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비전] 동국아 힘내라! 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4일 독일 프로축구 브레멘으로 이적하기 위해 출국하는 이동국을 환송하려고 김포공항에 갔다.

역시 스타였다. 많은 보도진이 몰렸다. 다소 긴장하고 있는 그를 보자 고교 시절의 이동국이 떠올랐다.

이동국은 최정민-이회택-최순호-황선홍으로 이어지는 한국 축구의 스트라이커(과거 센터포워드) 계보를 이을 '씨알 굵은 대어' 로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

그를 처음 본 것은 1996년 이른 여름 대구문화방송 주최 전국고교축구대회 결승전이 열린 대구 두류운동장에서였다.

방송 해설거리를 찾기 위해 경기 전 포철공고 김경호 감독을 만났는데, "2학년 중에 '물건' 이 한 명 있는데 관심갖고 지켜보세요" 라고 말했다.

그 '물건' 이 바로 이동국이었다.

이날 이동국은 '군계일학' 의 활약으로 두 골이나 넣으며 팀 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동국에 대한 첫 인상은 어린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볼을 다루는 기술과 체격 조건이 워낙 뛰어나다는 것이다. 당시 키는 1m82㎝(현재 1m85㎝)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1년 뒤 이동국을 같은 대회, 같은 장소에서 지켜봤다. 포철공고는 대회 2연패를 일궈냈다. 이동국은 1년 전의 그가 아니었다.

완벽한 몸의 균형과 문전에서 상대수비 3~4명을 제치는 돌파력, 위협적인 헤딩능력, 뛰어난 골 결정력. 이미 그의 기량은 고교 수준을 넘어서 있었다.

자연스레 대학팀들의 스카우트 표적이 됐다. 경희대 박창선 감독은 이동국과 함께 졸업하는 3학년 선수 8명을 모두 받아주겠다는 획기적인 제안까지 했다.

이동국은 그러나 연고 프로팀인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했다. 프로 첫해 주전자리를 꿰차는 것으로도 모자라 19세의 어린 나이에 98프랑스월드컵 대표로 뽑혀 네덜란드와의 후반전에 교체멤버로 출전했다. 그는 20여분 뛴 이 경기에서 펄펄 날았다.

그리고 흔한 표현대로 스타로 떴다. 그러나 이후 잦은 국가대표 차출로 인한 피로와 프로무대에서 상대팀의 거친 태클로 그는 망가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벌어진 골드컵 당시 다친 무릎은 고질병이 됐고, 발목 역시 볼을 자유자재로 차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

심지어 시드니 올림픽을 앞두고 "이동국은 끝났다" 라는 섣부른 진단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동국은 무릎에 테이핑 붕대를 칭칭 감고 지난해 10월 벌어진 아시안컵(레바논)에서 여섯 골을 터뜨리며 득점왕에 올랐다.

재기에 성공하면서 브레멘 이적도 성사된 것이다. 물론 완전 이적이 아니라 6개월간 임대다. 이동국에게 집착하는 이유는 그가 10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훌륭한 체격조건과 천부적인 볼 감각을 타고 난 선수이기 때문이다.

2002월드컵에서 큰 일을 해줄 것이라는 믿음이기도 하다. 출국장을 나서는 이동국을 불러 세웠다.

큰 눈을 둥그렇게 뜨고 바라보는 그에게 ' "동국아, 청춘은 짧다. 한동안 방황할 때처럼 술 먹지 말고 차범근 선배처럼 성실한 선수로 거듭나라" 고 당부했다. 게으른 천재가 아니라 노력하는 천재로 우뚝 서기를 진정 바라는 심정이었다.

동국아, 힘내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