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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민족 정착지 일본 아스카 역사탐방
오사카(大阪)에서 동쪽으로 해발 5백 조금 넘는 후타카미야마(二上山)를 넘으면 야마토(大和)-지금의 나라(奈良)지방이다. 아스카(飛鳥)는 나라시에서 20㎞정도 떨어진 작고 평화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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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 높이곰 돋아사
『삼국사기』 신라본기(新羅本紀)에는 성덕왕(聖德王) 20년(721년)하슬라도(何瑟羅道)의 장정 2천명을 동원,북쪽 국경에장성(長城)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흔히 「아슬라」라 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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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흑산산성.건안성.쇠보습
大連大門大開(다롄의 큰 문은 활짝 열렸다). 遼東반도의 남단 국제항 大連市 변두리의 어느 화물운송회사 가건물에 씌어진 이 표어는 경제부흥에 박차를 가하고있는 중국의 오늘을 상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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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白巖城
백암성(白巖城)은 태자하를 따라가는 고대 길을 제압하는 요충지에 위치해 있다.양원왕3년(547년)에 개축했다는 사실이 『삼국사기』에 나오는 걸로 봐서 초축 시기는 장수왕대 이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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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 발원지, 부석돌짬 소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강인 압록강의 발원은 정확히 백두산 병사봉에서 남서쪽으로 수백m 아래에 있는「부석돌짭」이라고 평양에서 발간되는 화보『조선』최근호가 밝혔다. 이 화보는「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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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 부진 씻은 『삼국기』
어렸을 때부터 귀에 못이박이도록 들은 얘기 중의 하나가 삼국통일이다. 그러나 규모가 큰 탓에 소설·영화·TV드라마 어느 것 하나 정면으로 맞닥뜨릴 소재로 삼을 엄두를 못냈다. 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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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영원한 백제의 넋 낙화암
꽃보다 더 붉고 꽃보다 더아름다운 빛깔로 이 나라의 산천을 물들이고 간 딸들이 있었다. 저 7백년 왕조의 백제가 무너지던 날, 백제의 어여쁜 딸들은 높디높은 바위벼랑에서 꽃다운 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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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응어리풀고 눈물의 성묘”/평양갔다온 춘원 3남 이영근박사
◎김일성대학 교수가 “묘소확인” 주선 최근 평양을 방문,40여년만에 아버지의 병사를 확인하고 묘소를 찾아 성묘한 후 1일 오후 귀국한 춘원 이광수의 3남(두 아들은 일찍 사망)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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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뛰어난 씨름선수 처녀들의 우상
몽골에는 우리나라의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와 같은 「나담(나달모) 축제」가 해마다 열린다. 「나담(나달모)」이란 말은 오락 또는 놀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 축제는 오보(서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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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동대사대불은 백제 사람들 작품|동국대 조사단 근기 지방 학술 기행-김사엽
기원 4, 5세기께 한반도로부터 농경 및 생산의 기술과 말을 가지고 일본 근기 남부에 이주해 온 이른바 제2차 도래집단이 오사카 서남해안지대에 정착, 이 일대를 개척해 부를 축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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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높이 20m…"난공불락"의 고구려 환도산성
고구려가 1세기부터 5백년간 수도로 삼았던 집안(오늘의 집안)은 첩첩산중에 있었다. 만주벌판에서 이곳으로 가려면 길은 단 2개. 통화를 떠난 열차는 장백산맥의 준령사이의 오르막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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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사의 쟁점-앙국학계, 무엇을 어떻게 보나『일사기』와『일본서기』
우리는 앞에서『고사기』에는「일본부」 란 용어나 기사가 없는데 『일본서기』가 황국주의사장에 의하여「일본부」란 용어를 조작하였다는 점을 얘기하였다. 그러나 지면의 제한상 『일본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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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가 분석한 교과서 왜곡문제
◇한군현의 위치 ▲조선우도에도 농경과 금속기의 문화가 발달하고 한은 그곳에 낙랑군등의 사군을 두고 지배하었다.(동경서적 일본사 P15) ▲또 조선우도에서는 2세기 후반에 한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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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현씨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소월의 명시 「진달래꽃」으로 널리 알려진 평안북도 영변의 옛 이름은 연주. 연주 현씨는 바로 이곳 영변에서 8백여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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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개관
겨울 관모봉 북설령에서 성스러운 백두산의 아득한 모습을 우러러 본후 내가 백두산을 처음으로 찾아간것은 42년 겨울이었다. 남들과는 달리 가장 어려운 엄동기를 먼저 택했고 일부러 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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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제10화 고구려의 유풍 남긴 팔호 타구|제3장 동북지방의 한적 문화탐방
암강 교수가 수집해 놓은 풍부한 사진과 문헌자료들을 통해 알아본 타구의 역사는 체육사 전공자가 아니라도 흥미진진한 것이 있다. 그에 의하면 타구의 역사는 동서양 문화교류의 표본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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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관원 놀이| 양재연 교수 조사
북한의 중요 무형문화재인 함남 북청군의 「토성 관원 놀이」가 양재연 교수 (중대)에 의해 조사, 재구되었다.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을 건의한 『토성 관원 놀이』는 정월보름을 전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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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고대일본에 새긴 고구려의 예지|나량의 벽화고분
3월26일 발견된 나량의 벽화고분에 대해서는 국내신문들의 기사를 토대로 그 역사적 의의를 약초 한바 있으나 그후 일본신문들의 보도들을 볼 수 있어 좀 더 자세한 것을 알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