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해도 대출금 못 갚는 ‘깡통상가’ 속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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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상가를 경매로 넘겨봐야 대출금도 건지지 못하는 ‘깡통 상가’가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전체 상가 담보대출의 25%가 이런 대출인 것으로 나타났다. 빚을 낸 상가 넷 중 하나꼴이다. 액수로는 12조7000억원에 달한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로 자영업자는 크게 늘었는데, 부동산 가격 하락과 경기침체로 대출도 못 갚는 상가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30일 이런 내용을 담은 ‘국내은행 상업용 부동산 담보대출 현황 및 잠재위험 점검’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를 낸 곳은 조기경보팀이다. 주택 담보대출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상가·사무실 담보대출도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경고다.

 보고서에 따르면 5월 말 우리·국민·신한·하나·농협·기업은행 등 6개 은행의 상업용 부동산 담보대출은 196조8000억원에 이른다. 주택 담보대출 223조8000억원에 근접한 수준이다. 이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하면서 새로 가게를 여는 자영업자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출 증가세가 가파르다. 상업용 부동산 담보대출은 2009년 한 해 동안 1.2%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2010년에는 8%, 지난해 11.9%로 증가 폭이 확 커졌다. 올해는 5월까지 4.9% 증가했다. 반면 1~5월 주택 담보대출의 증가율은 0.9%다.

양이 급증하면서 질은 나빠졌다. 특히 자영업자가 주로 이용하는 상가 담보대출이 문제다. 5월 말 현재 상가 담보대출액의 25%는 경매 낙찰가(1~6월 서울 평균 낙찰가율 63%)에도 못 미치는 대출이다. 집값이 크게 내렸지만 주택담보대출은 이 비율이 0.9%에 불과하다. 연체율도 상가·사무실 쪽이 훨씬 높다. 5월 말 현재 상업용 대출의 연체율은 1.44%이고, 주택 담보대출의 연체율은 0.93%다. 금융사가 돈을 떼일 가능성이 큰 ‘요주의 여신 비율’은 2.02%로 주택 담보대출의 세 배에 이른다.

 이런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이미 신용도가 바닥이 된 상가 주인도 늘고 있다. 장사가 되지 않아 임시 방편으로 돈을 융통하다 보니 생기는 일이다. 전체 상업용 대출자 10명 중 4명(38.4%)은 신용등급이 5등급 이하였다.

 한은은 “상업용 대출에는 담보인정비율(LTV) 규제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담보에 비해 대출액이 지나치게 높게 설정됐다”며 “상가·사무실 거래 시장도 위축되고 있어 앞으로 이런 취약 대출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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