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세 女회장, 짧은치마 입고 공사장서…발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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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유포돼 베트남인들의 분노를 산 또 린 흐엉의 국영 건설사 회장 재직 시절 모습. 비난 여론으로 석달 만에 자리를 내놨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지난 4월 인터넷에 뜬 한 장의 사진이 베트남 사회를 분노로 들끓게 했다. 분홍색 미니스커트와 하이힐 차림의 20대 여성이 안전모를 쓰고 부하 직원들과 건설현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또 린 흐엉(24). 언론대학을 갓 졸업한 뒤 공산당 정치국원인 아버지를 등에 업고 베트남 국영 건설사 비나코넥스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직후였다.

 사진은 삽시간에 퍼졌고 베트남에 만연한 족벌 권력에 대해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외다리를 축구 골키퍼로 세우는 격”이란 조롱도 흘러나왔다. 흐엉은 결국 3개월 만인 6월 자리에서 물러났다. 험악한 여론에 따라 응우옌 떤 중 총리의 딸 프엉(32)도 민간은행 회장직을 내놔야 했다. 프엉은 현재도 2개 금융기관의 회장을 맡고 있다. 사태가 가라앉지 않자 쯔엉 떤 상 베트남 국가주석이 “국유기업의 실패와 비효율성, 부패”를 거론하며 “당원·관료들의 생활상이 국가 문제의 원인”이라고 비난하는 기고문을 싣기도 했다.

 중국의 태자당처럼 베트남에도 정·재계에 광범위한 ‘2세 권력’이 존재한다. 딸뿐 아니라 응우옌 총리의 아들은 건설부 부장관을 맡고 있고 지난해 당 서기장에서 물러난 농 둑 마인의 아들은 당 중앙위원이다. 최대 국유기업 중 하나인 비나신 그룹의 팜 딴 빈 회장은 자신의 형제와 아들 등을 그룹 고위직에 앉혀놨다고 현지 매체가 폭로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2006년 미 외교전문은 “총리 딸의 고속 승진과 총리 자녀들에게 주어진 많은 기회를 보면 베트남의 정치 엘리트들이 자식들에게 교육·정치·경제 분야에서 좋은 자리를 보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썼다.

 뉴욕타임스는 베트남의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서 당 고위층의 부와 특권에 대한 서민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베트남은 지난 10년간 고도 성장을 누려 왔으나 최근 수출 감소와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성장률이 4%대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당 고위층은 국가 경제의 중추를 담당하는 국유기업의 고위직을 자신들의 측근·친인척으로 채워왔다. 그런 정실인사는 경영 실패, 비리로 이어져 비나신과 비나라인 등 핵심 국유기업들이 막대한 부채로 파산 직전에 이르는 등 베트남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부의 엄격한 미디어 통제로 그간 이런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으나 최근 블로그나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공론화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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