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릴 ‘거래 여지’, 독도는 밀리면 끝…日, 한국에 날선 대응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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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10일 오후 경북 울릉군 독도에 도착해 전망대에서 해안을 둘러보고 있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정부 수립 이후 처음이다. [사진 청와대] 메드베데프 전 러시아 대통령이 2010년 11월 1일 쿠릴 열도의 쿠나시르 섬을 방문해 사진을 찍고 있다. 옛 소련을 포함해 러시아 최고 지도자의 첫 쿠릴 방문이다. [사진 크렘린 홈페이지]

7월 27일(현지시간) 러시아 흑해 연안의 소치시.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일본 외상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예방하면서 3개월짜리 강아지 유메를 선물했다. 푸틴은 다음날 “시베리아 여우를 선물하겠다”고 화답했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신속한 변신에 주목했다. 7월 3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가 쿠릴 열도를 방문한 데 대해 일본이 “양국 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라고 흥분한 지 24일밖에 안 됐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2010년 11월 1일 당시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쿠릴 열도를 전격 방문한 데 따른 앙금도 다 해소되지 않았었다. 그래서 일본이 쿠릴 문제 해결을 위해 푸틴에게 ‘애완견 외교’를 한다는 해석이 지배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직후 ‘사법재판소 제소’란 카드를 흔드는 것과 다르다. 일본은 비슷한 역사적 뿌리를 갖는 독도ㆍ쿠릴 분쟁이지만 ‘같은 문제 다른 접근’이란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2010년 11월 1일 태풍이 예고된 오호츠크해의 쿠나시르섬으로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대통령의 전용기가 착륙했다. 러시아 언론들은 ‘옛 소련 역사까지 통틀어 러시아 최고 지도자의 쿠릴 열도 첫 전격 방문’이란 의미를 부여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10일 독도 방문과 비슷한 반응이었다.

애완견을 좋아하는 푸틴을 겨낭한 일본의 선물. 3개월짜리 강아지 유메.

메드베데프는 생선 1만4000원어치를 사고 계란 가격도 묻고 생선공장을 둘러본 뒤 떠났다. 일본은 발칵 뒤집어졌다. 그러나 이는 자초한 것이었다. 일본은 독도에 도발하듯 러시아도 끊임없이 자극했다.

메드베데프의 쿠릴 방문 1년 전 상황은 악화 일로였다. 2009년 7월 중순, 일본 중의원은 ‘쿠릴 열도는 유사 이래 일본 영토’라는 내용의 법을 통과시켰다. 러시아 정치권은 격분했다. 그러나 8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가 이끄는 민주당이 승리하면서 분위기가 변했다. 하토야마는 총리 선출 직후 첫 통화 상대로 메드베데프를 택할 만큼 러ㆍ일 관계에 신경을 썼다. 그는 “반년 내에 쿠릴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진전시키겠다”고 말했지만 상황은 꼬여갔다. 한 달 뒤인 9월, 미국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 그는 메드베데프에게 쿠릴과 관련해 “비정상적인 생각을 벗어나라”는 말까지 했다. 2009년 11월 일본 외무성은 쿠릴 열도 점령을 인정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문서가 실수로 잘못 인쇄된 것이라며 역사를 부인했다. 또 12월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외상은 “북방 도서 해결 없이 러시아와 협력은 없다”고 했다. 2010년 2월 일본은 러시아의 남쿠릴 농업협력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자 5월 러시아 외교부는 “일본의 영토 요구는 협박”이라고 거칠게 나왔다. 그리고 9월 29일 대통령의 쿠릴 방문이라는 강수가 발표됐다.

한국의 경우 지난해 8월 일본 자민당 소속 의원들은 독도 방문을 시도했고 올 초엔 겐바 외상이 일본 국회에서 독도 문제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국에) 전하겠다”고 했다. 독도ㆍ동해 표기를 문제 삼아 여수 엑스포의 ‘일본의 날’에 관료 파견도 취소했다.

