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 황금알 누가 먹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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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전야-. 홈쇼핑 시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LG홈쇼핑과 CJ39쇼핑이 양분하고 있던 시장에 현대백화점 연합군이 몰려오고 있다. 기존업체는 홈쇼핑과 백화점은 다르다며 애써 웃음짓고 있지만 현대측은 판도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홈쇼핑은 지난해 99년 대비 1백% 가까이 성장할 정도로 유망한 시장이다. 대기업들이 군침을 삼킬 만하다. 때문에 신규 사업자 선정시 뒷말도 무성했다. 롯데나 신세계의 인수합병설도 끊이지 않고 있다. 5角체제가 된 홈쇼핑 시장을 집중분석한다. <편집자>

2조5천억 ‘안방 쇼핑’ 잡아라

2조5천억 시장을 잡아라!” 신규 사업자로 선정된 TV홈쇼핑 업체들이 내년, 방송시작과 함께 시장쟁탈전에 들어간다. 신규 사업자가 선정되면서 TV홈쇼핑 업체는 일단 5각(角)체제로 재편됐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치열한 3파전과 2개의 ‘번외(番外) 선수’로 구분된다. 중소기업 상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우리홈쇼핑과 농수산물을 상품 중 90% 이상 취급하는 한국농수산방송은 본 경쟁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할 듯하다. 타깃마켓이나 취급 품목에서 3개업체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번외 선수’인 셈이다. 대신 틈새시장을 형성하면서 명맥을 유지하리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기존 업체인 LG홈쇼핑, CJ39홈쇼핑과 현대백화점이 주도하는 연합홈쇼핑은 치열한 3파전의 벌일 것으로 보인다. 종합 홈쇼핑 업체를 지향하는 연합 홈쇼핑은 타깃마켓이나 판매상품 등에서 기존 업체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또 현대백화점을 비롯, 지방의 유력 백화점들이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어 규모나 네트워크 면에서도 기존 업체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최대주주인 현대백화점이 경영권을 가질 것으로 보여 다른 그룹과의 자존심 싸움이라는 측면도 있다.

시장 규모나 여건으로 볼 때 3개의 종합 홈쇼핑채널이 공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관측하고 있다. 향후 5년간 매년 30% 이상 성장하는 시장을 골고루 나누면 문제가 없겠지만 이미 선발업체로서 입지를 다진 두 업체가 신참에게 호락호락 시장을 내줄 리 없다. 또 3개업체가 동시에 경쟁할 경우 시장이 더욱 경쟁적으로 되어 지금보다 수익구조가 악화될 것이다. 2개 업체가 시장을 나눠 가질때처럼 한가하게 장사를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때문에 더 많은 매출을 올려야만 지금과 비슷한 정도의 이익을 낼 수 있다. LG경제연구원의 조성호 연구원도 “1, 2위 업체만 투자대비 수익률을 만족시키는 수준의 이익을 낼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대, “백화점 했는데 홈쇼핑 못하랴”

신규 진입하는 현대백화점은 과연 TV홈쇼핑 시장에 안착할 것인가? 가능성은 물론 반반이다.

현대백화점은 롯데와 신세계의 양극체제에 있던 백화점 사업에도 뒤늦게 뛰어들어 성공을 거둔 경험이 있다. 백화점에서 롯데와 신세계의 벽이 TV홈쇼핑에서 LG와 CJ의 벽보다 결코 낮았다고 볼 수 없다. ‘현대백화점’이라는 브랜드 파워도 막강하다. 현대백화점은 백화점 중에서도 ‘고급’이라는 인식이 소비자들 사이에 퍼져 있다. 현대백화점 홈쇼핑추진본부의 류재헌 팀장은 “TV홈쇼핑에 ‘현대백화점 본점에서 파는 상품입니다’라는 자막만 집어넣어도 시청자들의 반응은 엄청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백화점 시장에서의 경험도 큰 자산이다. 유통업 중에 가장 첨단 시장인 백화점 경영의 노하우는 어디서도 통한다는 것이 현대측의 주장이다. 품질관리나 서비스 면에서는 백화점 손님들만큼 까다로운 곳이 없다. 현대측은 기존 홈쇼핑 회사의 품질관리나 서비스의 개념을 확 바꾸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유통업의 경험도 강점으로 꼽힌다. 물론 백화점용 상품과 홈쇼핑용 상품은 다르지만 벤더(vender:중간 유통업자)를 관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홈쇼핑 상품 거래선 확보도 그리 어렵지 않다는 의미다. 연간 1조7천억원(2000년 기준)의 매출을 올리는 현대백화점을 비롯 지방 유력 백화점의 바잉파워(buying power)도 엄청나다. 지난해 TV홈쇼핑 전체 시장 규모가 1조원이 채 되지 않은 것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현대백화점의 탄탄한 자금력도 기존업체에겐 위협적이다. 2000년 9월 말 기준으로 유보율이 4백%에 이르고 있을 정도로 현금 흐름이 좋다. 자기자본(1천3백78억)의 4배에 해당하는 현금이 쌓여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미국에서 저리(低利)로 조달한 자금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충분한 실탄을 무기로 공격적 경영을 펼치면 홈쇼핑 시장을 단기간에 흔들 수도 있다.

