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 없이 하도급 땐 CEO 특별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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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크레인부품 회사인 A사는 부품 제조를 B사에 위탁하면서 위탁품목·위탁금액·납기·납품장소를 적은 발주서만 줬다. 계약서는 없었다. 추가 위탁사항에 대해서는 발주서도 교부하지 않은 채 구두로 발주했다. 나중에 두 회사는 미지급 대금을 둘러싸고 분쟁이 발생했지만 계약서가 없어 사실 확인이 힘들었다.

 이처럼 구두 발주는 대·중소기업 간 하도급 불공정거래의 시발점이다. 원래 하도급계약서에는 수급사업자 권리, 원사업자 의무 등 기본 거래조건이 들어 있다. 이런 계약서를 쓰지 않으면 수급사업자는 불이익을 당해도 권리를 주장하기 힘들다. 원사업자는 일단 구두 발주를 한 뒤 부당한 단가인하, 감액, 발주 취소 등 하도급법이 금지하고 있는 행위를 회피할 수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하도급 과정에서 구두 발주 혐의가 있는 439개 업체에 자진 시정을 요구했다고 1일 발표했다. 이들 업체는 2011년도 하도급 서면 실태조사 결과 서면계약서 미발급 혐의가 포착된 곳이다. ‘자진 시정’ 절차는 이렇다. 위탁내용·하도급대금 등 법정 기재사항을 완비한 서면을 수급사업자에게 발급하고, 회사 대표의 서명과 날인이 들어 있는 서면 미발급 행위 재발 방지 확인서를 30일까지 공정위에 제출한다. 서면 미발급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 업체는 무혐의 입증자료를 내야 한다.

 공정위는 앞으로 하도급계약서 교부 등 자진 시정을 한 업체에 대해서는 경고조치와 함께 임직원을 대상으로 하도급법 교육이수를 권고할 예정이다. 서면 미발급을 반복해온 업체에는 최고경영자(CEO)의 하도급법 교육이수를 권고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정당한 사유 없이 자진 시정 또는 교육이수를 거부한 업체는 현장 직권조사를 하고 형사고발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지난해 6월 30일부터 시행된 개정 하도급법은 서면 미발급 행위에 대해 하도급대금의 2배 이내 벌금을 부과하는 형사처벌 규정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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