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제국의 몰락 … CEO 오텔리니 ‘인텔 아웃사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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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의 CEO인 폴 오텔리니가 지난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12 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연설하는 모습. 인텔은 오텔리니가 내년 5월 물러난다고 19일 공식 발표했다. [로이터=뉴시스]

세계 개인용컴퓨터(PC) 시장의 ‘황제’ 인텔 이사회는 지난 14일(현지시간) 발칵 뒤집혔다. 폴 오텔리니(Paul Otellini) 최고경영자(CEO)가 갑자기 내년 5월 용퇴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1968년 설립 이후 5명의 CEO를 거친 인텔은 중국 공산당을 닮았다는 평을 들어왔다. 현직 CEO가 일찌감치 후계자를 낙점한 뒤 여러 부서를 거치며 경영수업을 쌓게 해와서다. 그런데 후계구도를 미처 정하기도 전에 오텔리니가 물러나겠다고 하자 이사회가 당황했다.

 이사회 만류에도 오텔리니가 뜻을 굽히지 않자 인텔은 19일 뒤늦게 그의 용퇴 결정을 공식 발표했다. 월가에선 벌써부터 인텔이 설립 후 처음으로 외부에서 CEO를 스카우트해 올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를 비롯한 미국 언론이 전했다. 오텔리니가 정년을 3년이나 남겨두고 갑자기 물러나기로 한 것도 내부의 ‘고인 물’로는 인텔이 당면한 도전을 헤쳐나가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라고 언론은 분석했다.

 오텔리니는 전형적인 ‘인텔 맨’이다. 인텔 본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74년 입사 후 38년 동안 한 우물만 팠다. 2005년 CEO에 오른 뒤엔 인텔의 영광과 좌절을 함께 맛봤다. 2005년엔 애플의 스티브 잡스 CEO를 설득해 애플PC에 들어가는 컴퓨터 두뇌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파워PC에서 인텔로 바꿔놓는 수완을 발휘했다. 그 덕분에 인텔 매출은 2005~2011년 사이 57%가 늘었다. 매출 500억 달러를 처음 돌파하는 기록도 세웠다.

 반면에 2006년엔 인텔 역사상 최대 구조조정을 단행한 ‘냉혈 외과의사’로 돌변하기도 했다. 한 해 1만 명의 노동자를 잘라내 2년 만에 30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했다. 그 덕에 2006년 곤두박질했던 인텔 주가는 급등했지만 구조조정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애플이 이끈 ‘모바일 혁명’이 PC시장을 잠식하면서 인텔 칩 수요도 꾸준히 줄었기 때문이다. 세계 PC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의 80%를 장악한 현실에 안주해 모바일 혁명의 파괴력을 얕잡아 본 게 실수였다.

 인텔이 방심한 사이 모바일 기기에 들어가는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주로 만들어 온 영국 ARM이 모바일 시장의 신흥 강자로 등장했다.

모바일 시장에서 인텔의 시장점유율은 1% 남짓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하다. 여기다 PC시장을 평정하는 데 든든한 동맹군이 돼온 마이크로소프트(MS)와의 연대도 흔들리고 있다. PC시장 위축으로 제 코가 석 자가 된 MS가 모바일 시장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안팎의 도전에 실적도 갈수록 악화했다. 지난달 인텔은 3분기 순수익이 1년 전보다 14.3% 줄었다고 발표했다. 태블릿PC 기능의 진화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어 PC 수요는 앞으로도 더 줄 수밖에 없다. 인텔로선 80년대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은 셈이다. 당시 메모리 반도체를 주로 만들던 인텔은 일본 반도체회사들이 저가공세를 펴자 과감하게 메모리를 버리고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어 세계를 제패했다.

 그러나 그 사이 회사의 덩치는 너무 커졌고 둔해졌다. 시장은 모바일로 급속히 옮겨가고 있지만 인텔의 조직문화는 이를 따라잡지 못했다. 오텔리니 후임자가 외부에서 발탁될 것이란 월가의 관측도 그래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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