일 정년퇴직했다. 각급법원급이상 간부와 재경법관, 3급이상의 일반직이 참석한 이날퇴임식에서조대법원장은 『당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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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 전각연구 새자료|홍석 귀 인보
최근 경기도 오산서 출토한 이조 중엽의 서예가 홍석귀씨의 도장 83개는 하나하나가 모두 미술품이다. 그 자신 써서 새긴 것일뿐 아니라 한 예술가가 생시에 애용하던 도장의 거의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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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역사의 고향(28) 1593년 2월 12일은 「행주대첩」의 날
강 바람이 꽤 쌀쌀한 산성, 무너진 목책을 다시 세운 의병들은 연거푼 싸움에 지칠대로 지쳤다. 적의 돌격은 또 한 번 해일처럼 몰려 왔다가 물러났다. 비오듯 쏟아지던 조총 탄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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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금석학의 태두 추사 김정희(하)
다시 평양성벽의 석각을 고증하여 「소형」이 고구려시대의 관명임을 밝히었는데, 이같은 그의 학문적 업적은 저서「금석과안록」으로 나타났고, 한편으로 많은 우리 나라의 금석척본을 청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