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의 가능성에 대한 치열한 탐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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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대안을 모색하는 일은 어디까지 가능한 것인가요? 이는 시대착오적이고 불가능할 것으로 간주되는 체념과 같은 현상이 팽배한 듯 싶은 시절이어서 말입니다. 지난 해 쯤만 해도 ‘제 3의 길’이라는 대안이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세상을 풍미했었는데, 지금은 그것조차도 한풀 꺾인 듯 하군요.

프랑스의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의 사회학과 명예교수인 알랭 투렌이 이같은 상황에 날카로운 비판을 던졌습니다. ‘어떻게 자유주의에서 벗어날 것인가’(알랭 투렌 지음, 고 원 옮김, 당대 펴냄)는 사회적 정치적 변화가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 현상에 대한 반론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지은이는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우선 20세기 세계의 현실을 진단합니다. 세계화의 과정에 나타나고 있는 실업과 빈곤 등 경제적 문제를 비롯, 세계화 담론의 배후에 깔린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허구를 비판합니다.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는 지은이는 프랑스의 현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그의 관심은 세계 경제 전반으로 확대됩니다. 90년대 일본의 금융 버블 현상이나, 한국 재벌들의 과잉부채가 낳은 파산적 결과들에 대해서도 말을 아까지 않습니다.

“경제 금융 정치가 하나의 블록을 형성하지 않았지만 가장 파멸적인 방식에서 가장 유용한 방식까지, 다양한 형태로 결합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여기서 위기의 원인은 부패와 소득재분배 정책의 부재 그리고 금융집단의 경제적 무책임성이었다.”(이 책 47쪽에서)

이같은 현실 진단을 바탕으로 지은이는 지금까지의 사회운동들을 꼼꼼하게 살펴 봅니다. 산업사회의 노동운동에 대한 연구에서 출발, 프랑스의 다양한 사회운동에 관심의 폭을 넓히고 있는 지은이는 이 책에서도 현재의 사회운동을 있는 그대로 그려냅니다. 이같은 작업은 결국 현재의 사회운동이 가지는 허점을 명백히 바라봄으로써 새로운 대안을 향한 모색의 일환이겠지요.

결국 이 책의 마무리 장인 제 5장에서 지은이는 ‘두 개의 정치적 대안’을 이야기합니다. 지난 해 우리 지식계에서도 붐처럼 확산됐던 ‘제 3의 길’을 비판하면서 그는 새로운 대안으로 ‘2와 1/2의 길’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합니다. 지은이에 따르면 제 3의 길은 몰락을 지연시키기는 할 지언정 재건은 도리어 어렵게 한다면서 이는 복지국가의 쇠퇴에 대한 응답이라고 비판합니다.

지은이의 말에 따르면 제 3의 길을 중도우파 계열의 대안이라고 한다면 2와 1/2의 길은 중도좌파 계열의 대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생산과 분배를 동시에 고민하는 좌파의 정치가 곧 2와 1/2의 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덧붙이자면 유럽 사회주의의 역사에 기대어 낡은 사회민주주의와 제3의 길 사이에 존재하는 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사회에 대해 숱하게 많은 질문들이 이 책에 던져지지만,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시대의 사회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이를 행동으로 옮길 때에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는 입장이지요.

국가적 경제 위기를 극복했다고 자족하던 지난 봄 이후 경제가 다시 급전직하의 위기에 놓인 듯 다시 시끌벅적합니다. 이같은 위기의 시대에 사회운동의 대안을 찾고자 하는 현대 지성의 목소리는 오래도록 뜻깊게 남을 것입니다.

고규홍 Books 편집장 (gohkh@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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