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울타리' 허무는 벤처들

중앙일보

입력

#1:2000년 7월 19일 오전 테헤란밸리 한국통신프리텔 17층 대회의실.

벤처기업 대표: "대기업의 벤처업종 침해가 심각합니다. 온라인 업종에도 오프라인처럼 벤처 고유영역이 보장돼야 합니다" "관급공사에서 벤처기업이 배제되고 금융권의 지나친 보증요구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대책을 마련해 주세요" .

국회의원: "여야가 함께 온라인 시대에 맞는 벤처 육성제도를 마련하겠습니다. "

#2:2001년 2월 26일 오후 테헤란밸리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역삼 SW지원센터.

벤처기업 대표: "벤처기업에 대한 정부의 자금지원이 오히려 벤처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코스닥 시장에서 강력한 퇴출정책이 필요합니다. 잘못된 회사는 반드시 퇴출된다는 법칙이 적용돼야 해요" .

국회의원: "정부는 벤처캐피털 활성화를 통해 벤처기업을 간접지원하는 방식을 택해야 합니다. "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위원장 이상희)는 지난 26일 벤처기업 대표와 간담회를 가졌다.

지난해 7월 정보기술(IT)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테헤란밸리에서 처음으로 열린 상임위에 이은 두번째 행사다.

이번 간담회에서 벤처기업 대표들은 7개월새 부쩍 성숙해진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벤처기업 사장들이 '○○좀 해주세요' '××를 막아주세요' 등 읍소형 자세를 보였다면, 이번에는 자기반성과 함께 '무조건 지원만이 능사가 아니다' 는 입장을 보였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코스닥 폭락과 닷컴기업에 대한 회의론으로 '천당' 과 '지옥' 을 왔다갔다 한 벤처기업들이 유아기에서 벗어나 사춘기를 겪은 청년기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요즘 사업하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벤처기업이 정부 보호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이젠 우리도 밀림에서 살아가는 법을 익혀야지요. "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한 벤처기업 대표는 영화 '캐스트 어웨이' 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무인도에 혼자 남은 주인공(톰 행크스)이 생존법을 익히며 살아남는 내용을 인용하기도 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홀로서기를 시도하고 있는 이들에게서 우리 IT산업의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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