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자꾸 때리지마, 아빠에게 맞은 분풀이라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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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개 같은 날은 없다
이옥수 지음, 비룡소
312쪽, 1만1000원

폭력은 지독하다. 몸뿐 아니라 마음에도 상처를 남긴다. 전염성도 강하다. 폭력에 멍든 영혼은 또 다른 약자를 향해 폭력을 휘두른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이 달리 나왔을까.

 폭력이 가정이라는 공간으로 숨어들면 더 지독해진다. 책은 가족 속에 감춰진 폭력, 그 중에서도 형제와 남매간의 폭력을 다루고 있다. 같은 부모에서 태어난 세상에서 가장 친밀한 존재이면서도 누구보다도 강한 경쟁심에 불타는 동기간에 주고 받은 상처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중3인 강민은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은 뒤 아버지와 형과 함께 살고 있다. 강민의 일상은 전쟁터 같다. 대드는 형을 아버지가 패고, 맞은 형이 강민을 때리는 ‘개 같은 날’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강민이 마음을 둘 곳은 강아지 찡코뿐. 하지만 자신을 때리는 형에게 대드는 찡코를 말리다 강민은 찡코를 죽이게 된다. 학교 친구를 흠씬 두들겨 패며 폭행 사건에도 휘말린다.

 문제아가 된 강민은 심리 치료를 위해 정신과를 찾는다. 거식증 치료를 위해 같은 병원을 찾은 옆집 뚱보 미나 누나가 우연히 찡코의 사진을 보게 되면서 이야기는 새 국면으로 접어든다. 사진 속 강아지가 자신에게 신호를 보낸다는 느낌을 떨치지 못한 미나는 동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를 찾아간다. 그리곤 자신도 잊고 있었던 어릴 적 기억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오빠의 폭력에 시달리다 동생처럼 아끼던 강아지 ‘머루’를 죽였다는 사실을 기억해낸 것이다.

 비슷한 상처를 지닌 미나와 강민은 서로를 보듬고, 강민의 아버지와 형은 함께 심리 치료를 받는다. 형과 상황극을 하며 강민은 형도 큰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심리서 『가족』을 쓴 존 브래드쇼는 “개인은 자기 안에 온 가족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강민은 아버지와 형의 상처와 고통도 끌어안고 있었던 셈이다. 그걸 푸는 열쇠는 서로 보내는 신호를 듣는 것. 작가의 말대로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뚝뚝 분질러서 흩어 버릴 수 없는 서로의 교집합”이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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