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 환자 셋, 보호사 수면제 먹인뒤…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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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이 탈주했던 경남 양산시 정신병원. 맨위 6층이 정신병동이다. [송봉근 기자]

“오늘 저녁 작전 개시다.”

 지난달 27일 오후 2시 경남 양산시의 한 정신병원 6층 폐쇄병동 휴게실. 푸른색 환자복 차림의 남성 3명 중 A씨(41)가 명령을 내렸다. 그는 이들 가운데 유일하게 대학을 졸업해 ‘학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B씨(41)와 C씨(57)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병동 탈출작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6층짜리 병원의 꼭대기에 있는 정신병동은 이중(二重) 출입문에 창문에도 창살이 설치돼 있어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곳이다. 한마디로 요새였다.

 일찌감치 저녁을 먹은 이들은 미리 챙겨둔 수면제 2알을 가루로 만들어 커피에 탔다. 그러고는 병동 입구를 지키는 남성 보호사(40)에게 “피곤할 텐데 드시라”며 권했다.

 오후 11시쯤, 미리 계획한 대로 A씨와 B씨가 빈 입원실에서 큰소리로 다투는 시늉을 시작했다. C씨가 다급하게 보호사를 불렀다. 수면제 커피를 마신 탓에 정신이 몽롱했던 보호사가 입원실에 들어서자 세 명이 한꺼번에 덮쳤다. 이어 보호사를 간이침대에 눕히고는 투명테이프와 전화기선으로 묶었다. 압박붕대로 입도 막았다. 21명의 환자가 입원해 있는 폐쇄병동엔 보호사가 한 명뿐이었다. 1993년 개봉한 해리슨 포드 주연의 미국 영화 ‘도망자’에서 착안한 수법이었다. 영화 속엔 호송버스를 타고 가던 죄수들이 일부러 다투면서 간수를 유인한 뒤 교통사고를 일으켜 탈출하는 장면이 나온다.

 A씨 등은 입원할 때 보관해둔 사복으로 갈아입고는 보호사의 호주머니에서 꺼낸 열쇠로 이중 출입문을 열고 병원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병원 뒤편엔 미리 연락을 취해뒀던 A씨의 친구가 자동차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다. 부산 동래의 롯데백화점 앞까지 이동한 이들은 A씨 친구가 가져온 40만원을 탈출 자금으로 나눴다.

 A씨는 “나를 왜 강제로 입원시켰는지 아버지에게 따지러 간다”고 했다. 알코올중독자인 C씨는 “술이나 마셔야겠다”고 했고 B씨는 “낚시나 해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유는 오래가지 못했다. C씨는 소주를 사서 마시며 고향인 밀양으로 향했다가 병원 측의 신고를 받고 잠복 중이던 경찰에 하루 만에 붙잡혔다. B씨도 경남 장유의 한 저수지 낚시터에서 노숙을 하다 이틀 만에 검거됐다. 대장 격인 A씨는 대전·수원 등을 떠돈 뒤 지난 2일 경남 창녕의 아버지 집으로 갔다가 7일 만에 잡혔다.

 영화 같은 정신병동 탈출 모의는 석 달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3명은 비슷한 시기에 입원한 데다 고스톱, 바둑, 장기 등을 하면서 친해졌다. A씨와 B씨는 동갑내기에 인격장애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순간적으로 감정 조절을 못하고 화를 잘 낸다. A씨는 부모와 아내에게 자주 폭력을 휘둘렀고 B씨도 어머니와 누나를 괴롭혔다. C씨는 홀어머니와 살면서 술만 마시면 가족을 학대했다. 이들은 모두 가족들이 정신병원에 연락해 강제입원 조치됐다.

 한 달 전 A씨가 “더 이상 못 있겠다”며 탈출을 제의했다. 이어 각자에게 준비작업이 할당됐다. 그는 탈출에 가장 중요한 수면제 확보와 탈출 차량·탈출 자금 준비를 맡았다. 매일 아침·저녁 병원에서 나눠주는 수면제를 먹는 척하며 모았다. 또 환자 비상연락용 공중전화로 친구에게 돈 40만원과 차를 준비하라고 연락했다. C씨는 팔을 다쳤다며 압박붕대를 챙겼다. B씨는 투명테이프를 구했다. 준비가 완벽히 끝나자 지난달 27일 드디어 탈출을 결행한 것이다.

 양산경찰서는 지난 3일 김씨 등 3명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공동 체포)로 구속했다. 배광호(51) 강력 3팀장은 “종전에는 한두 명이 정신병원을 빠져나가 주변을 배회하다 잡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며 “이번처럼 치밀하게 준비한 정신병원 탈출작전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양산=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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