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德 선생은 미국서 양복, 중국서 마고자 입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중국에서 시진핑(習近平·59) 체제가 출범한 지 닷새 만에 고위급 당 대표단이 한국을 방문했다. 핵심 인물은 천바오성(陳寶生·56·사진) 중앙당교(黨校) 부교장(부총장·차관급)이다. 한바오장(韓保江) 당교 국제전략연구소장, 자오빙빙(趙氷氷) 중공대외연락부 연구실 부주임, 캉솨이(康帥)중공 대외연락부 2국 종합처장 등이 동행했다. 중앙당교는 공산당 엘리트 간부를 육성하는 최고 교육기관이다. 마오쩌둥(毛澤東)·류샤오치(劉少奇)·화궈펑(華國鋒)·후진타오(胡錦濤) 등이 교장을 역임한 당 핵심조직이다.

시진핑 총서기도 국가부주석 취임 뒤 2007년 말부터 교장 직을 맡아 왔다. 천 부교장은 고향 간쑤(甘肅)성에서 34년간 행정 경험을 쌓은 뒤 2008년 6월 당교 부교장으로 발탁돼 시진핑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 왔다. 이번 제18차 전국대표대회에서 당중앙위원(205명)으로 뽑혔다. 천 부교장은 22일 중앙SUNDAY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중앙군사위 주석직까지 내놓은 뒷얘기 등을 공개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이번 방한의 목적은.
“100년 만의 최대 경제위기가 발생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와중에 미국·러시아·일본·한국에서 권력 교체가 이뤄졌거나 예정돼 있다. 최근 끝난 중국의 제18차 당대회 소식을 이웃 나라에 먼저 전하고 싶었다. 여야 정치인과 안호영 외교통상부 제1차관 등을 두루 만났다.”

-17일 당 중앙 정치국원 집체학습의 주제인 ‘제18차 당 대회 정신’이란 무엇인가.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위대한 기치를 높이 들고, 흔들림 없이 그 길을 따라 전진해, 전면적인 샤오캉(小康·의식주 충족 단계) 사회를 실현하는 것이다. 우리 당은 학습형·혁신형·서비스형 집권당을 만들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정치국이 솔선해 학습하는 것은 당연하다.”

-시진핑 시대의 가장 큰 임무는.
“발전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이번 당대회에서도 중국의 문제 해결은 발전에 달렸다고 재확인했다. 중국 경제는 세계 2위가 됐지만 지역·도농·계층 간 발전 수준에 불균형이 심하다. 불균형·불안정·비과학이 문제다. 발전 방식을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2020년까지 국내총생산(GDP)과 1인당 국민소득을 각각 2010년의 두 배로 늘릴 것이다. 경제 시스템도 개혁할 것이다. 분배개선, 사회 정의, 정치 개혁을 통한 당내 민주주의 확대도 추진할 것이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중앙군사위 주석직까지 내놓았는데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나.
“시장경제에는 ?보이지 않는 손(看不見的手)?이 존재하지만 우리(중국 공산당)는 아니다. 후 주석은 군사위 주석직에서도 완전히 물러나겠다고 당 중앙에 여러 차례 건의했다. 과거 덩샤오핑 동지도 물러나겠다고 했지만 당 사업의 필요 때문에 유임시켰다. (후진타오가) 내년 3월 국가주석에서 물러나면 4개월 만에 권력 교체가 가능해진다. 권력 교체에 너무 긴 시간이 걸리면 비용이 너무 크다.”

-파벌 간 권력 투쟁이 치열했다던데.
“외부의 추측일 뿐이다. 내가 안에서 지켜본 바에 따르면 지도자 그룹이 탄생하기 전에 이미 선출 기준을 만든다. 경력·평가 등을 엄밀하게 반영했다. 8200만 명의 당원이 지켜보는데 권력 투쟁으로 지도자를 결정했다면 죽도 밥도 안 됐을 것이다.”?

-홍콩 언론은 ‘왕양(汪洋)·류옌둥(劉延東)이 사전 투표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당선권(7위)에 들었지만 원로들이 배제했다’고 보도했는데.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알기로는 사전에 정해진 게 아니라 10월까지도 최종 결론이 나지 못했고 당 대회 무렵에야 결론이 났다.”

-1919년 5·4운동 때는 ?사이(賽·science·과학) 선생?과 ?더(德·democracy·민주) 선생?을 모두 중시했는데 요즘 사이 선생만 중시하는 것 아닌가.
“누구를 중시하고 누구를 경시한 적이 없는데 오해가 있다. 과학은 국경과 이데올로기를 초월한다. 그러나 민주는 그렇지 않다. 더 선생은 가치관으로서 나라마다 실현 형식이 다르다. 형식이 다르므로 오해를 일으키기 쉽다. 더 선생은 미국에서 양복을 입지만 중국에선 마고자를 입는다.”

-시진핑이 지난 2월 미국에서 제시한 ‘새로운(新型) 대국(大國) 관계’의 함의는.
“대국들의 파워 변화 때문에 글로벌 권력 중심의 전이가 일어나고 권력 쟁탈전은 패권전쟁을 초래한다고 보는 게 기존의 대국관계 이론이다. 새로운 대국관계는 낡은 대국관계를 피하고 전쟁을 막자는 것이다. 중국이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되니 패권을 추구하고 대외 영토 확장을 할 거라고 보는 추측이 있다. 중국은 평화롭고 호혜적이며 윈윈하고 포용하는 관계를 추구한다.”?

-미국과 ?싸우되 판을 깨지 않는다(鬪而不破)?는 의미인가.
“‘경쟁하되 전쟁하지 않고(競爭而不戰爭), 협력하되 다투지 않는다(合作而不爭鬪)’가 맞다.“

-영토 분쟁 때문에 요즘 같아서는 중·일이 전쟁이라도 하는 것 아닌가.
“전체 국면(大局)과 부분(局部)을 구분해야 한다. 전체적으로는 좋다. 다만 국부적인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 열도) 문제가 커진 것은 일본 정치인들이 중국인의 마지노선(底線)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굴욕의 역사를 경험한 우리는 대외 확장을 안 하지만 한 치의 침략도 절대 용인하지 않는다. 그래도 전쟁 가능성은 크지 않다. 서로 노력해 새로운 균형점을 찾으면 된다.”

-중국의 새 지도부가 포퓰리즘적인 민족주의자란 시각도 있다.
“중국인과 중국의 이데올로기를 오해하기 때문에 생긴 심각한 오해다. 근대 이후 뼈아픈 굴욕을 당한 민족이 애국 열정을 표현하는 것을 포퓰리즘과 민족주의라고 보는 건 경솔한 평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