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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정치와 정당정치의 역설적 동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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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

누가 보아도 한국 정치에는 아직 모순이 많다. 특히 외국인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모양이다. 한마디로 ‘한국 정치는 역설 그 자체’로 보인다는 것이다. 4·11 총선이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것 같았는데 선거 결과는 ‘절묘한 견제와 균형’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무튼 4·11 총선을 취재한 한 외국 언론인의 궁금증이 흥미롭다. 성난 민심으로 야권이 밥상을 챙길 줄 알았는데 선거결과는 너무 의외라는 것이다. ‘분노의 동원’과 ‘안정의 견제’가 만들어 낸 역설적 균형이 불가사의하다는 표정이다.

 우선 그는 여야 주요 정당의 대표가 모두 여성이었다는 사실에서 거대한 정치변화를 예감했다고 한다. 정치는 남자의 일이라고 여기는 유교적 문화의 한국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여성들은 ‘유리천장’에 막혀 정치적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유리천장은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가로막고 있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다. 그렇다면 과연 세 여성 정당 대표 덕분에 이번 선거에서 유리천장을 무너뜨리는 여성파워가 현실화되었는가. 유감스럽게도 젠더 문제는 총선에서 전혀 부각되지 않았다.

 다음으로 그는 ‘비실거리는’ 정당을 ‘점거한’ 사회세력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영향력이 과격한 정치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보았다고 한다. 정당보다는 정당을 점거한 외부세력의 위력이 여야를 막론하고 더 크게 작용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4·11 총선은 정당보다 나꼼수와 같은 정당 밖의 세력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선거이기도 했다. 자연 정책 본위, 정당 본위의 선거는 뒷전으로 밀려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신 정권 심판과 같은 도덕 논쟁이나 막말 경쟁이 위세를 떨친 선거였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이런 분노의 동원에 휩쓸리지 않았다.

 선거에서 나타난 이념 논쟁의 무력화(無力化) 현상 또한 그를 놀라게 한 모양이다. 사회적 양극화로 과격 이데올로기나 복지 같은 달콤한 이념이 유권자들을 움직일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풍의 영향력도 복지의 호소력도 통하지 않았다. 토론과 타협을 통한 실용정치를 바라는 민심의 반증인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말하면 4·11 총선 결과는 ‘운동정치’에 대한 경종이기도 하다. 정당정치와 구별되는 운동정치는 기본적으로 정상적인 토론이나 타협을 거부한다. 선과 악의 이분법적 잣대가 있을 뿐이다. 정치에 대한 신뢰가 붕괴된 상황에서 이런 잣대의 호소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나꼼수와 같이 정치불신을 동원하여 정당에 대항하려는 움직임이 선거 내내 화제였다.

 하지만 4·11 총선은 정당정치의 손을 들어 주었다. 운동정치의 토양에서 정당정치가 기사회생한 꼴이다. 정말 역설적인 현상이다.

 물론 정치발전은 일직선의 움직임은 아니다. 이행기에는 비틀거림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역설적인 균형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이다. 특히 ‘사회운동’이나 SNS 운동이 쉽게 일어나고 영향이 큰 지금의 정치현실에서 말이다.

 지금까지 이런 운동의 초점은 ‘자기표현’을 통해 하버마스가 말하는 이른바 풀뿌리 시민의 ‘이성적 토의공간’을 확대하는 데 맞추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무대는 이성적 토의공간이 아니었다. 정당 외부에서 정치불신을 확대 조직하는 ‘대결과 동원의 공간’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역설적 균형의 결과가 나타났을까? 지역주의가 작용했을 수도 있고, 세대 간의 갈등이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운동정치의 오만성과 ‘야만성’을 경계하는 민심이었다.

 정당정치는 민심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거울이 반듯해야 한다. 도덕성을 무기로 하는 진보정당은 더더욱 그렇다. 속죄해도 시원찮을 판에 자기변명과 정당화에 매달리면 민심을 반영해야 할 거울의 모습은 더욱 비뚤어지게 보일 뿐이다.

 대선정국에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해 보인다. 서로 싫더라도 얼굴을 맞대고 부닥치라는 것이다. 그리고 토의와 타협의 공간을 넓히라는 것이다. 그래야 비뚤어진 거울의 모습이 고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정치에는 선과 악 사이에 넓은 중간지대가 항상 자리하고 있는 법이다. 이 넓은 공간을 무시하고 이분법적 잣대를 휘두를 경우 대선주자들이 지불해야 할 대가는 적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서 역설적 현상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민심의 정치 불신이 폭발 직전에 와있기 때문이다. 이런 민심에 타협정치의 필요성이 얼마나 먹힐지 의문이다.

 잘못하면 역설적 균형은 대선정국에서 분수령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