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와 10시간] 유지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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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태 (24) 는 독특한 캐릭터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스타성을 의혹의 눈빛으로 주시한다.그에겐 무엇보다 대중을 사로잡는 강렬한 이미지가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끼가 없다고 꼬집는다.

착하게만 보이는 갈색눈, 웃을 때 가지런하게 드러나는 치열이 매력이랄까. n세대가 좋아하는 '롱다리' 와 균형 잡힌 체형도 사줄 만하다. 그래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는 법. 올해 충무로 캐스팅 0순위로 떠오른 배경엔 무엇이 있을까.

#1. 밝고 어둡기

유지태는 기자보다 먼저 "안녕하세요" 를 꺼냈다. 영화계에서 인사성이 밝기로 소문난 그다. "잘 보이려고 인사한다는 오해도 있겠다" 고 하니 "그렇다고 주저할 필요가 있나요" 라며 기분 좋게 웃는다. 상반기 히트작〈동감〉에서 보았던 다감한 미소와 많이 닮았다.

하지만 폭소는 없다. 대화 내내 진득하다. 정직해 보이는 얼굴에서 때론 옅은 그늘이 느껴질 정도. 2000년의 패기만만한 젊은이가 아니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묘한 색깔이다.

"겉모습은 압구정풍인데 성격이 우중충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실제로 밝은 연기는 제게 쥐약입니다.〈동감〉에서도 평소보다 명랑하게 보이려고 많이 힘들었어요. "

사실 유지태를 새내기 스타로 떠올린 결정적 변수는 그의 선량한 얼굴. 평범해 보이는 인상에 숨겨진 은은함이 저력이다. 지난해 그를 돌출시킨〈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시대와 가정에 저항하는 '뻬인트' 보다 무선교신으로 21년전의 여대생과 정감을 나누는〈동감〉의 '인' 이 관객들에겐 더욱 친숙하다.

또 자본주의의 총아인 TV광고는 청바지.음료수.PC통신.핸드폰 등을 통해 그의 부드러운 분위기를 무차별적으로 쏟아냈다.

그에게 열광하는 소녀들은 세파에 찌든 아버지에게서 쉽게 볼 수 없는 푸근함을 만끽했다. 연기자로선 한석규와 박신양의 초창기 모습에 가깝다. 크게 보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잠시 쉬어가는 휴게소 같다.

#2. 높고 낮기

스타에게 인기는 마약이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렵다. 지난 여름 한국 호러물로는 드물게 성공한〈가위〉에 이어 11일 개봉할〈리베라메〉에 나오는데 인기가 몇달 전 같지 않다고 물었다.

"저도 실감해요. 〈주유소…〉의 홈페이지엔 제 얘기가 가득했는데〈리베라메〉에선 크게 줄었어요. 언제라도 등을 돌리는 게 대중이 아닐까요. 그러나 저의 오늘을 만든 팬들을 잊으면 안되죠. "

그는 스타라는 말을 거북해했다. 첫돌 아기처럼 아장아장 걷는 자신을 과대포장하지 말 것을 부탁했다.

"그냥 스물네살의 배우로 보아 주세요. 기성 스타의 잣대로 재단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아직은 과정에 불과하잖아요. 집단이 저를 특정한 틀안에 놓고 보면 저와 전혀 상관없이 제 모습이 규정되거든요. " 연기자에게 고정된 이미지가 얼마나 치명적인 것인가를 깨달은 눈치다.

그는 데뷔작 〈바이준〉(98년)에서 큰 교훈을 배웠다고 한다. 처참한 흥행실패로 연기의 쓴맛을 제대로 본 것. 찾아주는 이가 없어 영화를 포기할 생각까지 했다.

"실패.성공 두 가지 다 경험했어요. 지금은 환경변화가 두렵지 않습니다. 결국 문제는 연기자로서 제 자신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죠. "

#3. 넓고 깊기

기회다 싶어 직공법을 택했다. 〈주유소…〉이후 〈리베라메〉까지 짧은 1년여에 네 작품에 나오는 것은 무리라고 찔렀다. 게다가 CF에도 빈번하게 등장하고 말이다. '박리다매' 론 배우의 생명이 오래 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대답이 제법 문학적이다.

"영화에서 저를 소모시키려고 했습니다. 망가져도 좋다는 심정으로 달렸습니다. 일단 폭넓은 경험을 쌓고 싶었죠. 언덕에 굴려 올린 돌을 다시 아래로 떨어뜨리는 시지프스처럼 말입니다. 그러면 단단한 근육이라도 붙지 않겠어요. 연기력은 부족하지만 무척이나 고대했던 영화였으니까요. 또 제 이미지를 단기간에 최대한 뽑아내려는 광고의 유혹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마냥 물리치기가 힘들었습니다. "

솔직해서 좋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고 했다. 지금까지가 소모전이었다면 앞으론 재충전의 시간을 갖겠다는 것. 영화 출연도 일년에 한편 정도로 자제하겠다고 한다. 그의 말을 빌리면 '정말 좋은 배우' 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혼이 살아 있는 연기에 품성.인격이 동시에 어우러지며 그만의 독특한 아우라가 풍기는 배우, 그런 연기자가 꿈입니다. 인생의 리얼리티를 담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작품에 도전할 겁니다. "

거창한 발언이다. 비유컨대 넓이에서 깊이로 노선을 전환하겠다는 것. 잔잔하게 깔리면서도 곰삭은 듯한 어조가 신뢰감을 준다. 다만 그의 계획이 여러 배우들처럼 인기관리 차원의 얕은 전략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그래야 10년 후의 관객도 배우 유지태를 기억할 것이다.

유지태는......

2000년 한국 영화계가 배출한 최고의 신인 유지태는 원래 연극 지망생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교회에서 성극 (聖劇) 을 하면서 연극 배우의 꿈을 키우며 단국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고교생 땐 이과 (理科) 를 다녀 한때 항공기술자를 생각했으나 "수학은 두 번이나 0점을 맞은 적이 있다" 고 부끄럽게 털어놓을 정도로 수리에 약해 연극 무대를 인생의 목표로 결정했다. 전체 성적은 앞보다 뒤에 가까웠으나 국어.영어만큼은 항상 상위권을 유지했다고 자부 (?) 한다.

그러나 대학 입학 후 1백87㎝란 큰 키 탓에 배우보다는 조명.무대 등 스태프 일을 많이 했다.
무용에도 관심이 많고, 성악도 조금 공부해 뮤지컬 배우를 희망했으나 무용 연습 중 허리를 다쳐 몸을 많이 쓰는 뮤지컬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배우로 나선 것은 학교 선배를 따라 데뷔작〈바이준〉 오디션에 우연히 참가하면서부터. "너는 분위기가 강남파니까 한번 응해 봐라" 는 권유가 인생을 돌려놓았다. 지금은 "젊어서 그런지 영화가 너무너무 좋다" 고 하지만 그전만 해도 "연극에 미쳐 영화엔 전혀 눈을 뜨지 못했다" 고 한다.

취미는 사진찍기. 최근 구입한 독일제 롤라이 카메라에 푹 빠져있다. 30여년 전에 단종된 완전수동형이다. "전문가 수준이냐" 고 묻자 "아니요 "하고 화들짝 부인한다. 그래도 사진만 보면 필름.인화지 종류, 촬영방법 등을 분간할 정도다.

CF로는 TV에 자주 나오나 순발력이 요구되는 드라마엔 적성이 맞지 않아 영화에 전념할 작정이다. 보기와 다르게 '도가 아니면 모' 의 성격이라 일에 대한 집중력이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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