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새롭게 해석된 백조왕자 '후르츠 바스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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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초반에는 토오루가 소마 가(家)
를 지나가다 볕에 말리는 12지 마스코트를 발견하는 장면이 나온다. 달걀 만한 크기의 똑같은 모형에 몇 가닥의 선만으로 12지의 동물을 표현한 것인데. 토끼나 양, 원숭이처럼 본래 인간에게 친근감이 있는 동물뿐만 아니라 전부 캐릭터 상품처럼 귀여워서 감탄했다. 사랑스럽다고는 느끼기 힘든 뱀도 용도 호랑이도 무섭긴 커녕 귀엽게 그려놨다. 쥐도 돼지도 꺼림칙하지 않다.

이것이 '후르츠 바스켓'. 이 작품의 특성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을 '앙증맞고 귀엽게'라는 특성 말이다.

또, 남자 할렘 만화 군. 이 만화를 본 첫 인상은 그랬다. 여주인공 토오루와 12지의 왕자들. 알고 보니 왕자만은 아니고 여자도 2명 섞여 있다. 그러나 그녀들은 친근한 친구나 귀여운 여동생의 이미지이지 성숙한 연적의 이미지는 결코 아니다.

그녀에게 무슨 연적이 있을까? 친구들-깡패소녀 아리사, 전파 소녀 사키도 질투는커녕 유키와 잘 지내라고 격려해 주는 이 마당에.

오히려 그녀의 연적은 당주 아키토가 될 것이다.

이 10명이나 되는 왕자 캐릭터들은 캔디나 안젤리크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지. 타입 별로, 연령대 별로 나뉘어져 있다. 마치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도 만들면 딱딱 떨어질 전형적이고 도식적인 구성.

그러나 이 만화는 평범한 연애물에 그치지 않고 변신이라는 코드를 첨가하여 새롭게 태어났다. '십이지 혼령이 씌워져 이성에게 닿으면 동물로 변한다.'라는 것이 소마 가문의 비밀.

토오루는 이런 중대한 비밀을 알아버렸다. 보통 때라면 가문의 비밀 유지를 위해서 그녀의 기억을 지워 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 뚜렷한 설명 없이 그냥 내버려두고 오히려 그녀를 같이 살게 한다. 이유? 글쎄다. 예전에 카나의 비극을 겪었기 때문일까? 이런 중대한 비밀을 알고 있는데도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건 별로 설득력이 없지만, 그래야 전개가 쉬우니까가 정답일 것 같은데?

처음 토오루가 쥐와 고양이와 개로 변한 소마가 사람들을 안고 허둥 허둥대며 '동물이에요'하고 외치는 부분은 정말 우습다. 그후에도 시와 때를 가리지 않는 변신 장면은 실컷 만화만의 특성인 황당한 재미를 만끽하게 해 준다. 필자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역시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을 실감했다. 일본도 우리처럼 12지에 따라 띠를 갖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유래까지 똑같다니, 어쩌면!

독자 여러분도 잘 알 것이다. 동물들이 잔치에 오는 순서대로 띠의 차례가 정해진 유래를. 그러나 일본과 우리가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이 재밌다. 우리라면 약삭빠른 쥐의 속임수를 경멸하는데 비해 여기서는 '재기'라 보고 오히려 부러워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특별취급을 받는 쥐띠의 아이 '유키'와 고양이인 '콘콘'은 항상 사이가 나쁘다.

일견 흔한 '꽃돌이 만화'로만 보일지 몰라도 , 이 작품은 여러 가지 장점을 갖고 있다. 12지를 그저 변신의 소재로만 쓴 것이 아니라 거기에 얽힌 심리까지 탁월하게 묘사해 냈다. 특히 각각 갖고 있는 콤플렉스와 연관시킨 부분은 신선하고 독특하다.

쥐에 속아서 띠가 될 수 없었던 고양이가 불쌍해서 '개띠는 관두고 고양이 띠가 될래.'라며 울던 어린 토오루. 정작 띠에 끼지 못해 가문에서조차 따돌림받지만 콘콘은 단순한 성격, 밝은 활기로 모두와 쉽게 어울린다. 그리고 유키를 이기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수행을 쌓는다.

그런 콘콘의 가식 없음을 부러워하는 유키의 콤플렉스는 겉으로만 남들에게 상냥한 척 할 뿐, 자신은 진짜 사람들과 교류하는 법을 모르겠다고 호소한다.

