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13)양복점

    양복이 이 땅에 소개된건 한 세기 전의 일. 신문화의 물결이 밀어닥치던 1920년대에는 양복이 일반인에게 개화와 멋의 상징이었다. 그 양복이 이미 오래 전에 우리의 평상복이 되었고

    중앙일보

    1973.07.02 00:00

  • 2년 동안 전국 평균 논 값 84% 올라

    농협중앙회는 1일자로 전국의 토지 시가 조사표를 발표했다. 농협 조사표에 의하면 전국의 토지는 지난 70년에 비해 72년에는 ▲논 값이 84%로 가장 많이 올랐으며 ▲밭 값은 66

    중앙일보

    1973.05.02 00:00

  • 전국서 기념미사·연합예배

    「예수·구리스도」의 부활을 기리는 부활절 기념행사가 22일 신·구교 신자들에 의해 전국에서 베풀어졌다. 천주교 서울 명동본당에서는 이날 낮12시 1천5백여명의「가톨릭」신자들이 모인

    중앙일보

    1973.04.23 00:00

  • 일관성 없는 한자교육의 여파|한심한 대학생 국어실력|어문교육연 조사서 나타난 그 원인과 진답의 사례들

    20일 신문회관에서 열린 한국어문교육연구회(회장이희승박사) 에서 발표한「대학생의 국어실력 조사보고는 단편적이나마 대학생들의 국어실력 수준을 평가할 수 있는「바로미터」가 된다는 점에

    중앙일보

    1973.04.21 00:00

  • (615)제28화 북간도(35)

    흰 수건이 검은머리를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흰 저고리 치마 슬픈 몸집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윤동주의 『슬픈 권속』이란 시다. 북간도 동

    중앙일보

    1972.11.21 00:00

  • (606) | 북간도 (26)|이지택

    김약연은 「리코리스크」에서 명동 학교가 소각되었다는 연락을 받자 더 참을 수 없어 명동으로 돌아오는 여정에 올랐다. (9일자 25회에서 명동 학교가 소각될 때 피신했다는 것은 「

    중앙일보

    1972.11.10 00:00

  • (605) | 북간도 (25)|이지택

    용정 총사관의 소각에 뒤따라 10월 들어서 혼춘에 있는 일본 총영사관 혼춘 분관이 불탔다. 10월2일 새벽이었다. 이날 밤 혼춘에는 약 3백명의 마적 떼가 습격해서 분관 건물을

    중앙일보

    1972.11.09 00:00

  • (597)북간도|이지택(제자 이지택)

    독립선언서는 계속된다. 『일, 일본의 합방동기는 그들의 이른바 범 일본주의를 아주에 시행하는 것으로서 바로 동양의 적이니라. 이, 일본의 합방수단은 사기와 강박과 불법무도 무력포

    중앙일보

    1972.10.31 00:00

  • (595)북간도|이지택(제자 이지택)

    명동이 북간도의 중심이 된 것은 교육뿐 아니라 사회활동·독립운동이 모두 명동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김약연 등은 1909년에 명동학원을 세우는 것과 동시에 간민회라는 것을 세웠었

    중앙일보

    1972.10.28 00:00

  • (593) 북간도(13)|이지택

    파출소는 설치 후 첫 작업으로 헌병을 동원, 한국인의 호적부를 만들었다. 1907년 9월부터 시작해서 11월까지 사이에 혼춘 지방에선 호적부를 모두 마쳤다. 전 간도의 한국인의 조

    중앙일보

    1972.10.26 00:00

  • (591)북간도(11)|이지택

    1900년 초부터 두만강을 건너 북간도에 이주한 동포들은 처음 강 건너 가까운 곳에 정착했지만 차츰 오지로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무렵에 한국동포들이 많이 정착한 곳은 연

    중앙일보

    1972.10.24 00:00

  • (590)북간도(10)|이지택

    김약연이 학교를 세운 것은 민족의 동량을 기르려는 원대한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을 통한 민족운동이 실제생활로 다져져야 한다고 믿었고 이를 실천한 것이었다. 따라서 명동학교

    중앙일보

    1972.10.23 00:00

  • (586)-제자는 이지택|북간도(6)

