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명성황후' 포스터에 얽힌 일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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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기가 그려진 흰 일본도를 배경으로 온화하면서도 단호한 표정의 조선조 마지막 황후의 모습.

뮤지컬 '명성황후' 공연만큼이나 유명해진 화가 이만익씨의 포스터는 97년 뉴욕공연 때 처음 제작됐다.

95년 초연당시의 포스터는 주연인 윤석화씨의 사진을 내세운 평범한 디자인이었다.

평소 '레 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처럼 한번만 봐도 잊혀지지 않는 '아트 포스터' 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윤대표는 초연 때부터 이만익씨에게 포스터 작업을 의뢰했다.

선이 굵고 동양적인 작품 스타일이 작품에 딱 들어맞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답은 '노' . 이 화백을 설득하기 위해 윤 대표가 마신 소주 만도 열박스가 넘었다.

밤마다 찾아가고, 낮에는 전화로 설득하길 수개월. 윤 대표의 간곡한 부탁을 뿌리치지 못한 이 화백은 뉴욕공연을 한달 반 남긴 6월말 작품을 완성하고 윤 대표를 작업실로 불렀다.

칼날 틈에서도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한 명성황후를 그린 30호짜리 유화였다.

"윤대표, 내가 왜 이 그림 그리기 싫어했는줄 알아□ 실은 선친이 일제시대 창씨개명으로 '미우라' 라는 일본이름을 사용하셨거든. 명성황후를 죽인 자도 '미우라' 잖아. 웬지 께름칙하더라구" .

이런 인연 때문인지, '명성황후' 공연 흥행 때문인지 이 포스터는 이 화백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됐고, 오늘날 포스터 원화 값도 수억원대를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선이 굵고 간결하면서도 화려한 색채가 돋보이는 포스터는 황후로서의 품위와 지혜 결단력과 대담성을 고루 갖추고 있다.

외국인들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듯한 조용한 표정이 중국이나 일본의 이미지와도 닮았다" 고 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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