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874)골동품 비화40년(15)|박병래(제자 박병래)

    일제 때 고려청자병 한쌍이 경매장에 나온 일이 있었다. 경매장에서 중개인이 한 손에 병 하나씩을 쥐고 값을 부르다가 잘못해서 오른손에 든 것을 깨뜨렸다. 나중에 그것을 판상하려

    중앙일보

    1973.10.16 00:00

  • (872)골동품비화40년(13)

    지금까지 30여년을 넘겨 살아온 내 집을 짓게 된 기연도 실은 골동과 관계가 있다. 1930년대 초에 지금 사는 삼선교가 개발될 때 터를 사놨다가 10년 후에 짓게 되었다. 태평

    중앙일보

    1973.10.13 00:00

  • (869)|골동품비화 40년(10)-제주도서 온 청자

    도굴하면 청일 전쟁이후 한일합방 당시까지 일인들이 개성 언저리의 청자를 마구 쑤셔간 때를 전성기로 봄직하다. 그러나 그때는 우리나라 사람이 골동에 눈을 뜨기도 전이어서 부지부식간에

    중앙일보

    1973.10.10 00:00

  • (868)|골동품 비화40년(9)-왕서방과 이서방

    일본인 호리꾼이 한창 발호할 때 개성의 풍덕 일대는 마치 벌집 구명이 나듯 숭숭 뚫려버린 것은 지금까지 얘기한 것으로 미루어 그리 놀랄 일은 못된다. 그렇게 해서 고려자기가 숱하게

    중앙일보

    1973.10.09 00:00

  • (865)| 골동품 비화 40년 (6)|박병래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계속 오름세를 보여 줄곧 값이 뛰기만 하던 골동품은 20여년 후인 1940년대 초에 이르러서는 비싼 것이 1만원 선을 육박하는 일이 그리 드물지 않았다.

    중앙일보

    1973.10.05 00:00

  • (864)|골동품비화 40년(5)|박병래

    이등박문과는 또 달리 하류 급 무뢰한의 횡포는 참으로 가관이어서 중일전쟁을 기화로 일확천금을 거두려는 무식한 협잡배가 도처에서 행 락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물론 그 가운데 광산에

    중앙일보

    1973.10.04 00:00

  • (863)|골동품비화 40년(4)-박병래

    한 30여 년 전만 해도 웬만한 시골집 뒤 주위에는 으레 파란 물감으로 목단을 그리고 완자무늬를 두른 백자항아리가 보통 하나 씩은 있었다. 어떤 연유로 뒤주 위에 덩그러니 앉게

    중앙일보

    1973.10.03 00:00

  • (862)|골동품비화 40년(3)|박병래

    전해들은 얘기와 옛날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우리나라에서 골동에 대한 인식이 처음 생기게 된 것은 아마도 일인들이 이 땅에 발을 디딘 이후부터인가 한다. 도자기 기술이 일본이 전래

    중앙일보

    1973.10.02 00:00

  • (861)|골동품비화 40년(2)|박병래

    1930년대 초에 수표교근처의 창낭 장택상 씨 댁 사랑방에는 언제나 연연한 인사들이 모여들어 골동얘기로 세월을 보냈다. 집주인인 장택상 씨는 물론이고 윤치영 씨 또 치과의사인 함

    중앙일보

    1973.10.01 00:00

  • (860)골동품비화 40년(1)|박병래(제자 박병래)

    해부제 지내던 날 의업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50년 동안 골동수집에 취미를 붙이지 못했더라면 내 인생은 한결 삭막했으리라고 믿는다. 한창「골동 광」소리를 들을 정도로 열이 올랐을

    중앙일보

    1973.09.29 00:00

  • (363) 소생하는 도자기문화

    한국의 전통적인 민속도예는 다시 소생되고 있다. 청자·분청사기·백자에 이르는 도자기공예는 근년 매우 활기를 되찾아 대소 공장이 전국에 10여개소. 서울 인근 광주·이천에 대부분이

    중앙일보

    1973.07.02 00:00

  • 청자 유감

    고려시대는 우리 나라 도자기사상의 황금기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제도의 기술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대였다. 그러나 초기에는 신라토기를 계승한 고려토기·연화연유토기류 뿐이었다. 그후

