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럽계 자금 이탈 … 셀 코리아 아니다 ‘셀 삼성·현대차’일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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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로리 나이트(사진) 전 스위스중앙은행 부총재는 유럽 펀드매니저들 사이에서 한국통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 자신의 투자자문사를 세운 뒤 한국 경제와 기업을 영국과 유로존(유로화 사용권)에 알리는 일을 하고 있어서다. 최근 한국 시장을 소개하는 보고서를 내놓은 그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한국에 투자한 유럽 펀드들의 동향을 그만큼 잘 아는 이도 드물다.

 -유럽 펀드들이 ‘셀 코리아(Sell Korea)’를 하고 있다.

 “유럽이 불타고 있다. 재정·금융 위기가 한창이다. 펀드매니저들은 틈만 나면 주식을 처분해 현금을 마련하고 있다.”

 -가까이에서 본 스페인과 그리스는.

 “여기 런던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스페인이 구제금융을 신청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그들의 분석과 결론에 100% 동의한다. 스페인엔 감춰진 리스크가 하나 있다. 지방 정부들이다. 그들의 재정 상태는 경악스러운 수준이다 .”

 -스페인이 구제금융을 신청하면 어떻게 될까.

 “스페인 경제 는 그리스보다 몇 곱절 크다. 독일·프랑스도 구제할 능력이 없다. 그리스가 탈퇴해도 유로존이 살아남을 수 있지만 스페인이 이탈을 선언하면 끝장이다.”

 유럽 위기에 대한 그의 설명은 좀체 끝나지 않았다. 말을 끊고 한국에 투자한 유럽계 자금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의 입에선 색다른 말이 흘러나왔다.

 -유럽 펀드들이 한국을 그토록 비관적으로 보고 있나.

 “솔직히 말하면 유럽 펀드의 매니저들은 한국 거시경제를 잘 모른다. 그저 세계적으로 알려진 삼성·포스코·현대자동차 등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이들 외 다른 기업에 대해서도 사실 무지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게 최근 셀 코리아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매니저들이) 한국 경제가 얼마나 탄탄하고 최근 몇 년 동안 좋은 성과를 거뒀는지 모른다. 미국과 유럽이 위기니까 이들 시장에 의존도가 큰 삼성·현대차를 파는 것이다. 그들이 한국 내수시장이나 중국 소비재 시장에 의존하는 한국의 중견 기업들을 발굴해 보유했다면 그렇게 팔진 않았을 것이다.”

 -유럽 펀드들이 분산 투자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말로 들린다.

 “바로 그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유럽 펀드들이 분산 투자한다며 삼성·현대차의 주식을 샀다. 그런데 선진시장이 위기를 맞으니 이들 기업마저 흔들리는 듯했다. 이게 셀 코리아를 하는 진짜 이유라고 본다.”

 나이트 전 부총재는 보고서에서 “한국 50~300위 기업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 기업에 투자해야 아시아 시장의 성장에 따른 과실을 공유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의 중견 기업들이 선진국 펀드들의 눈에 찰까.

 “(껄걸 웃으며) 내가 최근 10년 동안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는데, 한국 투자자들도 중견 기업의 가치를 잘 모르더라. 간단히 말해 남북한이 화해하면 가장 큰 이득을 볼 기업이 그들이다 .”

로리 나이트

영국 투자자문사인 옥스퍼드메트리카 회장이다. 전설적인 투자자인 존 템플턴의 유산을 관리하는 투자자문가다. 그는 영국 출신이지만 1980년대 내내 스위스 중앙은행에서 국제금융 분석가로 근무했다. 배타적인 분위기가 강한 스위스에서 중앙은행 부총재까지 올랐다. 귀국해 옥스퍼드대 경영대학장을 두 번 지낸 뒤 2000년 옥스퍼드메트리카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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