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반만 한 울란 호수 증발 … 초원을 잃은 유목민들은 환경 난민이 되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서울 면적의 절반 크기였던 몽골 고비 사막의 울란 호수가 모래땅으로 변했다. [사진 푸른아시아]

“바람에 1000번 흔들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초원의 나라 몽골에서 옛날부터 내려오는 속담이다. 들판을 담고, 하늘을 담고, 목초를 담은 푸른 바람. 그게 몽골의 원래 바람이었다. 요즘은 달라졌다. 몽골의 바람에는 모래가 서걱거린다.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봄날에는 마스크 착용이 필수다. 갈수록 토지가 사막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원의 나라에 살던 몽골인들이 이젠 ‘환경 난민’이 돼가고 있다. 초지를 잃은 유목민들은 울란바토르 등 대도시 외곽에 게르(유목민 천막)를 치고 난민촌을 형성하고 있다. 또 모래를 머금은 바람은 이웃 나라엔 황사라는 재앙으로 찾아간다.

 몽골에선 나무 한 그루가 소중하다. 나무가 바람을 막고, 모래를 막고, 사막화를 막기 때문이다. 지난달 22일 몽골을 찾았다. 몽골에서 나무 심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봄마다 찾아오는 ‘황사의 뿌리’도 직접 보고 싶었다. 마침 대한항공 신입사원 100여 명이 몽골을 찾았다. 9년째 계속하고 있는 ‘사막화·황사 방지 몽골 에코 투어’의 일환이었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의 칭기즈칸 공항에 내렸다. 봄날, 느닷없는 몽골의 폭설로 항공 일정이 연기되는 바람에 하루 늦게 출국했다. 울란바토르에서 동쪽으로 약 130㎞ 떨어진 바가노르로 갔다. 도로는 좁았다. 왕복 2차로였다. 중간중간 파인 곳도 많았다. 앞서 가는 트럭을 추월하려면 중앙선 침범이 불가피했다. 그만큼 몽골의 사회적 인프라는 부족했다. 몽골인들이 자연환경에 대한 소중함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차창 밖 풍경은 이국적이었다. 탁 트인 초원의 능선에 가슴이 뻥 뚫렸다. 그러나 산에는 나무가 많지 않았다. 멀리 보이는 산들의 중턱 위쪽으로만 나무들이 보였다. 아예 풀로만 덮인 산들도 꽤 있었다. 현지인 가이드 울지 바이어르 짜르갈마(25)는 “제가 어렸을 때는 산에 나무가 꽤 많았다. 그런데 갈수록 나무가 줄어든다. 어릴 때는 강에서 목욕도 많이 했다. 그런데 요즘은 강물이 굉장히 줄었다. 이 모두가 사막화의 영향이다”고 말했다.

몽골 울란바토르시의 바가노르구에서 대한항공 신입사원들과 몽골 공항청 직원, 몽골의 중학생들이 함께 나무를 심고 있다. 바가노르구의 ‘대한항공의 숲’에는 약 6만6000그루의 나무가 심어져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사막이 되는 강과 호수=실제 그랬다. 멀리서 보면 푸른 초원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목초 사이사이가 모래로 푸석거렸다. 몽골의 사막화는 심각하다. 최근 20년 사이에 몽골에서 1181개의 호수와 852개의 강, 2277개의 개울이 사라졌다. 예전에는 물로 출렁이던 곳이 지금은 바짝 마른 모래밭이 돼 있다. 고비 사막의 울란 호수가 대표적이다. 울란 호수의 규모는 서울 면적의 절반 크기였다. 수심도 5m나 됐다. 그만큼 물이 풍부했다. 그러던 울란 호수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울란 호수로 들어오는 물줄기인 언귀 강이 말라버린 것이다. 언귀 강의 강물이 주변 지역의 광산 개발을 위해 많이 사용됐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과 건조화 증가, 바람의 양과 속도 증가 등이 이유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호수가 마르면 바닥의 흙이 계속 날린다. 바람이 불면 불수록 모래는 계속 만들어진다. 그런 모래를 잠재우는 것이 물과 나무다. 그런데 몽골에서 강과 나무는 귀하고, 모래는 점점 늘고 있다. 몽골사막화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몽골 국토의 약 90%에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지난해 몽골 총리는 사막에서 국무회의를 하는 사진을 찍어 사막화의 심각성을 세계 언론에 알린 적도 있다.

 비단 울란 호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울란바토르에서 바가노르로 가면서 강을 만났다. 한강이나 낙동강의 느낌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초원에 흐르는 얕은 개울의 느낌이었다. 그게 몽골의 대표적인 강 중 하나였다. 그만큼 몽골에선 물이 귀하다.

