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공정거래정책 유효한가] 공정위 입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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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는 디지털 경제라고 해서 현행 공정거래법의 골간이 달라질 이유는 없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조학국 사무처장은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은 현재 진행중" 이라며 "학계에선 디지털 경제라고 해서 전통적인 경쟁정책을 수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다수" 라고 주장했다.

공정위도 디지털 경제가 찾아올 변화에는 주목하고 있다. '네트워크 효과' '수확체증 확대' '선점 효과' 등으로 특징되는 디지털 경제가 굴뚝산업이 이끄는 전통경제와는 분명히 다를 것이라는 인식에서다.

공정위는 그러나 공정경쟁 정책의 집행에 있어서 디지털 경제의 특성을 최대한 반영하되, 독점과 경제력 집중에 대한 규제는 강화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 독점 규제 강화해야=공정위는 최근 펴낸 공정위 20년사에서 디지털 경제에 대해 "정보통신의 시스템 특성과 네트워크 효과에 의해 승자가 모든 것을 가지는 이른바 승자 독식 현상이 나타난다" 고 규정했다.

승자가 결정되기 전 치열한 경쟁이 일어날 수 있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 그러나 경쟁의 결과로 승자가 확정되면 오히려 독점이 굳어지고, 장기화해 사회적 후생이 감소할 수 있다는 점을 공정위는 우려하고 있다.

특허 시스템이나 네트워크 효과 등으로 인해 진입장벽이 상당히 오랜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시장을 선점한 이들이 신규 사업자의 시장진입을 막기 위해 네트워크에의 접근 등을 부당하게 방해할 수 있다는 걱정도 제기된다.

공정위는 카르텔에 대해서도 엄격한 규제는 유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술 표준화와 관련된 기업간 협력은 적극 촉진하되 생산과 판매단계에서의 담합은 엄격히 고삐를 죄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이런 경우에 대비해 시장지배력 ·진입장벽 ·전환비용 등의 새로운 개념을 반영해 반(反)경쟁성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 사안별 대응은 달라질 수 있어=공정위도 디지털 경제에선 '시장' 의 개념이 종전과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인정한다.

예컨대 미국 가수의 음반을 국내 소비자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국내 음반시장의 독과점 사업자를 가리는 일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공정위 20년사는 "벤처기업간 공동 연구개발이나 전략적 제휴에 대한 경쟁정책 상의 고려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고 적었다.

진입장벽과 시장지배력에 대한 새로운 규정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정위도 동감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시장의 경계가 포괄적으로 확대되는 만큼 향후 시장지배력 측정은 시장점유율뿐만 아니라 보완재 시장 및 판매후시장과의 연관성을 동시에 감안하게 될 것" 이라고 지적했다.

◇ 현행 공정거래법 골간은 유지=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출자총액제한 제도나 시장지배적사업자의 가격남용 규제, 부당공동행위 제한 등은 디지털 경제에서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경쟁을 제한하느냐, 아니냐에 있다" 며 "디지털 경제에선 나타나는 현상에 맞게 사안별로 경쟁 제한성을 판단할 필요성이 늘어나겠지만, 기본적인 골격은 바뀔 것이 없다" 고 말했다.

시장점유율로 기업결합을 제한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에 대해서도 "현행 제도는 기업결합으로 인한 폐해가 심각해지면 얼마든지 규제할 수 있다" 며 "디지털 경제에선 동태적으로 독과점사업자가 될 경우에 대한 모니터링과 그에 따른 규제가 강화될 가능성도 있다" 고 덧붙였다.

이상렬 기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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