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미 에너지산업 앞마당까지 진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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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미국의 정치적 장애 때문에 미 석유회사 유노칼(Unocal) 인수를 철회한다.”

 2005년 8월 중국의 초대형 국유 석유회사인 중국해양석유(CNOOC)는 유노칼 인수를 포기하면서 이같이 발표했다. 유노칼을 인수한 곳은 미국 기업 셰브론. 인수금액은 중국해양석유가 제시한 185억 달러보다 적은 173억 달러에 불과했다. 미 의회가 “중국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대형 국유 기업의 손에 미국의 중요한 에너지 자원이 넘어가면 안 된다”며 국가안보 논리까지 동원한 것이 결정적 장애물이었다.

 7년이 흐른 지금, 중국은 미국을 비롯한 북미 지역에서 에너지 사냥을 포기했을까. 중국은 오히려 미국 시장을 더 지능적으로 공략해 성공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은 집요할 정도로 북미 지역의 에너지 공략을 계속했다. 7년 전 유노칼 인수 과정에서 쓰라린 고배를 마셨던 중국해양석유 푸청위(傅成玉·61) 회장의 집념과 변신 노력을 보면 중국이 얼마나 끈질기게 뛰어왔는지 알 수 있다.

 유노칼 인수전에서 뜻밖의 쓴잔을 마셨던 푸 회장은 "미국에서 큰 거래를 할 때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고백했다. 이후 미국 공략 작전을 바꿨다. 그는 미국 에너지 기업을 통째로 인수할 때 정치적 반발을 피하면서 실속을 챙기는 쪽으로 선회했다. 중국해양석유가 2010년 10월 미국 체사피크에너지로부터 텍사스주에 위치한 이글포드 셰일 가스(shale gas·지하 퇴적암층에 매장된 천연가스) 개발 사업의 지분 33.3%를 10억8000만 달러에 사들인 경우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셰일 가스 개발에 막대한 자본이 절실했던 체사피크에너지로선 중국해양석유의 우호적 접근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중국인 직원을 파견 근무시키는 것도 배제하자 미국 측의 경계심과 오해는 사라졌다. 기업을 통째로 인수해 노골적인 반발을 샀던 유노칼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미국 정치권에서 어떤 공개적인 반발도 없었다.

  푸 회장은 지난해 4월 중국 2위 국유 석유기업인 중국석화(SINOPEC) 회장으로 영전했다. 그는 여세를 몰아 올해 1월에는 미국 디번에너지의 지분 33%를 25억 달러에 인수하는 계약을 성사시켰다. 중국석화의 해외 투자 자문에 응한 로열 더치 셸 전직 임원은 “기업의 지분 일부만 사들이고 협력하면, 그 기업이 강력한 동맹이 된다는 사실을 중국 기업이 터득했다”고 분석했다.

 WSJ는 최근 푸 회장의 사례를 앞세워 중국이 미국의 견제와 반발을 피해가면서 미국의 안방인 북미 지역에서 가장 많은 석유 이권을 확보한 배경을 집중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이 해외시장에서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확보한 원유와 천연가스 사업의 인수금액은 지역별로 북미 지역이 60억 달러어치로 가장 많았다. 중국의 해외 에너지 사냥 전선에서 미국·캐나다를 비롯한 북미가 가장 중요한 앞마당이 됐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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