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자수성가 갑부 장진숙씨가 주는 울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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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호 02면

맨손으로 큰일을 해 낸 성공담은 예나 지금이나 모두에게 울림을 준다. 미국의 다국적 패션업체 ‘포에버21’을 일으켜 미 최고의 자수성가 여성 갑부가 된 장진숙씨, 그리고 남편 장도원씨의 사연이 그렇다. 이민 30년 만에 순자산 5조원의 글로벌 기업을 키운 이 부부는 요즘 우리 주변에서 자취를 감춰간다는 자수성가형 부자의 덕목을 두루 갖췄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19일 ‘2012년 미국 400대 부자’를 발표하면서, 물려받은 것 없이 큰 부를 일군 갑부 여성 12명 중 으뜸으로 장씨를 꼽았다. 장씨 부부는 포브스가 지난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커플’ 명단에 한국계로는 유일하게 38위로 이름을 올렸다.

장씨 부부는 고교만 나와 곧바로 생업 현장에 뛰어들었다. 다른 이와 달리 진학·취직보다 창업을 택했고, 장사가 여의치 않자 미국이란 미지의 큰 무대로 과감히 방향을 틀었다. 포에버21의 대표인 남편은 1970년대 후반 고교 졸업 후 서울의 최대 번화가인 명동에서 한 평짜리 점포를 내고 커피 배달업에 도전했다. ‘앞으로 커피시장이 엄청나게 커질 것’이란 선견지명은 맞았지만 자본·경험 부족으로 고생만 잔뜩 했다. 하지만 이때 쌓인 노하우는 곧바로 81년 부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창업 전선에 뛰어드는 데 밑거름이 됐다.

일상의 사소한 계기를 성공의 실마리로 풀어가는 비즈니스 감각과 집중력도 남달랐다. 84년 로스앤젤레스 시내에 25평짜리 자그마한 옷가게를 내기까지 부부는 음식점·청소·주유소 일 등을 닥치는 대로 하면서 종잣돈을 모았다. 장 대표는 “주유원으로 일할 때 고급 승용차를 몰고 오는 운전자 가운데 의류업 종사자가 많은 걸 보고 이쪽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고 회고한다.

부인은 입버릇처럼 “포에버 사업 아이디어를 두 딸에게서 얻었다”고 한다. 어린 두 딸에게 때 묻은 옷을 자주 갈아입히면서 ‘세탁비도 만만찮은데 입고 버릴 만한 값싼 일회용 옷은 없을까’라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이런 기발한 발상이 오늘날 스웨덴 H&M, 스페인 자라, 일본 유니클로와 어깨를 견주는 국제적 패스트패션 브랜드를 낳게 한 것이다. 최신 유행을 2주일 안에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으로 제품화해 싼값에 유통시키는 패스트패션은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기질에도 잘 맞는 분야다.

한국에선 중소기업에서 출발해 매출 1조원 이상 대기업으로 도약한 사례가 지난 20여 년간 팬택·휴맥스 등 손에 꼽을 정도다. 계층 이동 사다리도 사회 양극화, 빈곤 대물림 등으로 약화될 대로 약화됐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장씨 부부처럼 우리 청년들이 ‘코리안 드림’을 꿈꿀 수 있어야, 그리고 자수성가를 할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이 퍼져야 한국 경제의 미래가 있다. 창업과 도전을 장려할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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