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진돗개, 세계 명품으로 만들거예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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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 지난해 삼성에버랜드를 찾아 진돗개와 놀고 있는 메그 카펜터.

개를 좋아하는 한 영국 소녀가 농장 일을 도와 번 돈으로 난생 처음 자신의 개를 샀다. 독일산 셰퍼드였다. 셰퍼드가 한 살이 되었을 때 종견으로 쓰고 싶다는 제의가 들어왔다. 새끼가 태어나면 한 마리 받는다는 조건으로 거래가 성사됐다.

새끼 강아지를 받아 든 소녀는 흐뭇하고 즐거웠다. 아예 품종 사육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열여섯 살 때였다. 자신의 견사(犬舍)를 만들고 여기에 '오버힐'이란 이름을 붙였다. 새끼 강아지에게 '오버힐스 제자벨' 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통상 혈통서가 있는 순종 개엔 견사 이름이 성(姓)처럼 따라붙는다. 그로부터 5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자벨의 혈통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주름이 깊이 파인 그 소녀의 손에 의해-.

"행복하냐고요? 물론이죠. 전 진실로 이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믿어요. "

영국 브리스톨에서 품종 사육사로 일하는 60대 중반의 메그 카펜터. 그는 현재 삼성에버랜드.진도군청과 함께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영국 애견협회인 케널클럽에 진돗개를 품종 등록하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케널클럽의 품종 등록은 진돗개가 세계적 명견으로 인정받기 위해 꼭 필요한 절차다. 현재 이 클럽에 등록돼 있는 견종은 196종에 불과하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진돗개를 영국에서 번식시켜 4, 5대에 걸쳐 변치 않는 순종이란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그는 2002년 9월 우리나라 밖에선 처음으로 순종 진돗개 한마리를 분양받아 키우기 시작했다. '장군이(General)'였다. 이듬해 1월 다섯 마리를 더 받았다. 몇차례 교배를 거쳐 지금은 14마리로 불어났다.

그동안 영국.미국의 애견잡지와 수시로 인터뷰를 하는 등 홍보에 주력해온 그는 올해 안으로 진돗개가 품종 등록될 거라고 믿는다. 그 자신이 케널클럽 외래품종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어떻게 이 일에 뛰어들게 됐나요.

"2년 전인가, 삼성 쪽에서 사람이 왔어요. 진돗개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고요. 저의 오랜 경력, 또 영국에 외래 견종을 수입해 길러본 경험 때문이 아닌가 짐작해요. "

-장군이를 처음 만났을 때 느낌이 어땠나요.

"품성이나 품종 모두 대단히 매력적이었어요. 충직하면서도 영리하고요. (품종 등록에) 성공할 거라고 직감했어요. 일본 개 아키타가 생각나더군요"

그는 아키타를 케널클럽에 품종 등록한 주역이다. 아키타로 '세계의 개 엑스포'라고 불리는 크러프츠 쇼에서 최고상을 받기도 했다. 진돗개를 아키타에 비유한 건 그만큼 반했다는 얘기였다. 그의 직감은 맞았다. 진돗개가 3년째 크러프츠 쇼에 전시되고 있는데 분양받겠다고 신청한 영국인이 벌써 100명 가까이 된다고 한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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