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대화에 찬물 끼얹는 광태

    남북대화의 소중한 민족의 성화에 연거푸 재가 뿌려졌다. 17일 밤 전방 비무장지대에서 저지른 북한의 무력도발은 민족의 염원 속에 타오르는 대화의 불길을 마구 짓밟는 것이었다. 북한

    중앙일보

    1973.04.20 00:00

  • 무장공비 3명

    북한은 7·4공동성명을 공공연히 위반하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남북대화를 고의적으로 저해하고있다. 북한은 벌써 오래 전부터 휴전선상에서의 도발을 비롯해서 대남 중상·비방을 재개해왔었

    중앙일보

    1973.04.19 00:00

  • 한국비난 특보 북한신문

    【평양=대한민국 공동취재단】23일자 평양의 조간신문들은 대한민국을 비난하는 각종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노동신문은 5면에 남한이 미군과 합작하여 6·25전쟁을 도발했다는 논설을

    중앙일보

    1973.03.23 00:00

  • (700)제31화 내가 아는 박헌영(18)신흥청년동맹

    상해에서 4년 만에 다시 국내에 들어선 박헌영은 임원근 김태연과 함께 그 무렵 갓 결성된 신흥청년동맹에 가입했다. 그의 신흥청년동맹에의 가입은 국내에 들어 선지 처음으로 갖는 활동

    중앙일보

    1973.03.05 00:00

  • 「노동신문사」방문 기자들

    기자들은 노동신문사 방문에서 부주필 정하철의 안내로 1시간동안 사내를 돌아보고 응접실에서 정등 간부 6명과 편집·제작방침 및 기구설명을 듣고 의견을 나눴다. 노동신문사는 새로 지

    중앙일보

    1972.11.04 00:00

  • 평양거리 차중 관광

    【평양=대한민국 신문통신방송 공동취재단】이후락 남-북 조절위 공동위원장 일행은 평양에서의 첫 밤을 지내고 3일 상오 이 위원장과 보좌 단 등 5명은 김일성 방문, 기자와 수행원은

    중앙일보

    1972.11.03 00:00

  • 북한, 박 대통령을 비난

    【홍콩 5일 로이터합동】북한 공산주의자들은 3일 3개월 전 남북한 상호간에 비방과 중상을 중지하고 한반도 통일을 위한 대화를 시작하기로 합의한 이래 처음으로 한국의 고위층에 대한

    중앙일보

    1972.10.06 00:00

  • 한국신문보도 일부 내용 비난|북한지 왜곡이 수장

    1일 노동신문은 남북적본회담 한국측 대표단 자문위원 및 수행원·기자단의 1일 만경대방문기사와 사진을 싣고 이날 낮 조국통일 민주전선 중앙위원회가 한국측대표들을 위해 오찬회를 차렀다

    중앙일보

    1972.09.01 00:00

  • 소년에 질문히자 남에서 오셨죠?

    교습실에 나와 이날 실습을 해 보인 학생들은 남녀각각 절반정도였으며 공업기술계 등은 남학생이, 무용·음악 등에는 여학생이 많았다. 무선 통신은 여학생들도 많이 배우고 있었다. 이날

    중앙일보

    1972.09.01 00:00

  • 북한정당, 단체대표 연설 요지

    30일 평양 대동강회관에서 열린 남북적 제1차 본 회담에서 북한 정당·사회단체 대표 8명의 축하발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윤기복(노동당 중앙위원·과학교육부장)=본 회담이 영광스러

    중앙일보

    1972.08.31 00:00

  • 휴전협정 19주년|조인에서 민통선북방 영농까지

    휴전 19년-. 53년7월27일 정전협정이 조인 된지 19년만에 맞는 휴전기념일은 남북화해 「무드」속에 묻혔다. 남북적십자회담이 시작된 후 처음 맞이하는 휴전19들은 동서해빙에 발

    중앙일보

    1972.07.27 00:00

  • 휴전선 대 남북 방송-쌍방 비난내용 완화-7·4성명 이후

    7·4 남북공동성명으로 휴전선의 대 남북 방송이 쌍방을 비난하던 종래의 태도를 완화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6일 군 소식통에 따르면 서부전선의 경우 북한의 대남 방송에서 「괴뢰」「도

