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3명 모신 내시, 101세까지 산 비결은 '거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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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환관 기경헌은 101세까지 살았다. 현종 12년인 1670년에 태어나 숙종·경종을 거쳐 영조 48년인 1771년에 세상을 떴다. 당시로는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장수했다. 조선 역대 임금의 평균 수명은 47세였다. 그는 숙종과 경종, 영조를 지근거리에서 모셨다. 최고직위가 종 2품까지 올라 부귀영화를 누렸다. 역시 조선시대 환관인 홍인보(1735~1835)도 영조 때 태어나 정조·순조를 거쳐 헌종 때 100세의 나이로 숨졌다.

 조선시대 환관들은 환갑을 넘기는 게 흔했다. 80~90세의 장수를 누린 이도 많았다. 당시 양반들의 평균 수명은 50세 내외였다. 환갑 자체가 큰 경사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환관과 양반들의 수명이 크게 차이 나는 이유는 뭘까. 식습관·환경 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량 차이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거세돼 남성호르몬이 거의 나오지 않는 환관들이 정상적으로 분비되는 양반들보다 오래 살았다는 것이다.

 인하대 기초의학과학부 민경진(42) 교수와 고려대 생명과학부 이철구(46) 교수팀은 24일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 사는 이유가 남성호르몬 때문이라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조선시대 환관의 족보인 ‘양세계보(養世系譜)’를 조사했다. 2010년 기준으로 국내 남성의 평균 수명은 77.2세, 여자는 84.1세다.

 앞서 국내외에서 진행됐던 동물실험에선 평균 수명이 24개월인 쥐를 거세하면 3개월가량 수명이 늘어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평균 수명이 12~15년인 애완용 고양이는 1~3년 정도 연장됐다. 연구팀은 조선시대 환관 족보와 3개의 양반 가문 족보에 기록된 인물들의 수명을 조사·비교했다. 환관 족보에는 출생과 사망일을 알 수 있는 사람이 81명이었다. 각기 성이 다른 양반 족보의 조사 대상은 2589명이었다.

 조사 결과 평균 수명은 환관이 70세, 양반 가문은 51~56세로 나타났다. 환관이 평균 14~19년이나 오래 살았다. 조사 대상 환관 중 최장수는 109세였고 100세를 넘긴 사람은 모두 3명이었다. 90~99세는 3명, 80~89세는 6명이었다. 반면 양반 가문에서의 최장수는 100세였고 98세가 2명이었다. 민경진 교수는 “ 남성호르몬의 분비량 조절을 통해 남성 수명을 연장하는 데 연구 결과를 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세계보(養世系譜)=환관들이 생식기관이 불완전한 남자를 입양해 대를 잇고 이를 기록한 족보. 양세계보상 시조인 윤득부(생존 연대 미상)의 13대 손인 이윤묵(1741~1816)이 정리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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