    중앙일보

    1973.06.07 00:00

  • 한국인의 멋

    지난 4월26일부터 『조선의 회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장소는 일본의 나량. 전시품은 모두 일본에 있는 것들이다. 한달씩이나 전시회가 열린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만큼 한국문

    중앙일보

    1973.05.22 00:00

  • (14)청자 철채토화문 나한좌상

    사람이 사람의 모습을 만들기는 아주 오랜 예부터이겠지만, 우리 나라 미술사에서 인체 조각이 틀 잡힌 것은 불교미술의 도입 이후이다. 그 초기(삼국 시대)에는 중국의 양식을 그대로

    중앙일보

    1973.05.08 00:00

  • (4)-청화백자 매조문호

    한국미술 2천년전의 조각·공예·도자기·회화의 여러 분야 중 특히 현저한 수확은 백자실이다. 청자실에서 고작 몇 점의 진품만을 새로 볼 수 있는데 비하면 백자실에서는 이홍근·박병래·

    중앙일보

    1973.04.23 00:00

  • 한국의 식생활 변천사

    예로부터 전해오는 한국 고유 음식들은 그 조리와 영양에 있어 과학적이고 재료의 특미를 잘 살리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있다. 그러나 점점 우리 고유의 음식들이 외형과 맛을 잃어가

    중앙일보

    1972.05.31 00:00

  • 허술한 문화재관리

    문화재관리국은 8일 일본「고오베」(압호)로 불법 반출했던 문화재의 일부를 회수해 감정하고 1백22점 가운데 가 품이 하나도 섞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관리국은 이로 미루어 보아 아직

    중앙일보

    1971.12.10 00:00

  • 햇빛보는 개인소장문화재|새로지정된 국보9·보물4점

    문공부는 개인소장 동산문학재의 등록제를실시함에 따라 등록된 옛 미술품가운데 첫「케이스」로 국보9점, 보물46점을 새로 지정했다. 그중 3점의 김동현씨 소장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호암

    중앙일보

    1971.10.01 00:00

  • 문화재 수집 뜻 높인 선례-호암 수장전

    지금 국립 박물관에서는 호암 이병철씨 소장품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근래에 보기 드문 호화로운 것이다. 이병철씨의 방대한 수집품 중에서 골라낸 2백여 점이니 양도 그

    중앙일보

    1971.06.01 00:00

  • 화제의 여성

    『고려청자와 이조백자에 배어있는 아름다움을 어떻게 다시 드러내야할까.』지난 8월일본에서열린 미술교육「세미나」와 도예개인전을 갖고 23일 귀국한 황종례 교수(이대응용미술과)는 새삼

    중앙일보

    1968.09.05 00:00

  • 밝혀진 소가야 문화|사천군 용견리 송지리 고분군 발굴|단국대발굴대서 개가

    경남 사천만 깊숙이 들어간 한 어촌에서 가야시대 초기에 형성된것으로 보이는 독특한 문화의 지층이 벗겨졌다. 단국대발굴대는 사천군 용견면 송지리에서 무더기 고분군을 발견, 1천7백∼

    중앙일보

    1968.08.08 00:00

  • 재일 교포 영주권 신청 간소화|논란2년만의 「당연」 양해

    한·일 두 나라는 23일 하오 「재일 한국인의 법적 지위와 대우에 관한 협정」을 두고 그 동안 논란을 거듭해온 시행상의 이견을 조정, ①영주권 허가기준을 완화하고 ②재일 교포의 이

    중앙일보

    1967.08.29 00:00

  • 과학전서 대통령상 탔던「고려상감청자」화학안과 바른 가짜

    【광주】지난 64년10월 전국 과학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전남 함평국민학교 출품작인 고려상감청자의 재현(주제 고려청자의 연구)품이 특수한 흙에 알맞은 열을 가해서 얻은 유약으로 비

    중앙일보

    1966.12.14 00:00

  • 「문화의 달」에 생각한다

    10월은 행사의 달. 그 중에서도 갖가지 푸짐한 문화의 향연이 베풀어지는 것이 한국의 10월을 장식하는 상례로 되어 있다. 한없이 높고 푸른 하늘아래, 국화의 향기가 그윽하게 풍기

    중앙일보

    1965.10.18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