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들 『영원한 세 친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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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야, 너는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 셋을 가지게 된단다."

독일의 그림책 작가 헬메 하이네의 『영원한 세 친구』는 이렇게 다정한 속삭임으로 시작됩니다. 작가는 갓 태어난 아이에게 앞으로 평생 동안 함께 할 귀중한 친구들을 소개해 주고 있어요. 혹시 이웃집 꼬마들이라도 데려 오려는 걸까요? 아니면 귀여운 인형과 장난감을 전해 주려는 걸까요? 아닙니다. 작가가 말하는 '세 친구'란 다름 아닌 인간의 두뇌, 마음, 육체를 뜻해요. 작가는 모든 인간을 지탱하는 이 소중한 요소들을 재치 있게 의인화해서 잔잔한 감동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책에서 두뇌는 '머리 교수님', 마음은 '사랑마음 아주머니', 몸은 '뚱보배 아저씨'로 불립니다. 대머리에 안경을 쓴 모습으로 표현된 머리 교수님은 아기의 머릿속에 삽니다. 그곳에서 모든 일을 부지런히 기록하며 밤이면 컴퓨터를 켜고 열심히 정리를 하지요. 심장에 살고 있는 사랑 마음 아주머니는 '네게로 오는 모든 마음을 돌보는 분'이라고 소개됩니다. 슬픔에 젖은 마음은 잘 달래 주고, 깨어진 마음은 잘 붙여 주고, 구겨진 마음은 깨끗이 펴 주기도 하지요.

뚱보배 아저씨도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뱃속에 사는 이 뚱뚱한 아저씨는 아기가 먹고 마시는 모든 것들을 책임 지고 있습니다. 너무 찬 음식은 따뜻하게 데워 주고, 너무 뜨거운 음식은 알맞게 식혀 주며 아기의 몸을 돌봐 주지요. 이 고마운 세 친구 덕분에 아기는 열심히 생각하고, 다른 사람과 마음을 주고 받으며, 맛있게 먹고 몸을 가꾸며 긴 인생을 살아가게 되겠지요.

『영원한 세 친구』를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재치 있는 그림 덕분에 몇 번이고 미소를 머금게 됩니다. 한세상 살아가는 동안 아기가 겪을 일에 따라서 세 친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합니다. 풀밭을 기어 다닐 때는 뚱보배 아저씨가 앞에 있고, 공부를 할 때는 머리 교수님이 맨 앞에 서 있습니다. 결혼식을 할 때는 당연히 사랑마음 아주머니가 가장 앞에 있습니다. 그렇게 삶에 깃든 온갖 슬픔과 기쁨의 갈피갈피를 넘기며 아기는 살아가게 되겠지요.

하지만 언젠가는 세 친구가 헤어지게 될 순간이 다가올 겁니다. 그건 바로 죽음이에요. 뚱보배 아저씨는 여전히 몸 속에 남아 있지만 머리 교수님과 사랑마음 아주머니는 이제 몸 밖으로 빠져 나가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옮겨 가서 영원한 기억을 만들어 줍니다.

작가 헬메 하이네는 예순 번 째 생일에 이 그림책을 출간했습니다. 삶의 여러 고비를 넘고 조금씩 뒤를 돌아보아야 할 나이가 된 작가. 어쩌면 작가의 인생에도 이제 덧셈 보다는 뺄셈이 더 많이 남아 있을지도 몰라요. 그래서일까요? 이 그림책은 삶에 대한 감동적인 성찰을 보여 주고 있어요.

딱딱하고 어려운 표현은 단 한 줄도 들어가 있지 않지만 그토록 쉽고 재미있는 표현 속에서 작가는 톡톡, 삶의 의미를 건드리고 있어요. 『신비한 밤 여행』, 『세 친구』 등 오랜 세월 동안 그림책을 그려 오면서 쌓아온 경험이 이 그림책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이 그림책을 보고 있으면 가랑비를 맞으며 거리를 거닐 듯 조금씩 조금씩 몸을 적시는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이 그림책의 마지막 장에는 외줄 타기를 하고 있는 세 친구의 모습이 작게 보입니다. 뚱보배 아저씨는 외줄 위에서 긴 막대를 들고 위태롭게 걸어가고 있어요. 그런데 그 막대의 양쪽에 머리 교수님과 사랑마음 아주머니가 매달려 있습니다. 아! 우리네 삶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니던가요.

타박타박, 긴 인생 길을 걸어가려면 이성과 감성이 균형을 잡아 주어야 하지 않던가요. 가끔씩 그 균형이 무너질 때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얼마나 아팠던가요. 그 마지막 그림을 한참동안 바라보면서 내 몸 속에 있을 세 친구를 다시 한 번 생각했습니다. 삼십 년 넘게 친구로 지내온 그들. 내 오랜 세 친구들이 영원히 평화롭게, 나라는 인간과 함께 하기를 빌며.(최덕수/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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