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상읽기

중국 지도자 교체는 어떻게 ‘긍정의 역사’ 걷는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우리는 부정의 역사, 중국은 긍정의 역사를 걷는다는 말이 있다. 권력 교체와 관련해서다.

 역대 우리 대통령의 경우 대부분 끝이 좋지 않았다. 이승만은 하야했고, 박정희는 부하의 총탄에 스러졌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옥살이를 했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나 싶었는데 노무현은 부엉이 바위 아래로 몸을 던졌다.

 묘하게도 우리 정치판엔 전임자를 밟고 일어서려는 희한한 풍토가 자리 잡고 있다. 자신을 키운 이를 배신하는 행태가 다반사다.

 반면에 중국은 선대의 잘못보다는 업적을 앞세운다. ‘공은 7, 과는 3(七分功勞 三分過失)’이라 했던 마오쩌둥(毛澤東)에 대한 덩샤오핑(鄧小平)의 평가가 좋은 예다.

 중국의 후계자는 전임자의 노선을 받든다. 덩샤오핑은 ‘마오쩌둥 사상’을, 장쩌민(江澤民)은 ‘덩샤오핑 이론’을, 후진타오(胡錦濤)는 장쩌민의 ‘삼개대표 중요사상’을 외치며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미래 권력 시진핑(習近平)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현재 후진타오의 치국 이념인 ‘과학 발전관’을 입에 달고 산다.

 중국 지도자 교체는 어떻게 긍정의 역사를 걷는가.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권력 승계 메커니즘이 ‘넘겨주는 쪽’의 시스템이지, ‘이어받는 쪽’의 체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차기 지도자는 국민이 아닌 앞선 세대의 낙점에 의해 뽑힌다. 선대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노선에 충실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줄 수 있으며, 자신들이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인물을 선발해 옥새를 넘겨준다.

 중국 공산당은 이를 ‘정책의 연속성’과 ‘권력의 안정성’을 위해서라는 말로 포장한다.

 이에 따라 후계자는 정통성의 근원을 전임자에 두게 된다. 선대를 밟고 일어선다는 것은 자기 권력의 합법성을 부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자연히 ‘과거 없이는 미래도 없다’는 인식하에 과거사의 공과 과를 한데 안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다고 선대와의 차별화를 꾀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 방식이 전임자에 대한 전면 부정은 아니다. 그보다는 보완적 성격을 띤다. 장쩌민이 ‘빈곤이 사회주의는 아니다’는 덩샤오핑의 명언을 취해 ‘가난이 사회주의는 아니며, 문화적 박탈이 사회주의적인 것도 아니다’라 말한 게 대표적 예다.

 중국이 권력 승계의 긍정적 역사를 걷는 두 번째 비결은 ‘격대지정(隔代指定)’ 시스템에 있다. 이는 현 지도자가 한 세대를 건너뛰어 그 다음 세대의 지도자를 미리 결정하는 방식이다.

 시작은 덩샤오핑이었다. 덩은 장쩌민을 중국의 3세대 지도자로 확정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장을 이을 4세대 지도자로 후진타오를 내정했다.

 중국에 ‘마누라는 남의 마누라가 좋을 수는 있어도, 아들과 후계자는 자기 것이 좋다’는 말이 있다. 장쩌민 입장에선 당연히 자신의 사람을 후계자로 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덩샤오핑은 후진타오를 장쩌민의 후계자로 지정해 장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게 했다. 후진타오의 뒤를 잇는 인물인 시진핑 역시 격대지정의 규칙에 따른 인물이다. 후진타오가 아닌 장쩌민의 후원을 받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국 정치의 한 세력은 권력을 연속해서 장악할 수 없다. 10년 후면 다른 세력이 권력을 잡는다. 자연히 집권 기간 자신의 권세가 영원할 것 같은 전횡을 할 수 없다. 자신의 뒤에는 다른 세력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결국 과거를 부정하는 극단의 길 대신 과거와 타협하는 길을 모색하게 된다.

 그러나 일이란 게 언제나 매끄럽게 굴러가는 건 아니다. 최근 이 격대지정 시스템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지난여름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서 후진타오는 이 룰에 따라 시진핑 10년 이후의 지도자로 자신의 사람을 내세웠다.

 ‘리틀 후진타오’로 불리는 후춘화(胡春華)다. 현재 네이멍구(內蒙古) 당서기인 그를 이번 18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끌어올려 시진핑의 뒤를 잇는 6세대 지도자로 부각시킨다는 계산이었다.

 후진타오 자신이 10년 동안 황태자 수업을 받은 것과 같은 모양새를 취하려 했다. 그러나 장쩌민이 동의하지 않았다. 급할 것 없다는 이유에서다. 5년 후인 19차 당 대회 때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진입해도 늦지 않다는 이야기다. 시진핑 역시 차기 지도자로 내정 받은 건 5년 전이지 않으냐는 반론과 함께다.

 격대지정의 룰을 미리 실현하려는 후진타오, 이에 조급할 것 없다고 맞서는 장쩌민, 그러자 이번 당 대회 때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를 시진핑에게 넘길 수 없다는 후진타오의 반격 등이 이뤄지며 중국 정가는 초긴장 상태다.

 이번 당 대회 날짜가 과거에 비해 늦게 결정된 것도 이 같은 복잡한 배경 때문이다. 2007년 10월 15일 개최된 17차 당 대회는 그해 8월 28일, 2002년 11월 8일 열린 16차 대회는 그해 8월 25일 공표됐었다. 모두 베이다이허 회의 직후 나왔다.

 오는 11월 8일 열겠다는 18차 당 대회 날짜는 여느 때보다 한 달 늦은 9월 28일에야 발표됐다. 그만큼 진통이 컸다는 방증이다.

 금도 100퍼센트 금이 없고, 사람도 완전한 이는 없다. 마찬가지로 제도 또한 완벽한 건 없다. 중국의 권력 교체를 매끄럽게 해 온 격대지정의 원칙이 과연 앞으로 얼마나 더 유지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세상사란 게 모두 변하지 않던가.

유상철 중국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