사실 두 문제의 뿌리는 일본의 ‘2차 세계대전 패전의 결과 부인’에 있다. 러시아는 “쿠릴 열도는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소련이 전리품으로 받은 것”이란 입장이다. 미ㆍ중ㆍ영ㆍ소 등 연합국은 1943년 12월 1일 카이로 선언으로 패전국 일본의 영토 골격을 밝히고 45년 2월 11일 얄타협정에서 소련의 쿠릴 열도를 확보를 명기하며 45년 7월 26일 포츠담 선언으로 재확인한다. 45년 9월 2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면서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임으로써 쿠릴은 옛 소련 영토가 됐고 러시아는 이를 승계했다.

독도는 좀 복잡하다. 패전국 일본의 영토를 정하는 51년 9월의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독도의 귀속 여부를 분명히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경대 법학과 김채형 교수는 논문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상의 독도 영유권’에서 “조약 취지는 분명히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조약 준비 과정에 나온 6개 미국 초안 중 초기 4개가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명기하고 영국의 평화조약 초안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은 ‘명문화가 안 됐다’는 이유로 분쟁을 야기시킨다. 공노명 전 외교부 장관은 “모두 일본이 2차 세계대전을 반성하지 않는 것이 근본 이유”라고 말했다.

일본은 또 쿠릴ㆍ독도 모두 ‘역사적으로 일본 영토’라고 왜곡한다. 그러나 러시아의 리아노보스치통신에 따르면 1745년 쿠릴 열도는 이르쿠츠크의 주민 바실리야 즈베즈도체토브의 영지로 표기됐다. 제정 러시아는 쿠릴 열도를 남진해 19세기엔 홋카이도 북부까지 장악했다. 그러나 북상한 일본은 서부전선의 크림 전쟁에 시달리는 러시아와 1855년 조약을 맺어 우루프와 이투루프 섬을 국경으로 삼는다. 알렉산데르 2세 때인 1875년 러시아는 다시 18개 섬을 일본에 양도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일본은 지금 홋카이도에 가까운 이투루프·쿠나시르·시코탄·하보마이 네 개 섬은 역사적으로 쿠릴 열도가 아니다’라고 논리를 바꿨다. 그러나 러시아는 쿠릴 열도 전체는 역사와 관계없이 2차 세계대전 승전국으로 얻은 것이라는 입장이다. 일본은 신라 이래 한국의 땅이었던 독도도 ‘역사적으로 일본 섬’이라고 왜곡한다.

이처럼 양상이 비슷하지만 일본은 한국과 러시아 정상의 섬 방문에 다른 태도를 보인다. ‘해결 전망’ 때문이다. 러시아는 일본의 시베리아 투자를 조건으로 일본에 하보마이ㆍ시코탄 두 개 섬을 반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푸틴 대통령은 2001년 3월 당시 일본 모리 총리와 이런 대화를 했다.

-모리 “56년 선언으로 돌아갈 수 있나.” (※니키타 흐루쇼프 옛 소련 서기장은 56년 일본과 평화조약이 체결되면 두 개 섬을 ‘선물’로 준다는 구상을 밝혔다.)
-푸틴 “그렇다”.
-모리 “그런데 우린 4개를 다 원한다.”

지난 6월 G20 회담에서 푸틴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는 다시 이 가능성을 거론했다. 협력 방식으론 시베리아 투자나 자유무역지대 창설 등이 거론된다.

러시아 극동문제연구소의 미하일 티타렌코 소장은 “얘기할 수 있는 것은 평화조약과 시베리아 투자에 대한 선물로 섬 두 개를 준다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한 러시아 언론은 이를 ‘돈과 섬의 교환’이라고 꼬집는다. 한국의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은 러시아를 협박 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리고 섬 두 개를 가져올 수 있다는 기대도 한다. 이 때문에 독도와 다르게 접근한다”고 말했다.

안성규 CIS 순회 특파원 ask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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