하지만 LG와 CJ는 현대백화점이 사업자로 선정되자 안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위 업체인 LG의 경우 ‘표정관리’까지 하는 모습이다.

기존업체, “현대라면 겨뤄볼 만”

우선 롯데백화점, 삼성물산, 신세계백화점 등이 참여한 컨소시엄이 탈락한 것에 대해 한숨 돌리는 분위기다. 롯데나 신세계는 할인점과 백화점 사업을 같이 하는 대형 유통업체들이고, 삼성물산의 경우 삼성그룹의 배경 때문에 기존 업체들이 상당히 부담스러워했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현대백화점의 경우 백화점 외에는 이렇다 할 만한 유통망이 없다. 홈쇼핑과 가장 비슷한 상품구성을 보이는 할인점도 없다. 기존업체에선 백화점과 홈쇼핑은 전혀 다른 사업이기 때문에 큰 시너지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CJ39쇼핑의 장영석 부장은 “백화점은 구매하는 순간 거래가 끝나지만 홈쇼핑은 5단계를 거쳐야 거래가 성립된다. 이 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거래가 무산된다”고 차이점을 설명했다.

홈쇼핑은 상품 하나를 팔기 위해 방송시청, 전화주문, 주문전달, 상품배송, 환불·반품처리 등 5단계를 거쳐야 된다. 이 중 하나라도 성공률이 50%로 떨어지면 상품판매도 바로 50%로 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기존의 백화점식 관리툴(tool)이나 마케팅 방법은 적용이 안된다는 말이다. 거래기업도 중소기업 위주다. 유명 브랜드를 취급하는 백화점과는 다르다. 상품구성도 다르다. 백화점은 의류·잡화 등의 매출비중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지만 홈쇼핑은 생활용품, 전자제품 등이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그룹의 지원이 있는 것도 아니다. ‘현대’백화점이긴 하지만 현대그룹과는 계열분리가 된 상태라 지원을 기대하기 힘들다.

중계유선방송사업자(SO)들도 문제다. SO 중 60%는 2개 이하의 홈쇼핑 채널을 송출할 것이라고 방송위원회의 조사에 대답했다. 이렇게 되면 매출액으로 보나 시청률로 보나 우위에 있는 기존 채널을 송출할 가능성이 많다. SO에 대한 마케팅 비용 증가가 불 보듯 뻔하다. 방송시설 투자비용, 콜센터 및 텔레마케터에 드는 비용 등 초기 투자 비용도 만만치 않다. 장부장은 “여러 업체 참여로 수익성이 더 악화되면서 매출액 기준 손익분기점도 더 올라갈 것”이라고 얘기했다. 실제로 대신경제연구소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신규 업체의 정상영업은 2002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손익분기점(BEP)은 매출액 2천억원을 넘어서는 2003년에야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CJ39쇼핑이 사업개시 3년도인 97년에 매출 8백39억원과 영업이익 20억원으로 BEP를 통과한 것과 비교할 때 상당히 높은 수치다.

롯데, 신세계도 호시탐탐

이처럼 연합홈쇼핑의 성패(成敗)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갖가지 시나리오가 나오는 것으로 봐서 일단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 3파전의 구도는 어떻게 될까? 전문가들은 일단 선두기업인 LG의 경우 시장점유율은 다소 줄어들겠지만 선두업체로서 시장지배력은 여전히 유지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2위 기업인 CJ가 42%에 이르는 상당한 시장점유율을 가지고 있어 현대가 들어오더라도 CJ와 치열한 2위 다툼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CJ와 현대의 시장점유율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따라 시장이 급변할 수 있다. 한동철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2003년이 되면 LG의 시장점유율은 45%선으로 떨어질 것이고, 이때 CJ가 얼마나 시장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만약 CJ가 25% 이하로 떨어지고 현대가 15%∼20%로 올라선다면 홈쇼핑 진출에 미련을 가지고 있는 롯데나 신세계 등이 인수전에 뛰어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3파전의 구도가 변할 수도 있다. 반대로 CJ가 30% 이상의 시장을 가지면서 지금처럼 확고한 2위를 지킨다면 비교적 평온한 가운데 3파전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일단락된 것으로 보이는 TV홈쇼핑 사업자 선정은 앞으로 시장구도에 따라 급류를 탈 수도 있다<24p 박스 참조>.

연 30% 이상 성장, 2003년 3대 유통업

유통 공룡들이 TV홈쇼핑 시장을 호시탐탐 노리는 것은 바로 성장성 때문이다. 지난해 LG와 CJ의 매출액 성장률은 각각 91%와 97%씩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성장세를 감안하면 올해 TV홈쇼핑 시장은 1조5천억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민간연구소에서 내놓은 국내 홈쇼핑 시장 전망 역시 핑크빛이다. LG경제연구원이 2005년 시장 규모를 2조3천억원으로, 삼성경제연구원은 6조9천억원으로 내다봤다. 최소 연간 30%에서 최대 1백% 이상 성장한다고 보는 셈이다.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2005년에는 재래시장을 제외하고 백화점, 할인점에 이어 3대 유통업으로 올라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마지막 성장산업이라고 불리는 홈쇼핑에 대기업들이 눈을 뗄 수가 없다.

