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자문’은 누가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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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평소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그. 저금리·저성장 시대에 목돈을 어떻게 굴려야 할지 고민이다. 투자처로 삼았던 주식 및 부동산 시장 침체가 장기화하자 자신에게 맞는 노후 설계방법이 무엇인지 금융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기로 했다.

 어떤 일을 처리하기에 앞서 자신의 판단만으로 결정을 내리기엔 뭔가 미흡하다고 느낄 때 그 분야에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을 찾아 의견을 묻게 될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에게 자문을 구하다’고 말하는 이가 많지만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금융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기로 했다”는 “금융 전문가에게 자문을 하기로 했다”와 같이 고쳐야 바르다. 자문의 의미를 잘못 이해해 쓴 경우다.

 ‘자문(諮問)’은 물을 ‘자(諮)’와 물을 ‘문(問)’ 자로 이뤄진 단어로, 어떤 일을 좀 더 효율적이고 바르게 처리하려고 그 방면의 전문가나 전문가들로 이뤄진 기구에 의견을 묻는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무엇을 묻는 게 자문이므로 ‘자문을 구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됐다. 답을 구할 수는 있어도 물음(질문)을 구할 순 없으므로 ‘자문을 하다’로 써야 맞다.

 “은행들은 법무법인에 자문을 구한 결과 ‘상표권 등록 무효소송에서 이길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처럼 사용하는 건 어색하다. ‘법무법인에 자문을 한 결과’로 바루어야 ‘법무법인에 물은 결과’라는 뜻이 된다. ‘구하다’란 단어를 넣어 표현하고 싶으면 ‘법무법인에 조언(助言)을 구한 결과’라고 해야 자연스럽다.

 ‘자문’이란 말은 물음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며 사용해야 한다. 내가 남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의견을 묻는 건 자문을 하는 것이고, 상대방이 그 문제에 관해 자기 의견을 제시하는 건 자문에 응하는 것이다. ‘검찰총장 자문기구’란 말은 검찰총장에게 자문해 주는 기구라는 의미가 아니다. 검찰총장이 자문하는 기구 또는 검찰총장의 자문을 받아서 응답해 주는 기구란 뜻이다. ‘자문하다-자문에 응하다’가 헷갈리면 ‘조언을 구하다-조언하다’ ‘의견을 묻다-답변하다’ 등의 쉬운 말로 적절히 바꿔 써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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