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목수 김씨에게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오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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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정신'이란 칭호는 흔한 말이다. 하지만 듣는 사람에게 그 말은 엄청난 폭력일 수 있다. 그 본래의 의미야 그렇지 않다 치더라도 우리가 흔히 일컫는 '장인정신'이란 말에는 돈문제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돈과는 상관없는 고고한 일'을 한다는 얘기다. 고고한 일? 좋다. 천직도 좋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도 좋다. 하지만 그게 생활과 동떨어진 비경제적 행위라면 좀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최근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책 『목수일기』(웅진닷컴)의 기록자 목수 김씨. 그에 대한 우리의 오해도 이와 비슷한 선상에서 시작된다. 목수 김씨의 상품을 보고 사람들이 이렇게 묻는다. "아, 장인정신으로 만든 예술품이군요." 그런데 목수 김씨는 아니란다. 예술품 아니고 상품이란다. 전부 파는 거란다.

■ 첫 번째 오해: 목수 김씨는 예술가다?
"제가 좋아하는 형태가 있어요. 단순하고 묵직하고 직선인 게 많죠. 전시회를 열었을 때 제가 보기엔 훨씬 더 미적이고 아름다운 게 많은데, 전 너무너무 좋아하는데 사람들은 안 사는 거예요.

하지만 전 별로 안좋아하는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있어요. 얄쌍하고 부드럽고 여성적인 걸 만들어 내면 고거만 다 사가요. 그럼 다음번엔 뭘 만들겠어요? 저는 그 다음에 당연히 제가 좋아하는 걸 안 만들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만들어요.

명쾌하게 갈라지죠. 예술가라면 아마 자기 것을 고집했을 거예요. 저는 안그래요. 팔아야 먹고사는데 팔리게 만들어야지, 그렇게 생각해요."

이때쯤 목수 김씨의 본명을 밝혀줘야 한다. 김진송(42). 국문학과 미술사를 전공했고 미술평론, 전시기획, 출판기획 등의 일을 해왔다. 두 차례 개인전을 연 작가이며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큐레이터 일을 했고 1999년에는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현실문화연구)를 베스트셀러로 만든 인문학 저자이기도 하다.

예술과 그토록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오던 김진송씨가 돌연 목수 김씨라는 익명으로 자신을 숨기고 있는 것은 왜일까? '예술가가 아니라 목수'라고 계속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두 번째 오해: 목수 김씨의 작품들은 공예품이다?
"사람들이 절더러 '당신은 목공예가지 목수가 아니다'라는 얘길 많이 해요. 잘못 알고 있는 거예요. 목수도 두 종류가 있어요. 대목과 소목이 있죠. 대목은 집짓는 사람이고 소목은 소목장이라 그러는 데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에요. 공예는 아니죠. 공예는 아름다움을 중심에 놓고 쓸모를 갖다 붙이는 거예요. 저에게 아름다움은 부차적인 거예요. 목수는 쓸모가 먼저예요. 물건을 파는 게 먼저예요. 예술하는 건 제 목적이 아닙니다.

하지만 참 편한데 너무 보기 싫어서 안 쓰는 물건이 있을 수도 있죠. 아름다움과 쓸모를 적절하게 섞어야 되겠죠. 이걸 해서 인정받고 작가가 되고 싶은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어요. 왜 천박스럽게 작가를 해요? 우아하게 목수를 하지."

저 말 매섭다. "천박스럽게 작가를 하느니 우아하게 목수를 하겠다."저 말에는 분명 비아냥이 포함되어 있다. 미술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 내놓은 말이니 건성으로 들리지 않는다. 목수에게는 이름이 없다.

목수는 물건을 팔 뿐이지 이름을 팔지 않는다. 이름을 팔아서 작품의 값어치를 터무니없이 치솟게 하는 미술풍토를 생각해 볼 때 미술평론가 김진송에서 목수 김씨로의 전이는 탁월한 선택이다. 그는 아무 말없이 '목수 김씨'라는 이름 아닌 이름으로 야유를 보내고 있다.

■ 세 번째 오해: 목수는 연장이 좋아야 한다. 그러니 목수 김씨는 좋은 연장을 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제가, 연장이 없어요. 연장이 굉장히 중요한데 목수 경력이 일천하다 보니 뭐가 좋은지 뭐가 나쁜지 잘 몰라요. 있는 거 가지고 억지로 쓰고 있어요. 그런데 따지고 보면 연장이라는 것 자체가 또 특별히 있을 것도 없어요. 기계의 원리라는 게 회전 아니면 직선이잖아요. 그러니 제가 하는 작업과는 좀 안맞죠. 곡선 작업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깎귀나 도끼로 다 만들죠."

『목수일기』에도 나와있듯 연장을 구하기란 하늘에 별따기다. 서울에 남은 대장간이 겨우 세 곳 정도, 그나마 지방에서는 찾아보기도 힘들단다. 그래서 목수김씨는 직접 연장을 개발하기도 했다. 아프리카 조각 연장에서 힌트를 얻어 우리의 전통적인 깎귀의 모양새를 결합한 것이다. 직접 도면을 그리고 대장간에 주문해서 만들었다. 목수 김씨는 연장에 애착이 많다.

그러니 연장에서 얻는 깨달음 역시 만만찮다. 톱을 얘기하는 대목에서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목수 김씨와 아버지의 톱질 대결. 2백여 번의 톱질이 필요한 작업에서 목수 김씨는 열댓 개를 자르고 넉다운된 반면 아버지는 수십 토막을 잘라낸다. 목수 김씨는 순간 깨닫는다.

