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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62. 무정한 아버지
필자의 딸 정아와 외손자 킴.길옥윤 선생은 평생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었다. 물론 그의 운명적인 슬픔과 외로움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길 선생은 네댓 살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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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61. 딸 정아 탄생
어린 정아를 돌보고 있는 필자.1968년 11월 13일생인 정아의 돌을 맞아 발표한 노래가 ‘1990년, 정아는 스물하나’다. 정아의 출생과 관련해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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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60. 내 사랑 엄앵란
신혼 때의 필자.오리지널 곡만 해도 수백 작품이나 되니 노래에 얽힌 재미있는 사연이 꽤 많다. 그 중 하나가 ‘내 사랑아’다. 내 사랑아 저 먼 곳에 있는 내 사랑 그 언젠가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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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티 김 ‘꿈의 여정 50년’ 전국 순회공연 스타트
패티 김이 8m 높이의 초승달 위에 앉아 뮤지컬 ‘캐츠의’의 ‘메모리’를 부르며 무대로 내려오고 있다. [PK프로덕션 제공]“노래 없이는 못 살아.” 후배 가수 이승철과 함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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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58. ‘빛과 그림자’
신혼 시절의 필자.사랑은 나의 영원한 주제다. 3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연 데뷔 5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관객들과 함께 ‘사랑이란 두 글자’를 불렀다. 이 노래가 사랑이 찾아올 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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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57. 사랑이란 두 글자
길옥윤씨의 반주에 맞춰 연습실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필자.일상적인 감정 표현에는 인색하다 싶을 정도로 젬병이었던 길옥윤 선생도 음악에 있어서 만큼은 100% 솔직하고 순수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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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56. 길 선생의 사랑법
필자는 신혼 초 길옥윤씨의 일본 활동 때문에 한국과 일본을 자주 오갔다. 비행기 트랩에서 내려오는 우리 부부.사흘이 넘도록 연락 두절인 남편을 도박판에서 찾아냈다. 그런 남편을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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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55. 불화의 싹
신혼 초 무대의상을 입고 포즈를 취한 필자.베트남 위문공연을 마치고 서울 세검정 신혼 집으로 돌아오자 길옥윤 선생의 생활 태도는 다시 일본 시절과 똑같아졌다. 매일 밤 술에 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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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53. 에메랄드 반지
채명신 장군과 함께 태국을 방문한 필자. 오른쪽 뒤 선글라스를 쓴 사람이 채 장군.1967년 베트남 위문공연이 끝나갈 무렵 채명신 장군은 태국 국왕의 초대를 받아 우리나라 대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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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52. 죽을 고비
필자가 베트남전쟁 최전방 정글에 주둔한 국군 장병들을 찾아가 위문공연을 하고 있다.채명신 장군은 군복 견장에 달린 세 개의 별보다 몇 배 더 강한 힘을 가진 분이었다. 오죽하면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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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51. 신혼여행
베트남에서 국군 장병 위문공연을 하고 있는 필자. 장병들 가까이에서 노래 부르고 싶어 무대에서 내려왔다.결혼은 했지만 바로 신혼여행을 떠나지 못했다. 일단 길옥윤 선생의 일본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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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50. 길 선생의 술버릇
길옥윤씨와 결혼식을 한 뒤 일본에 갔을 때의 필자.1966년 늦가을 나는 길옥윤 선생과 결혼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석 달도 채 지나지 않은 그해 12월 우리는 결혼식을 올리고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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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49. 완벽한 파트너
TV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한 필자와 길옥윤씨.결혼을 결심했을 때 나는 스물아홉 살, 길옥윤 선생은 마흔 살이었다. 지금이야 서른을 훌쩍 넘기고도 결혼보다 커리어를 쌓거나 자기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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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48. 내가 먼저 한 청혼
파월 장병 위문 공연장에서 한 병사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는 필자.그러는 사이 ‘4월이 가면’이 수록된 앨범 제작이 진행됐고, 2개월 예정이었던 서울 체류 기간도 자연스럽게 길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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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47. 흔들리는 여심
코미디언 곽규석씨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한 필자와 길옥윤씨.그렇게 해서 탄생한 노래가 ‘4월이 가면’이다. 얌전하고 숫기 없는 길옥윤 선생이 프러포즈를 대신해 만든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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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특검 99일 … 추적한 계좌만 1만4000여 개
삼성특검이 17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막을 내렸다. 출범한 지 99일 만이다. 수사 기간으로 보면 ‘이용호 게이트’ 특검(105일)에 이어 역대 특검 중 둘째로 길었다. 삼성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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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46. 전화 프러포즈
젊은 시절 길옥윤씨.가끔 걸려오던 길옥윤 선생의 전화가 점점 잦아졌다. 얼마 뒤부터는 거의 매일 밤 길 선생이 내 숙소로 전화를 했다. 나 역시 길 선생과 통화하는 것이 빼놓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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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티 김, 흥겨운 트로트 선보인다
데뷔 50주년을 맞은 ‘디바’ 패티 김(70·사진)이 처음으로 트로트곡을 부른다. 그는 1959년 미8군 무대 데뷔 이래 스탠다드 팝과 발라드만 고집해 왔으며, 한 번도 트로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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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45.한밤의 전화
길옥윤씨와 함께 무대에 오른 필자.화려하고 빛나는 무대일수록 내려온 다음 밀려오는 외로움과 쓸쓸함도 커지는 법이다. 화려한 조명과 음향설비부터 모든 소품 하나하나까지, 그 무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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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44. 길옥윤과 재회
길옥윤씨와 다정히 얘기하고 있는 필자.경동맥 파열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어머니가 큰 수술을 받고 다행히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 선생님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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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27. 영원한 후견인
도쿄 시내를 거닐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필자.50년 동안 무대를 지키면서 나는 참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나에게 새로운 운명을 펼쳐주었다. 나 역시 그 운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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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24. 길옥윤의 격려
일본 아침방송에 주일 한국대사 부부와 함께 출연한 필자(에서 둘째)와 길옥윤씨(에서 첫째)내 안에 공존하는 두 명의 존재, 가수 패티 김에게나 평범한 여자 김혜자에게나 빼놓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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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23. 기모노? No!
1960년대 중반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영화제에 때깔 고운 한복을 입고 참석한 필자(오른쪽에서 둘째).일본에서 인정받기 위해, 업신여김 당하지 않기 위해 나는 의도적으로 거만해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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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반세기’ 패티 김 “50년 전 내 몸매·얼굴, 이효리 저리가라였어”
패티 김은 자신의 목소리를 불꽃이 이글이글거리는 빨간색으로, 향기로 치면 라일락·재스민향에 비견했다. 은은하면서도 강렬하다면서…. [사진=박종근 기자]2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