쥐를 태운지도 모르고 잔치에 갔다가 선두를 빼앗긴 소의 아이 '하루'. 어릴 적부터 '멍청한 소', '이용만 당하는 둔한 소'라는 놀림만 받아 인격이 분열된다. 평상시의 온화한 '화이트 하루'와 폭주하는 '블랙 하루'로.

"너 자신의 가치를 멋대로 정하고 깎아 내리지마!" 후에 원인제공자 유키가 하루를 달래고 그제야 하루는 깨닫는다. 나는 정말 멍청이가 아니야.

반면 용의 콤플렉스는 이들과는 전혀 다르니 배를 잡고 웃을 준비를 하시라. 바로, 신장 8센티의 해룡으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점잖고 냉정한 의사, 어른 남자의 이미지가 난데없이 무너지는 황당하고 특이한 변신이다.

필자는 여기서 해석을 다시 달리 해보았다.

다시 보니 이 작품은 그 유명한 안데르센의 동화 '백조 왕자'의 패러디였다. 낮이면 백조로 변하지만, 밤이면 사람으로 돌아오는 공주 엘리자베스의 오빠들. 동화 속의 공주처럼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은 오로지 토오루 뿐이다.

이 공주의 삶은 무척 고단했다. 타고난 아름다움만으로 왕자와 결혼했지만 행복할 수 없었다. 오빠들의 저주를 풀기 위해 거짓 벙어리 시늉을 하며 한 밤중에 묘지에 가서 가시덤불을 뜯어다가 옷을 짜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마녀로 몰려 화형대에까지 오르는 기구한 운명의 공주. 물론 이 동화의 결말은 해피엔딩이지만 공주는 비참하고 힘겹게 살았다. 부부간에도 대화 한 마디 못 나누고 가시에 찔려 빨갛게 부은 피맺힌 손가락이 상징하듯이 말이다.

이 작품에서는 아직 자세히 나오지는 않았지만 소마 가의 저주를 풀 비책이 있을 것이며 그것이 그녀의 역할이 될 것이다. 토오루의 가시 옷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카나에게 퍼부은 아키토의 '저주에서 구하지도 못하는 너 같은 여자!!"라는 폭언을 생각해 보라.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아직은 백조 공주의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는 다 던져버리고 시종 밝고 경쾌하게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단지 토오루는 여러 왕자들과 즐겁게 생활하며 행복을 만끽할 뿐이다. 그러나 "손에 넣고 싶은 것 그걸 위해서라면 어떤 거짓도 이용도, 아키토가 제일 중요하니까. 그날의 꿈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겠어." 시구레가 아키토를 달래면서 한 말을 보면 뭔가 이 가볍기만 한 만화에도 시련과 고난이 올 것임을 암시한다.

답답한 면은 싫지만 역시 남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토오루. 그러나 역시 끝까지 그녀의 설정에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다.

우리처럼 유교의 가치관이 깊어 가족을 중시하고 명예와 체면을 신경 쓰는 일본이란 나라에서, 그것도 경제 대국 일본이란 설정에서 고아가 된 토오루가 오갈 데 없어 남의 뒷산에 텐트를 치며 살다가 발견되다니 설득력과 타당성 부족이다. 게다가 착하고 낙관적인 주인공이라는 성격이 처음에는 너무 뻔했다. 게다가 착하기보다 맹하고 멍한 것에 가깝다.

그러나 언제나 놀랍도록 특이한 발상을 하는 그녀의 기발함을 보라! '사람의 좋은 점은 매실 장아찌처럼 주먹밥의 등에 붙어 있는 거야. 그래서 남의 눈에 잘 안 뜨일 뿐이야. 누구라도 장점은 있어.'

콘콘은 이런 토오루의 얘기에 펄쩍 뛴다. "어디서 그런 발상이! 왜 하필이면 매실 장아찌야? 좀더 좋은 걸로 예를 들어." 그러나 특이하고 멋진 표현 아닌가? 그래서 버림받을 뻔했던 토오루는 충분한 주인공의 자격을 인정받는다.

토오루의 이런 기발하고 엉뚱한 성격으로 보면 무사히 이 고난을 잘 넘길 것 같다는 기대를 하게 된다. 점점 재미를 더해 가는 후루츠 바스켓. 대체 소마가의 비밀을 어떤 식으로 풀어나갈지 지켜보자.

· 작가 : 타카야 나츠키

· 장르 : 순정

· 발행 : 서울문화사

Joins 박준휘 사이버리포터 <gilie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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