"일흔을 넘긴 아버지보다 사십 밖에 안된 내가 톱질에 서툰 것은 간단한 이유에서인데, 나는 빠르고 아버지는 느리기 때문이다."

■ 네 번째 오해: 목수 김씨가 『목수일기』를 쓴 까닭은 먹물로서의 잔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자고 책상에 앉아서 써본 적 없어요. 나무를 기록하다 보니 이렇게 된거죠. 제가 다루는 나무가 지금 50가지가 넘어요. 종류가 많잖아요. 나무를 딱 보고 무슨 나무인지 알아야 나무의 속성을 그 다음에 기억한다구요.

예를 들어 이건 소나문데 그 다음에 쓸 때 이 속성을 모르면 만들 때 또 문제가 돼요. 소나무는 벤 지 몇 년 만에 써야 된다, 요렇게 잘리면 어떤 형태로 뒤틀린다, 또 껍질을 벗긴 채로 말려야 되는가 입힌 채로 말려야 되는가, 이런 것들이 나무마다 다 틀려요. 벌레 먹은 것도 다 틀리고 벌레 모양도 틀리단 말예요. 한 번 나무를 기억해 놓지 않으면 다음에 일이 더 많아지거든요.

그런데 기록하기가 참 힘들어요. 그래서 제가 선택한 방법이 이 책이에요. 이렇게 이렇게 가져온 나무다 하고 써놓으면 나중에 금방 기억이 나요. 그래서 쓴 거예요."

어쩌면 그래서 『목수일기』가 더 재밌는지도 모르겠다. 『목수일기』에는 강경한 목소리가 없다. 그렇다고 비통한 감상도 없다. 그저 하루하루 나무를 알아가는 과정, 목수가 돼가는 과정이 담담하게 그려졌다.

때론 다치고 때론 깨닫고 때론 절망하지만 모든 것이 그저 담담하다. 『목수일기』를 쓰는 목수 김씨, 아니 김진송씨의 마음가짐에도 분명 다른 점이 있었다. 많은 책을 쓴 그였지만 이번엔 달랐다. 이전의 글들이 논리적 정합성을 치밀하게 고려한 '뻣뻣한 글'이라면 『목수일기』는 몸에 힘을 다 빼고 '좀 못쓰면 어때!'하는 마음으로 기록을 해나갔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이렇다.

"『목수일기』를 쓸 때는 전혀 부담감이 없었어요. 난 이 글에 대해 책임 안지겠다, 난 목수니까 좀 못써도 되잖아? 이런 마음으로."

■ 다섯 번째 오해: 목수 김씨는 목수로서의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났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이런 얘길 해줘야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미술평론을 했어요. 그러니 미적인 훈련은 굉장히 잘 돼 있는 사람이에요. 사람들이 어떻게 너는 갑자기 시작해서 전시도 하고 물건도 잘 팔아먹느냐 그러는데 그건 내가 미리 갖고 있는 게 좀 있어서 그럴 거예요.

시각적 훈련 같은 건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돼 있을 거예요. 어떤 형태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형태가 좋다, 이렇게 비교하는 게 전공이었단 말입니다. 그러니 별로 이상할 게 없죠?"

그래도 손재주 같은 건 타고나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목수일기』245페이지에 있는 「목수의 잘난 척」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목수나 손을 써서 하는 일은 재주와 관련된 것이라 생각하면서 '생각하는 것을 소홀히 하고, 관찰하는 것에 무관심하며, 손을 움직이는 것에 게으른 사람들이 너무 많'다며 목수 김씨는 일침을 놓는다. 세상에 '타고난 재주'란 건 없다는 얘기다.

■ 여섯 번째 오해: 목수일은 무지무지 힘들다?
이건 오해 아니다. 맞는 말이다. 『목수일기』를 훑다보면 그 노동 강도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가장 힘든 일은 나무를 옮기는 것. 엉키고 설킨 나무를 통째로 옮기다보면 몸 여기저기가 긁히고 찢긴다. 그러고 보니 아직 중요한 걸 물어보지 못했다. 왜 이렇게 힘든 목수 일을 계속 하냐고.

"당연히 먹고 살려고 하는 거죠. 돈 많으면 이거 안해요. 하지만 힘든 일이긴 해도 장점이 하나 있어요. 출판사를 나간다거나 화랑이나 회사에 나갔을 때는 30분 정도 뭔가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 전화 오지, 뭐 해야 되지, 대화해야 되지. 그런데 목수는 그게 가능해요.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건 굉장한 장점이에요. 어떤 문제가 닥치거나 형태를 고민할 때 생각을 많이 해요.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가 금방금방 떠오르냐고 물어보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요. 저는 되게 많이 생각해서 떠오르는 거예요. 사람들은 내가 만든 걸 보고 간단하게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나무 몇 개 툭툭 쳐가지고 만들었을 거라 생각하는 데 안그래요. 어떤 나무가 물건이 되려면 실제로 그 나무의 4분의 3을 뜯어내야 해요."

목수 김씨는 스스로를 '얼치기 목수'라 칭한다. 나무를 만진 지 삼사 년, 얼치기란 말을 떼놓을 수도 있으련만 그렇게 자신을 부른다. 아직 나무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겸손일까? 아니면 혹시 정말 목수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닐까? 목수 김씨가 만들어내는 재미있는 가구들과 기발한 상상력을 접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예술과 상품의 중간을 끊임없이 어슬렁거리는 그의 작품 혹은 제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을 재미있게 살아 보려고 택한 것이 바로 목수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는 얼치기 목수란 말이 정확할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것도 목수 김씨에 대한 오해 중 하나일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김중혁/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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