특히 현대백화점의 경우 TV홈쇼핑은 기업의 미래가치를 높이는 유일한 수단이다. 백화점 업계의 저성장은 이미 예견된 상태고, 신세계, 롯데, 외국계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할인점 시장에 진출하기도 힘들다. 인터넷 쇼핑몰 사업도 전망이 불투명한 상태다. 홈쇼핑은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해 주는 묘안인 셈이다. 원가대비 수익이 큰 것도 장점이다. 할인점 하나 짓는 정도인 5백억원의 자본금으로 2∼3년 내에 수천억원의 매출과 수백억원의 이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들의 로열티(loyalty)가 높은 것도 안정적 수익을 보장해 주고 있다. 반복구매 비율이 60%까지 증가하고 있고, 회원 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연간 구매고객 수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또 장기적으로는 인터넷 쇼핑몰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TV 보고 전화로 주문하는 단계만 지나면 인터넷 쇼핑몰과 같은 과정으로 업무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아직 수익모델이 검증되지 않은 인터넷 쇼핑몰로 포커스를 옮기기 전에 예행연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셈이다. 이처럼 TV홈쇼핑은 여러 가지로 매력적인 사업이다.

보통 알 낳는 거위일 수도

하지만 TV홈쇼핑을 무턱대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쯤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하기에 따라서는 황금알을 낳을 수도 있지만, 거위알을 낳을 수도 있다.

우선 SO마케팅 비용이 만만치 않다. 현재 77개의 SO가 송출할 수 있는 채널은 대략 50여 개. 홈쇼핑 채널 5개를 모두 틀어줄 경우 전체 채널의 10%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 이 경우 시청자들의 반발은 당연한 일. 때문에 홈쇼핑 채널 수를 2∼3개로 제한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5개의 업체는 치열한 마케팅을 벌일 수밖에 없다. 실제 지난해 5월 방송위로부터 추가 채널사업자로 승인받은 업체들이 각 SO들에게 송출료로 8백만원∼1천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박찬호 야구중계 등 막강한 콘텐츠를 자랑하고 있는 MBC스포츠 채널도 이와 똑같은 조건으로도 전체 SO의 70% 수준인 60여 개의 SO들에게만 채널을 송출하고 있다.

영업이익률도 4.4% 수준으로 대형 백화점의 4.9%에 비해 떨어진다. 또 업체 간 경쟁이 심화될 경우 덤핑, 광고, 판촉 심화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반품률도 10%를 상회하고 있다. LG홈쇼핑의 최영재 사장은 “현재 한국 경제 규모로 볼 때 1년에 겨우 2백억원 정도 버는 회사가 어떻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냐”고 반문했다. 적자회사는 아니지만 황금알을 낳는 것도 아니란 말이다.

대기업 위주 유통구조 ‘지각변동’

황금알이든 거위알이든 홈쇼핑 사업으로 유통구조에는 획기적인 변화가 오고 있다. 일단 중소기업의 판로(販路)가 열린다. 백화점 등에는 한정된 매장, 브랜드 파워 부족으로 백화점에는 중소기업 제품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설령 들어가더라도 판매에는 큰 도움이 되는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홈쇼핑은 다르다. 중소기업제품을 주로 취급하고 품목도 의류에 한정되지 않는다. 한 가구회사 사장은 “TV홈쇼핑에서 1시간 만에 판 물량이 대형 백화점 전 지점에서 1달 동안 판 물건보다 많다”고 털어놓았다.

이처럼 TV홈쇼핑은 수많은 중소기업에게 전국시장으로 진출하는 기회도 준다. 사실 대기업은 자체 유통망을 가지고 있어 홈쇼핑이나 할인점에 의존하지 않고도 사업을 하는 데 문제가 없다. 대기업이 경영하는 전자, 자동차, 음료수, 주유소 등을 보면 알수 있다. 하지만 자체 판매망이 없는 중소기업은 유통망이 기업의 생존여부를 판가름한다. LG홈쇼핑의 경우 하루 60∼70개의 아이템을 소개하고 있다. 한 달이면 2천여 개의 상품을 소개하는 셈이다. CJ를 비롯 신규 사업자들까지 가세하면 최소 한 달에 7∼8천 개의 상품이 소개될 수 있다.

웬만한 중소기업은 한 번씩 판매기회를 가질 수 있다. 우리나라 최대의 매장을 자랑하고 있는 롯데백화점 명동본점도 1천여 개 매장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유통후진분야로 지목돼 온 농수축산물 분야도 판매망 확보와 유통합리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과당경쟁과 제조업체에 원가전가로 품질이 입증되지 않은 불량품을 유통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5개 업체로 경쟁체제가 확립된 만큼 소비자들의 선택에 의해 ‘불량품’은 저절로 걸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불량품’에는 TV홈쇼핑 사업자가 포함될 수도 있다.

이석호 기자(lukoo@joongang.co.k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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