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 급속 하강 제동이 안 걸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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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의 엔진으로 통하는 미국 경제가 영 불안하다. 10년이나 호황을 누렸으니 이젠 둔화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그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각종 지표는 경착륙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경기후퇴로 소비자들의 씀씀이가 줄어들면서 창고에 재고가 쌓이고 더불어 기업들의 생산활동도 위축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런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 상반기 중에는 지금과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면서 금융당국의 추가 금리인하와 부시 새 행정부의 대규모 감세정책에 기대를 걸고 있다.

◇ 하강속도 너무 빨라〓미 경제는 지난해 4분기 1.4% 성장하는데 그쳤다. 1995년 2분기(0.8%)이후 가장 낮았다.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너무 심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당초 전문가들은 2% 정도는 될 것으로 봤다. 이런 추세라면 올 1분기 성장률이 간신히 플러스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은 얼마전 "최근 성장률이 영(零)에 근접하고 있다" 고 경고하기도 했다.

미 구매관리협회(NAPM)는 제조업만 놓고 본다면 미국 경제는 지난달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CBS마켓워치가 경제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올 1분기 성장률은 0.9%에 그칠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3~6개월의 경기향방을 예고하는 경기선행지수는 지난해 12월에 전달보다 0.6% 떨어져 3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 실업자도 는다〓기업들의 생산 축소는 감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미국의 실업률은 4.2%로 지난해 12월에 비해 0.2%포인트 상승했다.

자동차 업종에서만 지난달에 3만8천명이 해고된 것을 비롯해 제조업 부문에서 한달새 6만5천명이 회사를 떠났다.

지난해 6월 이후로는 총 25만명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그 규모는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관계 전문가들은 현 추세라면 연말까지 실업률이 5%선을 넘어설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 걱정되는 소비 위축〓경기전망이 어두워지고 실업이 증가하자 소비자들은 허리띠를 졸라 매고 있다.

민간 경제예측기관인 컨퍼런스보드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의 소비자신뢰지수(114.4)는 전달(128.6)에 비해 크게 떨어지며 4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지난달 수치는 96년 12월(114.2)이후 가장 낮은 것이다.

향후 6개월간 경기상황을 말해주는 소비자기대지수도 77로 전달(96.9)에 비해 급락, 93년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컨퍼런스보드의 린 프랑코 의장은 "지난달 소비자신뢰지수와 기대지수가 크게 떨어진 것은 경기가 둔화수준을 넘어서 침체 직전의 상황에 있다는 의미" 라며 "이런 지수가 더 떨어진다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고 경고했다.

◇ 생산은 10년만에 최악〓고유가.수출 부진.소비 위축.재고 증가 등으로 제조업의 경영여건이 무척 나빠지고 있다.

NAPM이 최근 발표한 지난달 제조업 생산지수는 41.2(지난해 12월은 44.3)로 10년만에 가장 낮았다.

NAPM의 노버트 오레 조사위원장은 "이 지수가 42.7이하면 침체국면이라는 의미" 라며 "지난달 국내총생산(GDP)이 0.6%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고 말했다.

특히 신규주문 지수는 지난해 12월의 42.5에서 지난달엔 37.8로 떨어져 향후 경기전망을 더욱 어둡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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