    이 서전의숙을 나온 사람들이 곧 북간도의 개척과 독립운동의 근간이 되었나. 이들은 내가 용정촌에 갔을 때 이미 40대의 장년들이어서 우러러 봤을 뿐이며 훗날 개척 당시의 얘기를

    중앙일보

    1972.10.19 00:00

  • (582)|북간도(2)|이지택

    북간도는 그리 넓지도 않은 땅이지만 앞서 말했듯 사연이 얽혀있고 지명도 소상치 않다. 초기에는 여기를 대체로 간도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청나라서는 연변이라고도 불렀다. 간도라고 부

    중앙일보

    1972.10.13 00:00

  • (581)|북간도(1)|이지택

    이지택씨는 1898년 평남 강서군 태생, 올해 74세. 1910년에 용 정에 이주, 명동과 영신에서 공부했으며 3·l운동과 6·10만세사건에 앞장섰다. 왜경에 쫓겨 연해주에 망명,

    중앙일보

    1972.10.12 00:00

  • 북적 대표들 서울의 4박5일|본사 기자들이 보고들은 그 전부 방담

    L=27년만에 서울 땅을 밟은 북의 54명의 4박5일을 쫓느라 진이 빠진 모습들이군. 4박5일 집에 못 들어간 사람도 있다지? (웃음) 남북이 취재보도 태도에는 큰 차이가 있었지만

    중앙일보

    1972.09.18 00:00

  • 아물지 않은 「상처」|되살아나는 「일색」|광복 27주…한국 속의 일본

    4반세기가 넘는 27년을 한국인과 결혼한 일본여성들은 이 땅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더러 남모르는 설움을 되새기며 살아가는 여성이 있는가하면 이웃간에 서먹서먹하다는 사람도 있다. 부

    중앙일보

    1972.08.15 00:00

  • 박성철 일행 밀항 뒷이야기

    북에서 온 손님은 서울에서의 4일을 조용하면서도 부산하게 보냈다. 27년만에 서울땅을 밟은「북의 손님」은 지난5월29일 판문점에서 통일로를 거쳐 서울에 들어왔다. 말끔히 손질된 통

    중앙일보

    1972.07.05 00:00

  • (477)경무대 사계(104)

    이 박사가 발바리 개「해피」를 지극히 사랑했다는 사실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그「해피」를 이 박사는 망명길에 데리고 가지 않았다. 이런 사실에서도 이 박사가 「하와이」에 오래

    중앙일보

    1972.06.05 00:00

  • 퇴폐다방

    서울의 한복판 명동거리에서 환각제인 「해피·스모크」를 피우거나 암거래하는 행위를 조장하고있는 다방이 늘어나 가고 있어 지난11일에는 그 본보기로 심지다방이 적발되어 마약법위반·탈세

    중앙일보

    1972.02.14 00:00

  • (373)|카페 시절 (15)|이서구

    「카페」하면 한번쯤은 난봉꾼과 바람난 여자를 연상하게 된다. 밤마다 분단장 곱게 하고 손님을 기다리는 여급과 가정을 등지고 아내를 비켜놓고 색다른 재미를 보려고 찾아드는 손님이나

    중앙일보

    1972.02.03 00:00

  • 이 땅에 평화와 사랑을-메리·크리스머스

    24일은 「크리스머스·이브」. 온 누리가 성탄의 축복아래 평화로움으로 깃 드는 날. 한 때 광란과 광분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크리스머스·이브」가 올해는 비상 사태하의 자숙과

    중앙일보

    1971.12.24 00:00

  • 퇴조의 부동산 경기(하)

    저조한 건축동향은 수요감퇴를 반영한 것이다. 부동산에 대한 수요는 올해 들어 크게 감퇴되어 매매가 극히 저조할 뿐 아니라 이사철인데도 셋집에 대한 수요까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중앙일보

    1971.11.03 00:00

  • 명동·충무로 우범지대로 변해

    서울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중구명동·충무로 일대에 날치기·소매치기·들치기 배들이 들끓고있으나 경찰의 손이 미치지 못해 새로운 우범지대로 변해있다. 경찰은 명동지하도입구 「코스모

    중앙일보

    1971.11.02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