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 따도 … 6개월간은 변호사가 아닙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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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로스쿨 1기로 졸업한 구모(32) 변호사는 지난 7월 서울 수서경찰서로부터 출석 통보를 받았다.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자격증까지 받았지만 ‘해서는 안 될 법률자문’을 했다는 이유였다.

 사건의 발단은 구 변호사가 인터넷에서 무료로 다운받은 서체를 사용하다 저작권자로부터 고소·고발된 피해자들의 카페를 접하면서다. 변리사 출신으로 평소 저작권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구 변호사는 수백만원에 이르는 합의금을 요구받는 피해자를 위해 관련 판례들을 찾아 카페 게시판에 올렸다. ‘서체 저작권은 따로 존재하지 않으니 저작권자를 대리하는 법무법인의 과도한 합의 요구나 소송이 부당하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돈 한 푼 받지 않고 자원봉사 차원에서 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글을 본 피해자들이 손해배상 집단소송을 할 움직임을 보이자 저작권자 중 한 명이 구 변호사를 경찰에 고발했다.

 구 변호사와 같은 로스쿨 졸업생들은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면 곧바로 자격증을 받는다. 올 3월 처음으로 1451명의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탄생했다. 하지만 변호사가 된 뒤에도 법률활동을 전혀 할 수 없다. 지난해 개정된 변호사법상 로스쿨 출신 변호사는 자격증을 받은 뒤 6개월의 연수를 마치기 전까지 사건 수임과 변호사 활동이 금지(31조 2항)되기 때문이다.

법 개정 당시 대한변협은 “사법연수원생과 달리 실무연수를 하지 않았으니 1~2년 연수를 마친 뒤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로스쿨 측에서는 “학과 과정에 연수 프로그램이 있는 만큼 졸업 후 시험에 합격하면 바로 변호사로 인정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양측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자 국회가 중재 차원에서 ‘자격은 주되 6개월 연수기간 동안 활동을 금지’하는 현재의 조항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6개월간 변호사지만 변호사가 아닌 상태로 지내야 하는 어정쩡한 법이 되고 말았다.

 구 변호사는 경찰에서 “보수 없이 판례 등을 올린 것을 변호사법 위반이라 볼 수 없다”고 항변했다. 고민하던 경찰도 ‘해당 사건에 대한 전례가 없다’며 일단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지난달 연수기간이 만료돼 구 변호사는 이제 수임활동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반년간 ‘무늬만 변호사’인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양산되는 사태가 해마다 계속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특히 법무부는 사건 수임과 변론은 물론이고 변호사의 이름을 건 법률상담 및 서면 작성까지 금지했다. 구 변호사 경우처럼 무료 상담이라도 상대방이 마음만 먹으면 현행법 위반으로 고소할 수 있는 것이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은 “6개월간 실무경험을 통해 경험을 쌓게 하겠다는 취지의 법이 오히려 초임 변호사의 실무경험을 막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이 조항 때문에 로스쿨 변호사들이 차별대우를 받는다는 지적도 있다. 전국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관계자는 “중소형 로펌에서는 수임과 변론을 못 하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 고용을 꺼린다”며 “연수기간 동안 계약한 급여의 30%만 주거나 아예 무급으로 변호사를 고용하다 기간 종료 후 퇴사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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