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우니는 누굴 물어야 하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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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호 31면

요즘 가수 싸이 다음으로 인기 있는 캐릭터는 ‘개그콘서트’의 ‘정 여사’에 등장하는 시베리안 허스키 인형 ‘브라우니’인 것 같다. 인형이라는 한계(?)를 딛고 최근엔 데뷔곡 ‘브라우니’를 발표했고, 복제 인형도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것을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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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여사’는 자신이 산 물건을 어이없는 이유로 바꿔달라는 막무가내 정 여사(정태호)와 판매원(송병철)의 실랑이가 주를 이루는 코너다. 정 여사는 ‘손님은 왕’이라는 철학만 확고할 뿐 ‘판매원도 사람’이라는 기본 개념을 갖추지 못했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의 대화엔 전혀 진전이 없다. 정 여사는 말문이 막히면 자신의 도도한 애완견에게 “브라우니, 물어!”라고 외친다. 물론 브라우니는 물지 못한다.

이 코너의 인기가 높은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 ‘정 여사’가 많다는 얘기도 된다. 갑을 관계에 놓인 사람들일수록 말이 통하기 힘들다. 소통의 수단이 넘쳐나는 시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말이 통하지 않아 느끼는 괴로움에 이처럼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공동체에 대한 배려심도 없고 남의 말에 마이동풍인 사회치(痴)가 그만큼 많아졌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많아도, “너~무~” 많다. 심심치 않게 온·오프라인을 휘젓는 ‘○○녀’ ‘○○남’은 하나같이 어지간하면 참을 수도 있는 욕심과 욕구를 공공장소에 풀어놓아 생기는 사회적 소동이다. 이들에게 하지 말라는 얘기는 통하지 않는다.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억울하다 느낄 때는 사적 복수를 단행하기도 한다. 자신의 과실이 분명함에도 마치 피해자인 것처럼 사연을 정리해 인터넷에 올린 후 상대방을 매장시키려는 사례도 있었다. 자신만의 브라우니를 풀어놓는 격이다.

직장이나 가정에서 우리는 종종 판매원이 된다. 다른 시점에선 분명 누군가의 ‘정 여사’일 것이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이해하기 힘든 ‘정 여사’ 부류가 있다면 바로 보행 중에 담배를 피우는 일부 흡연자들이다. 잠시 멈춰 서서 담배를 피우든지, 아니면 흡연 욕구를 몇 분만 참으면 된다. 그런데도 그러질 않는다. 옆에서 불편을 감수하는 행인을 사람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평생 다시 볼 일 없을 행인이라도 ‘천식 환자’ ‘감기 걸린 아이’와 같은 사연이 있을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도 어디선가 판매원이 돼 그들의 정 여사를 원망하고 있을지 모른다.

말이 안 통할 때, 나를 사람으로 안 봐줄 때 해법은 무엇일까. 그나마 상대에게 애정이 있다면 붙잡고 앉아 대화를 시도한다. 아니면 답답함을 털어놓을 자기만의 공간을 마련한다. ‘시댁 이야기’, ‘직장인 애환’ 등으로 분류된 인터넷 사연 게시판일 수도 있고 한동안 트위터에서 유행한 ‘○○○옆 대나무 숲’일 수 있다. 마음속에 자신만의 브라우니를 키우며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그 사람을 향해 서로가 서로에게 “물어!”를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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