    중앙일보

    1972.07.06 00:00

  • 대화 없는 대결서 대화 있는 대결로

    -북한과의 직접교섭 추구로 통일을 모색하는 것 같은데 지금까지의 인구 비례에 의한 통일 방안에 변동을 가져온 것인가? 『합의 본 통일 원칙은 실질적으로 우리의 통일방침과 다른 것이

    중앙일보

    1972.07.04 00:00

  • (392)|경무대 사계|윤석오

    (가) 정-부통령선거가 다가오자 한민 당을 떠난 뒤 낙원 동 자택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던 성재 이시형 선생이 나섰다. 그는 나라의 장래를 생각할 때 우남과 백범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중앙일보

    1972.02.25 00:00

  • (388)|경무대 사계|윤석오(제자는 필자)

    좌익세력의 집요한 「테러」로 숱한 파란을 겪었지만 선거는 치러졌다 개표결과는 무소속85석, 이박사의 국민회 55석, 한민당 29석, 대회청년단 12석, 민족청년단6석, 이밖에 군소

    중앙일보

    1972.02.21 00:00

  • (387)(제26화>경무대 사계|윤석오(제자는 필자)

    유석은 그의 주동으로 군정정무회의가 만든 「남조선조치요강」때문에 군정 연장을 획책한다해서 크게 몰린 일이 있다. 이 조치요강은 당시 안재홍 민정장관의 비서였던 이교선씨가 이화장으

    중앙일보

    1972.02.19 00:00

  • (382)-제자는 필자|경무대 사계(9)

    『귀관은 어째서 이 박사의 도미를 방해하고있나.』 『네, 죄송합니다. 그러나 각하, 이 박사는 미군정에 비협조적입니다. 군정시책의 거의 전부를 철저하게 반대하고 방해하고 있기 때

    중앙일보

    1972.02.14 00:00

  • 소, 한국 호칭을 바꿔

    소련 정부 기관지「이즈베스티야」는 14일자 신문에서 한국의 남북 적십자 회담과 대(대) 동구권 교역에 관한 논평을 게재했다. 이즈베스티야의 논평은『남북회담에서 늑장을 부린다』느니『

    중앙일보

    1971.11.26 00:00

  • (305)|미·소 공동 위원회 (17)|문제안

    2차 공위의 큰 과제인 정당·사회 단체와의 협의는 서울과 평양에서 있었지만 양쪽이 모두 성과가 없었다. 미군 점령하의 남한에서는 4백25개의 정당·사회 단체가 공위의 협의에 참가

    중앙일보

    1971.11.12 00:00

  • (302)|미·소 공동 위원회 (14)|문제안

    공산당의 성명은 ①민족 통일 본부 같은 것은 통일 공작을 노골적으로 방해하는 것이다 ②입법 기관에 참여하기 위한 합작자도 합작을 파괴하는 자다 ③합작의 목표는 통일 민주 정권 건

    중앙일보

    1971.11.09 00:00

  • (297)|제21화 미·소 공동위원회|문제안

    반탁과 찬탁의 대립은 공위가 진행되는 만큼 격화되고있었고 반탁학생연맹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앞서 1월18일에 이석승의 반탁학생연맹 학생들이 좌익신문인 조선인민보를 때려부순 날, 그

    중앙일보

    1971.11.03 00:00

  • (296)(8)문제안

    제1차 공위에서 소련군 수석대표 「스티코프」의 연설 가운데는 그대로 넘길 수 없는 대목이 있다. 전회에서 언급한대로 「스티코프」는 『조선인민을 해방했다』고 은인을 자처하고는 이어

    중앙일보

    1971.11.02 00:00

  • (201)38선 돌파와 북진(17)

    (하) 북한 수복지역에서 실시한 「유엔」군정과 북진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을 통틀어 살펴볼 때 여러 가지 시행착오가 있었고 이에 따르는 공과가 엇갈리고 있다. 이점은 모든 관계자들이

    중앙일보

    1971.07.14 00:00

  • (203)제14화 무역…8·15전후

    (상) 해방 후에 있었던 여러 가지 유형의 무역얘기는 이 정도로 해두고 세월을 다시 해방직후로 되돌려 한국무역협회가 설립된 경위와 초창기 사정을 정리해봐야겠다. 앞에 어느회에선가

    중앙일보

    1971.07.12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