 ◆무분별한 노천 탄광 개발=몽골의 관광버스 앞유리에는 ‘동두천’ ‘남양주’ 등의 노선 이정표가 한글로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한국에서 사용하던 중고 버스를 들여와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좁은 아스팔트 위를 달리던 버스가 도로를 조금만 벗어나도 흙먼지가 뿌옇게 날렸다. 울란바토르를 출발한 지 1시간이 지났다. 멀리 초원 저편에 높다란 흙산이 여기저기 보였다. 알고 보니 탄광이었다. 몽골에는 산이 아닌 들판에 탄광이 있다. 평지의 흙을 파면 석탄이 나온다. 그래서 파낸 흙을 옆에 쌓아두면 절로 흙산이 생겨난다.

 문제는 탄광 개발 이후다. 많은 탄광 개발업자들이 파낸 흙을 그대로 방치해 두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면 흙산은 고스란히 황사가 된다. 탄광에 있던 각종 광물질도 바람에 섞인다. 탄광 개발에 따른 흙산 방치를 막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아직도 미흡하다.

 ◆급증한 방목 가축 수=몽골의 인구는 약 300만 명이다. 그중 30%가 유목민이다. 그들은 주로 양, 말, 소, 염소 등을 키운다. 1918년 960만 마리였던 가축이 2009년에는 4400만 마리로 늘었다. 계절마다 초지를 찾아 자연스럽게 이동하던 전통도 인위적인 행정구역이 생기면서 단절됐다. 이 때문에 초지에 풀이 다시 자랄 시간이 충분치 않게 됐다. 최근에는 염소 털로 만드는 캐시미어 제품의 가격이 오르면서 방목하는 염소의 수가 급증했다. 어금니가 강한 염소는 풀을 뿌리째 뜯어 먹는다. 이로 인해 초지의 사막화가 더 가속화되고 있다.

 ◆묘목이 숲이 될 때=버스로 1시간30분을 달린 끝에 바가노르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렸다. 봄인데도 날씨는 추웠다. 바람도 매서웠다. 그런 가운데 대한항공 신입사원, 바가노르의 몽골 중학생, 몽골 공항청의 직원들이 와서 함께 나무를 심었다. 깊이 60㎝, 지름 60㎝짜리 구덩이를 먼저 판 다음 묘목 한 그루를 심었다. 거센 바람에 흙이 날아가지 않고, 나무를 지키기 위해 구덩이는 필수였다. 지난해 대한항공에 입사한 이민지씨는 “예전에는 황사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몽골에서 직접 나무를 심어보니, 이게 지구촌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란 생각이 든다”며 “9년 전에 심은 나무가 잘 자라는 것을 보니까 감회가 남다르다. 국제적인 과제를 협력해서 해결하는 데 참여할 수 있어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조림지에는 1년 전, 5년 전, 9년 전에 심은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주위에는 울타리가 세워져 있다. 가축들이 와서 어린 나무의 싹과 잎을 먹어치우는 걸 막기 위해서다. 유목생활이 몸에 밴 몽골인들은 나무가 심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베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나무심기 사업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꽤 달라졌다. 사막화의 심각성을 몽골인들도 진지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현재 바가노르에 있는 ‘대한항공의 숲’에는 약 6만6000그루의 나무가 심어져 있다.

 몽골에서 활동 중인 환경NGO ‘푸른아시아’의 제진수 사무처장은 “초기에 몽골에 심었던 나무의 생존율이 0%였다. 보기 좋다고 큰 나무를 옮겨와 심으면 무조건 죽는다. 기업체와 각종 단체에서 와 나무만 심고 돌아가는 방식은 곤란하다”며 “나무를 심으면 뿌리를 내려서 스스로 살아가기까지 몽골에선 3년이 걸린다. 지속적인 관리를 해야 숲을 만들 수 있다. 10년 후에 심어 놓은 나무의 50%만 살아도 대성공이다. 그럼 풍성한 숲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나무를 심은 후에도 매주 한 그루당 20L씩 물을 줘야 한다.

 삽을 들고 나무심기를 돕던 몽골인 중학생 헤르렌톨은 “처음에는 왜 나무를 심는지 몰랐다. 그런데 지금은 왜 나무를 심고, 어떻게 심고, 어떻게 관리하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곁에 선 동급생 보양헤식은 “땅이 점점 사막화돼서 걱정이다. 멀리 몽골까지 와서 나무를 심는 게 참 고맙다. 10년 후, 20년 후에는 푸른 몽골이 됐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